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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Dec 12. 2020

터진 입도 다시 보자

겉바속촉 스콘 같은 사람이라면

 꿈이 많은 시기는 대개 유년기일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 때 나는 장래희망이 오만가지였다. 장래희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아마 날 키워주셨던 조부모님이나 학교로부터 어설프게 보고 들으며 답습한 것으로 보이는 직업. 이를테면 하버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그 당시 내가 알았던 가장 유명한 대학과 가장 점수를 잘 받던 과목의 기이한 조합), 과학자, 선생님이 있다. 다른 한 부류는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모르는 게 아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불쑥 솟구친 진짜 욕망이 아닐까 싶은 것들. 우체부, 화가 그리고 빵집 주인이 그렇다.


 빵집 주인이 되고 싶었다. 빵이 맛있기도 했지만 폭신폭신한 촉감과 군침도는 냄새를 맡을 때면 항상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리바게트 같은 체인점 빵집도 없던 시골에서 조부모님과 자란 삶의 반경 안에서 버터나 오븐 따위는 너무 낯선 존재다. 고3 때 원서를 넣으면서 한 번 스치는 호기심에 제과제빵과는 어떤 곳인지 검색했던 게 접점의 전부였을 뿐.

 그때 제과와 제빵의 차이를 처음 알았다. 제빵은 이스트(효모)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효과정이 필요하고 당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제과는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하여 발효과정이 필요 없고 설탕을 많이 사용하여 당도가 높다. 비약하자면 제빵은 식빵, 제과는 케이크.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되고 싶었던 건 빵집 주인이 아니라 파티셰였다는 걸. 내가 원하는 건 소유보다 경험이었지만 어릴 때는 그 둘이 언제나 같은 줄만 알았다. 경험의 또 다른 말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을 소유해도 허무했던 건 경험, 그러니까 추억이 충족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내가 자주 하는 원데이 클래스는 그런 경험을 손쉽게 얻는 방법이다. 아주 얕은 경험이긴 하지만 경험은 노력과 시간에 비례하기에 어쩔  없다. 이번에는 클래식한 스콘을 만들러 갔다. 스콘은 밀가루에 버터, 베이킹파우더, 우유 등을 섞어 반죽하되, 별다른 속을 넣지 않고 구운 영국식 빵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담백함에 방점을 둔다. 타르트, 마카롱도 좋지만 스콘은 갖은 무기가 아닌 장검 하나로 펼치는 진검승부처럼 보인다. 영국에서 혼자 여행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라는 작은 마을의 티룸에 가서 홍차와 스콘을 함께 먹었던 적이 있다.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와  담백한 맛이   어울려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기 위해 계란 노른자를 챱챱 발라 코팅해준다.


 이번에 스콘을 만들며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스콘에도 입이 있다는 것이다. 구우면서 자연스럽게 균열이 생긴 부분을 입, 특히 늑대의 입이라고도 부른단다. 영국의 에세이에서 등장한 표현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원은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입'이라는 표현이 썩 그럴싸하다. 깨져서 흠인 줄 알았던 게 실은 망가진 게 아니고 '스콘의 입'이라 따로 칭할 정도로 포인트라는 점. 몰랐을 땐 몰랐지만 알고 보니 덕분에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터진 (스콘) 입도 다시 보자. 그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스콘은 아주 맛있게 구워졌다. 군데군데 입도 잘 터졌다. 얼그레이, 초코, 호두 세 가지 맛 모두 마냥 퍽퍽하지 않고, 겉은 바삭하지만 안은 촉촉한 게 아주 훌륭했다.

 직접 만들어 먹으니 스콘이 더 좋아진다. 나도 스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겉은 투박스러워 보여도 속은 포슬포슬한, 담백하게 진검승부를 할 줄 아는, 차를 마실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그런 사람. 소유한 것은 금방 사라질 수도 있지만 경험은 쉬이 없앨 수 없다. 그래서 체화된 경험은 소유보다 강하다. 이 스콘에 대한 경험도 좋은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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