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라메로 생각에 매듭짓기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는 생각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거라고 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나 일어날 확률이 희박한 일에 대해서도 자꾸만 곱씹는다. 정말 심할 때는 앉은자리에서 대여섯 시간이고 머리를 굴리며 스스로를 좀먹는다. 그렇게 걱정과 근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차가운 얼음물에 푹 빠져서라도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진다. 한철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증상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단순한 작업이다.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또는 단순한 규칙을 따라 반복적으로 해나가서 의식이 이중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얼음물에 빠지는 대신 그림을 그리고, 네모네모로직을 하고, 낯선 길을 걸었다. 최근에 또 하나 발견한 방법은 마크라메다.
마크라메(Macramé)는 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묶어 만드는 공예나 물건들을 일컫는다. 프랑스어로 매듭이라는 뜻으로 사실 그 어원은 아랍어 마끄라마(مقرمة)다. 13세기 아랍에서 손수 짠 직물의 느슨한 끝 부분을 마무리하는 매듭을 마끄라마라고 했는데 이 공예품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또한 마크라메는 선원들의 일반적인 취미가 되었단다. 선박에서 매듭이 쓰일 일은 다양했을 테다. 그중에서도 이 마크라메는 긴 항해의 시간을 견디는 데 아마 그 어떤 매듭보다 유용하지 않았을까.
가장 기본인 스위치 평 매듭으로 작은 손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실을 앞뒤로 열을 맞추고 같은 힘을 주어 잡아당긴다. 동일한 힘으로, 동일한 크기의 매듭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이 단순함이 생각보다 어렵다. 같은 동작을 반복했는데도 어떤 것은 좁고, 어떤 것은 느슨한 게 모양이 들쑥날쑥이다. 하나의 매듭으로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긴 묶음이 되면 확연히 경로를 드러낸다. 어떻게 이 과정을 지나왔는지가 보일 때면 돌이키기에는 다소 늦었다.
내 매듭은 처음 두어 줄이 다소 투박하다. 매듭이 손에 익지 않고 힘 조절에 노하우가 없는 게 그대로 담겨있다. 중반부에서 끝단으로 가야 그나마 제법 균일한 모양을 띤다. 어느 쪽이든, 엉성해도 괜찮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은 많은 흠을 무력화한다.
두 시간 정도 몰두하다가 마지막 매듭을 지었을 때 그제야 다시 머리가 굴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마크라메를 한 건 아니다. 완성된 가방을 보면서 그 시간 동안 잡념을 떨쳐냈었다는 걸 알았다. 우울증도, 마크라메도. 대개의 일들은 그렇게 한철이 지나고 나서 깨닫는다. 지금 겪고 있는 여러 일과 감정도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의미가 있길 바라며 이젠 생각에 매듭을 짓는다. 매듭을 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