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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진 Mar 01. 2021

운전면허 갱신에 부쳐

운전과 사는 것의 닮은 얼굴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했다. 면허 발급 10년 만의 일, 운전을 한 지는 약 7년 만의 일이다.  


지난 몇 년간의 지속적인 즐거움을 꼽으라면 운전을 빼놓을 수 없다. 한없이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에 매력적인 변주를 주는 이 행위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다. 집 밖에 있는 또 하나의 안락한 '내 방.' 창문을 반쯤 열고 달리면 얼굴에 와 닿는 바람과, 강변북로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져 반짝이는 밤의 한강은 서울살이의 피곤함도 낭만으로 바꾸어주는 운전의 마법이었다. 어느 새벽 충동적 심야영화를 가능하게 하고 비 오는 날 빗소리 섞인 음악 감상실이 되어주는. 내게 있어 운전은 평범한 일상의 훌륭한 편곡 같은 것.    


단지 즐거움 외에도 운전의 모습은 사는 것과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필사의 에너지로 집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몸에 익으면 한없이 자만하기 쉬워지는 일. 어떤 길을 탈 것인지 파악은 민첩하지만 신중하게. 결정 후 차선 변경은 실전이자 최고의 눈치싸움이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혼자 하는 게 좋다가도 좋은 친구들과 북적북적 달리면 즐겁다. 장거리 주행에선 조수석에 함께하는 사람 한 명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카풀을 해야 하기도 한다.


깜빡이도 없이 훅 끼어든 자가 도리어 역정을 내거나, 초보운전자를 배려한답시고 기다려주면 생뚱맞은 사람이 끼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 급한 날엔 어째 신호도 더 걸린다.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다가 속수무책으로 앞차 발 담배연기를 마시기도 한다.


쌩쌩 달리다 카메라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는 뻔뻔함 정도는 많이들 갖췄다. 상습 정체 구간에는 언제나 정직하게 기다리는 사람들과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단속반이 있기도 하지만 새치기가 늘 적발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좋게 써 양보했다가 뒤처지기도 한다. 그렇게 앞차를 마지막 주자로 보내면, 빨간불 아래 서서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얌전히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태평한 앞차와 성격 급한 뒤차, 두 고래 사이에서 경적 소음을 받아내는 새우가 될 때도 있다. (‘나 아니야. 나도 급해.’ 가끔은 뒤창에 전광판을 달고 싶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폭우 속 옆 차선에 덤프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내 차체에 요란한 소리로 빗물 세례가 쏟아진다. 트럭은 누군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몸집 큰 트럭의 잘못은 아니다.   


세상에 화나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싶다가 어느 날 비슷한 모습의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 취한 채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나 혼자만 잘해서도 안 되는 것.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겨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하는 것뿐이다.       

 

운전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느꼈을 때부터 줄곧 들어온 생각들. 다만 운수업 종사자도 몇십 년 경력의 운전자도 아닌 내가 선뜻하기엔 왠지 이치에 맞지 않는 듯 해 아껴두었었다. 갱신된 면허증을 찾아온 이 시점이 그나마 기회라면 기회 같아 꺼내본다.


하지만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밤늦은 퇴근길 고속도로. 어떤 차가 뒤에서 나를 앞질러 가더니 옆 차선에서 다시 속도를 줄이고 내 옆으로 붙어 달리는 거다. 뭐야? 술 취했나? 수상한 낌새는 피하는 게 상책. 조심하고 내 갈 길 가려 속도를 높이는데 심지어 따라오는 게 아닌가. 진짜 왜 저래, 싶은 순간 그 차가 쌍라이트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에 계기판을 봤더니 라이트가 꺼져 있었다. 캄캄한 밤 15km쯤 되는 거리를 그 상태로 달려온 것이다. 아차 싶었고, 라이트를 켰다. 그러자 그 차는 깜빡이던 라이트를 멈추고 앞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는 나에게 굳이 신호를 보내주려 했던 거다. 내가 그를 수상히 여기는 동안. 보는 이 하나 없지만 참으로 민망한 순간이었고, 고마움과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둘이 비정한 면만 닮은 것은 아니라서, 앰뷸런스에 가지런히 길을 터주는 ‘도로판 모세의 기적’에 - 사실 기적이라고 부를 것도 아니지만 - 나는 아직도 종종 코끝이 시큰해지곤 한다. 근본 없이 끼어든 차라도 비상등을 켜면 얄미웠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 뭔가 급한 사정이 있겠지.  

 

이곳저곳 다니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서울의 몇몇 길목이 제법 친숙해졌다. 한강 다리도 이제 몇 개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그중 차량 통행량이 제일 많다는 한남대교를 하루 평균 두 번씩 건넌다. 출퇴근길엔 꼼수의 달인이 되었지만 초행길을 나서는 건 여전히 긴장된다. 다리 한복판을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서울의 교통체증에 매일같이 혀를 내둘러도 강 위에 서서 감상하는 노을의 아름다움엔 언제나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 운전대를 잡고 살아가겠지. 지나는 길마다 또 어떤 생각들을 축적하면서. 다음 면허증을 갱신할 때 즈음엔 서울 지리는 눈 감고도 훤해지려나? (길치의 희망사항) 처음으로 직접 운전해 외근 가던 날 어른이 된 것 같던 설렘은 이제 없더라도, 잘못 든 길에서 근사한 동네 카페를 만나는 경험 같은 건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파워직역. 2nd Class Ordinary = 2종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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