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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Jun 30. 2021

진리를 찾아서 (下)

호기심에 사이비 신도 따라가 본 이야기

 교대역 근처 카페에서 나와 우리는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길이 점점 좁아질수록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기예요." 마침내 그들은 걸음을 멈춰 하늘을 가리켰다.


 제단은 허름한   건물 꼭대기의 옥탑방이었다. 엘리베이터조차 없어서 계단을 걸어 올라야 했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계단을   발로 다시 내려올  있을까.  층쯤 오를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나을지 잠깐 고민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위기상황을 대비해 나름 머리를 썼다. 휴대폰의 음량을 최소로   주머니 속에 넣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두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통화가 흔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곳에 갔는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쯤에서    밝힌다.)


 계단을 다 오르자 제법 숨이 찼다. 하지만 옥탑방 앞에서는 긴장이 되어 애써 숨소리를 죽였다. 곧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반겼다. "어머, 새로운 분 오셨어요." 받는 이만 어색한 환대가 이어질 동안 나는 개량한복단이 나온 문 틈 사이로 빠르게 방 안을 스캔 했다.

 그들의 제단은 빛바랜 누르스름한 벽지에 역시 노란 장판, 제사상이 전부였고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종교의 제단과 닮아있었다. 살짝 몸을 기울여 더 안쪽을 들여다보자 잔뜩 쌓인 상자가 보였다.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그땐 물어보지 않았다. '호기심'이라는 내 본래의 목적을 섣불리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때가 됐다. 그들은 내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금이 없다고 하니 작은 정성이라도 괜찮단다. 여기도 돈이 정성이 되는 세상이구나. 그때 나는 별주부전에서 자라를 따라 용궁에 간 토끼가 된 기분을 느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잖아. 내 간을 지켜야 해. 토끼도 그런 마음을 먹었겠지. 토끼는 찰나의 순간 꾀를 부려 비장하게 말했다. "이렇게 부족한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는 건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조금 황당한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혹시나 꿍꿍이를 들킬까 싶어 더 열연을 펼쳤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얼마만큼의 돈을 내는지로 제사상의 급이 달라졌다. 단순한 과일 몇 개에서 구첩반상 차림까지 차림표의 옵션은 다양했다. 나는 집에서 돈을 넉넉하게 모아 와서 제대로 된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했다. 실랑이가 몇 번 오갔다.  "정말 적은 돈이라도 괜찮습니다." "아뇨. 첫 만남일수록 더욱 중요하죠." "지금 얼마나 있는데요?" "삼천 원이요." "아… 삼천 원." 조상님에게 깍듯한 나의 태도에 그들은 나를 더 잡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허름한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내 두 발로 다시 이 계단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카페에서 한참 얘기를 나눴던 두 사람이 나를 교대역까지 바래다줬다. 걸어오는 동안 참지 못하고 방 안에 수북이 쌓인 상자들에 대해 물었다. 사과, 배, 감 따위가 담긴 제사용 과일상자란다. 채워지지 않던 호기심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곧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고 나는 이번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물론 다신 만나지 않았다. 이미 차단을 한 상태라 그 후로 내게 다시 연락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진리'를 찾는 나의 여정은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허무하게 끝났기에 지금 내가 무사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일 테니 아쉬워하지 말자. 그때 내가 찾은 진리는 '지나친 호기심을 조심하자' 정도로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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