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하네케 <일곱 번째 대륙>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이 '스크린'같아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면 어떨까. 상대방이 무슨 생각하는지 전혀 모를 때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일곱 번째 대륙의 인물들이 그러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그저 기억되어 남은 것은 분절된 신체의 클로즈업, 얼굴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의 이미지들이다.
일곱 번째 대륙에서는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무척이나 많이 쓰인다. 또한 무수히 많은 암전으로 뚝뚝 끊기기까지 한다. 이렇게 분절된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가까이서' 보는 데도 전혀 알 수 없는 그들이기에, 처음에는 답답했고 갈수록 불안하다. 이런 느낌은 계산대를 두드리는 점원이 나오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단절의 반복. 영화에는 형식은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세 식구가 나온다. 그러나 달라진다고 해서 관객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죽음을 택하는 상황까지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마지막까지 남은 TV와 앞의 이미지들이 교차 편집되어 나오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프레임까지 함께 보이던 TV가 점점 클로즈업되며 나중에는 TV의 지지직거리는 화면만이 화면의 전체를 메운다. 그 화면을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마치 영화 속에서 TV를 보고 있는 인물이 된 것 같다. 끊임없이 본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그를, 그것을, 그 세상을 알 수 없다. 스크린은 '훤히' 보여주지만, 진짜는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것이다. 스크린에 존재하는 벽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