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사이비 신도 따라가 본 이야기
교대역 근처 카페에서 나와 우리는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길이 점점 좁아질수록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기예요." 마침내 그들은 걸음을 멈춰 하늘을 가리켰다.
제단은 허름한 육 층 건물 꼭대기의 옥탑방이었다. 엘리베이터조차 없어서 계단을 걸어 올라야 했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 계단을 내 두 발로 다시 내려올 수 있을까. 이 층쯤 오를 때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나을지 잠깐 고민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위기상황을 대비해 나름 머리를 썼다. 휴대폰의 음량을 최소로 한 채 주머니 속에 넣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두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 통화가 흔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곳에 갔는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이쯤에서 한 번 더 밝힌다.)
계단을 다 오르자 제법 숨이 찼다. 하지만 옥탑방 앞에서는 긴장이 되어 애써 숨소리를 죽였다. 곧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반겼다. "어머, 새로운 분 오셨어요." 받는 이만 어색한 환대가 이어질 동안 나는 개량한복단이 나온 문 틈 사이로 빠르게 방 안을 스캔 했다.
그들의 제단은 빛바랜 누르스름한 벽지에 역시 노란 장판, 제사상이 전부였고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종교의 제단과 닮아있었다. 살짝 몸을 기울여 더 안쪽을 들여다보자 잔뜩 쌓인 상자가 보였다.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그땐 물어보지 않았다. '호기심'이라는 내 본래의 목적을 섣불리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때가 됐다. 그들은 내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금이 없다고 하니 작은 정성이라도 괜찮단다. 여기도 돈이 정성이 되는 세상이구나. 그때 나는 별주부전에서 자라를 따라 용궁에 간 토끼가 된 기분을 느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잖아. 내 간을 지켜야 해. 토끼도 그런 마음을 먹었겠지. 토끼는 찰나의 순간 꾀를 부려 비장하게 말했다. "이렇게 부족한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는 건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조금 황당한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혹시나 꿍꿍이를 들킬까 싶어 더 열연을 펼쳤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얼마만큼의 돈을 내는지로 제사상의 급이 달라졌다. 단순한 과일 몇 개에서 구첩반상 차림까지 차림표의 옵션은 다양했다. 나는 집에서 돈을 넉넉하게 모아 와서 제대로 된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했다. 실랑이가 몇 번 오갔다. "정말 적은 돈이라도 괜찮습니다." "아뇨. 첫 만남일수록 더욱 중요하죠." "지금 얼마나 있는데요?" "삼천 원이요." "아… 삼천 원." 조상님에게 깍듯한 나의 태도에 그들은 나를 더 잡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허름한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내 두 발로 다시 이 계단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카페에서 한참 얘기를 나눴던 두 사람이 나를 교대역까지 바래다줬다. 걸어오는 동안 참지 못하고 방 안에 수북이 쌓인 상자들에 대해 물었다. 사과, 배, 감 따위가 담긴 제사용 과일상자란다. 채워지지 않던 호기심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곧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고 나는 이번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물론 다신 만나지 않았다. 이미 차단을 한 상태라 그 후로 내게 다시 연락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진리'를 찾는 나의 여정은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허무하게 끝났기에 지금 내가 무사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일 테니 아쉬워하지 말자. 그때 내가 찾은 진리는 '지나친 호기심을 조심하자' 정도로 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