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조각조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비또바 Aug 30. 2021

이것은 코딩 이야기가 아니다.

뭔지도 모르고 시작하는 코딩

 노파심에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코딩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코딩'이라는 단어가 단어가 오조 오억 번은 나오겠지만 코딩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기대할 수 없다. 코딩보다는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그것도 전혀 모르는 분야를 시작한 신출내기의 이야기. 코딩보다는 초딩 일기에 가깝다. 나중에 보고 내가 이렇게 무지했구나, 하고 낄낄댈 심산으로 쓰는 글이다.


 코딩이 유행한 건 꽤 오래지만 나는 코딩을 줄곧 다른 별의 화제처럼 여겼다. 그러다 코딩이 초중고 정규과목으로 편성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배워보고 싶어졌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필수 언어'같은 그럴싸한 수식보다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집합을 만들어두고 싶다는 욕망이 동기가 됐다. 어린 조카도, 자녀도 없는 나는 이런 지식의 교집합 조차 없으면 젊음으로부터 더욱 쉽게 고립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새롭고 낯선 것을 피하는 건 정신적 노화의 지름길이라고요.


 뭔지도 모르면서 시작해 보는 건 내 주특기지만 이번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배우는 OO', '혼자서도 끝내는 OO'식의 입문서들이 있기 마련이다. 코딩은 그런 입문서조차 어렵다. 우리 반 전교 1등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한껏 설명하고는 여전히 이해 못한 나를 보며 '아니, 이 쉬운 걸 왜 이해 못 해?' 하는 느낌이랄까. 네 코딩 너나 쉽지. 쉽다고 했으면서 왜 안 쉽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책 한 권, 영상 몇 개로 간만 보다가 미루고 미루던 코딩을 진짜 배우기로 했다. 퇴사를 하고 내일 배움 카드를 통해 학원을 등록했다. 주중 하루 6시간 집중 코스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하지만 집에서 컴퓨터 사용이 어려운 학생들 일부는 학원에 나와 수업을 듣는다. 오전 9시 30분 수업이라 모처럼만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얼마만의 아침 기상인지,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너무 졸렸다. 원래도 수업시간에 자주 조는 편인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오프라인 수강생은 나 포함 세 명. 강사님은 오시자마자 사는 지역과 나이, 결혼 여부를 물어보셨다. 이토록 사적인 질문을 전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셔서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순순이 말을 하게 됐다. 강사님은 많은 것들을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사적인 질문들이 그랬고, CPU니 디코딩이니 하는 낯선 용어들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마음속 진입장벽을 스르르 녹여버린다는 점에서 나는 어느새 코딩 강사님을 내 마음속에 저장. 강사님은 묘하게 웃기신 분이셨다. 선생님이 좋으면 일단 그 수업은 반이 성공한 것이라 본다.


 코딩 첫 시간, 중학교 컴퓨터 수업 때 어렴풋이 들었던 것들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오랜만이야 워즈니악. 진공 관아 잘 지냈니? 강사님께서는 그런 것들은 그저 흘려들어도 된다고 하셨다. 그중에서 입력, 저장, 출력으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프로세스는 꽤 강조하셨는데 그나마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결국 졸았다. 강사님께 죄송해서 손등도 꼬집고, 주먹도 쥐었다 폈다 하며 애를 썼지만 졸음은 불가항력이다.


 그래도 다행히 오후 시간에는 조금 정신을 차렸다. 강사님께서는 우선 코딩을 할 환경 세팅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코딩이 컴퓨터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면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다. JAVA, C++ 등 지나가다 한 번 들어봤던 이름이 컴퓨터 언어의 예다. 각 언어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사물인터넷, 제어 쪽은 C언어가 유리하고, 웹 쪽은 JAVA를 많이 쓴단다. (왜...?)


 우리는 그중에서도 쉽고 간결한 문법으로 입문자에게 적합한 파이썬을 배운다고 했다. 파이썬은 그런 장점을 갖는 대신 속도가 느리고 복잡한 코드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모르겠다. 아직 쉬운 것도 안 해봤는 걸. 부디 그 한계를 몸소 느껴볼 수 있길 바란다. 그 외에도 객체 지향 언어니, 동적 타이핑 언어니 하는 특징들도 듣긴 했는데 아무리 설명을 찾아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도 하다 보면 이해하는 날이 오려나.


파이썬을 설치하고 이제 시작하나 싶었는데 강사님께서 또 파이참이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하셨다. 설치에 또 설치다. 아니, 파이참은 또 뭔가요. 파이썬 짝퉁인가요. 코딩은 언제 시작합니까? 아, 이미 시작했다고요? 그렇게 첫 수업이 반이 지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보이후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