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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Nov 22. 2020

마카롱 떨어뜨리기

 마카롱을 만들러 가는 날에는 비가 왔다. 언젠가 마카롱은 습도에도 예민해서 베이킹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추적추적 빗속을 걸으며 오늘의 마카롱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5분 전 스튜디오에 도착했는데 많은 수강생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다들 짝으로 와서 내가 들어가니 홀수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강사분이 마카롱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했다. 수강생들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모습을 보고 강사분은 '여기 분위기가  이래? 날씨가 이래서 반응을  하는 거야?'식의 반말로 농담을 했다.  말에 사람들은 낮게 하하, 웃었다. 나도 의례적 미소를 지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재료는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섞인 설탕과 아몬드가루, 분리된 계란 흰 자. 미리 배합된 재료를 젓고, 섞고, 짜는 작업만 하면 됐다. 속도를 높였다 낮추며 휘핑을 했고, 가루와 색소를 넣어 주걱으로 치대고 나니 짜는 건 금방이었다.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강사분이 직접 했다. 과정을 맛보는 정도로는 충분했지만 편이함이 가져간 즐거움이 아쉬웠다.



 윗면 꼬끄를 덮은 마카롱은 냉동실에 살짝 굳힌다. 그런데 강사분께서 한 수강생이 만든 마카롱을 꺼내다가 쟁반 째 쏟아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강사분은 어이없다는 자조적인 한 마디를 내뱉고 다른 냉장고에서 이미 만들어 둔 꼬끄들을 꺼내왔다. 사과 없이 빠른 수습을 해나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마카롱을 버린 수강생은 빨리 다시 필링을 짜라고 재료를 건네는 강사분께 뭘 하라는 거냐며 되물었다. 되묻는 말에는 충분한 불쾌감이 담겨있었다. 그제야 강사분은 사과를 했고, 마카롱 몇 개를 더 챙겨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여러 맛을 맛볼 수 있다는 명목으로 네 사람이 서로가 만든 마카롱을 나눠가졌다. 경제학에서는 한 종류의 재화보다 여러 재화의 조합일 경우에 효용이 더 크다는 게 일반적이다. 나 역시도 다양성에 큰 가치를 두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서로가 나눈다는 건 각자의 필링을 돌려가며 짜는 걸 생각했지, 다른 사람이 다 만든 마카롱을 교환하듯 나눠 갖는 것인 줄 몰랐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게 나에게 큰 의미인데, 전혀 모르는 타인이 만든 마카롱과 교환하는 건 맛있는 제과점에서 16구 마카롱을 사는 것보다도 못한 일이지 않나.



 어쨌건 바삭해 보이는 겉과 달리 너무 쉽게 파스스 부서지는 마카롱을 고이 들고 집으로 왔다.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그사이 혹여 필링이 녹기라도 할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동실 문을 열고 넣는데, 와르르. 마카롱이 다 쏟아졌다. 아등바등 들고 온 게 무색해졌다. 내가 나에게 사과가 필요할까.


 하나씩 살펴보니 꼬끄가 밀려 필링이 이리저리 삐져나왔고 아예 깨진 것도 많았다. 며칠 후 만나는 친구들을 주기 위해 그나마 괜찮은 몇 개를 겨우 빼 두었다. 내가 먹는 건 예쁠 필요가 없다. 아니, 사실 친구들에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마카롱이 전부 부서진다한들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일이다. 문득 부러 마카롱을 떨어뜨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가끔 꺼내 먹을 때 함께 떠올릴 오늘의 기억이 유쾌하지 않을 게 아쉬울 뿐, 부서진 마카롱은 아무럼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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