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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J Aug 06. 2015

살 빠지는 한약,  살찌는 한약

한약 다이어트를 하기 전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

어렸을 때 한약을 먹어서 살이 쪘다는 말은 어느새 마치 당연한 것처럼 들립니다. 반대로 한약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며 한약 다이어트가 광고를 타기도 합니다.

아니 그래서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찌는 걸까요? 빠지는 걸까요?


여기에 대해 한방내과 전문의가 명쾌한 답변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한약은 몇 칼로리일까?

어차피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칼로리의 덧셈과 뺄셈입니다. 우리가 소모하는 칼로리 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체내로 들어 오면 살이 찌고, 더 적은 칼로리가 체내로 들어 오면 살이 빠집니다. 한약 자체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한약은 거의 대부분이 풀 뿌리와 나무 껍질, 나뭇가지, 열매, 꽃, 씨앗 등의 식물성 재료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론 널리 알려진 사슴의 덜 자란 뿔 같은 동물성 한약재도 있고, 먹으면 살이 찔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조청이나 설탕도 한약재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식물성 재료입니다.

마찬가지로 식물성 재료만으로 우려내는 차 한 잔이나 아메리카노 한 잔에 어느 정도 칼로리가  나올지 계산하는 것과 한약 1봉에 어느 정도 칼로리가  나올지 계산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찌기도 하고 빠지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약을 먹으면'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애초에 한약 자체가 매우 다양합니다. 보통 한약이라고 말하면 한의사가 처방한 약을 말하는데, 한의사들이 처방하는 한약 각각의 종류도 수 백여 종이 넘고, 그 조합까지 따지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니 한약 먹으면 어떻다더라는 말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들으면 참 어려운 말인 것이죠.


한약은 그 자체가 영양분이 되는 효과 보다 우리 몸에 있는 신호등을 조절합니다.

우리 몸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를 렙틴과 그렐린이라고 부릅니다. 렙틴은 식욕을 억제시키고, 그렐린은 식욕을 일으키는 신호를 보냅니다. 실제로 파고 들어가며 오렉신, 아디포넥틴, 그리고 더 중요한 핵심 키인 코티졸과 갑상선 호르몬까지 연결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체내에서 켜지고 꺼지는 신호등에 따라 허기를 느끼고 음식을 찾기도 하고, 음식을 눈 앞에 두고도 전혀 먹을 생각이 안 나게 되기도 합니다.

한약이 1차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직접적인 칼로리가 아니라 이 식욕에 대한 신호등인 것이죠.


유감이지만, 80년대만 해도 어렸을 때 한약 먹고 살이 찌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한약 자체로는 칼로리도 없고 신호등 켜기 같은 식욕 조절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80~90년대만 해도  어린아이에게 있어 최고의 미덕은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아이에게 온갖 것을 다 챙겨 먹였고, 아이는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아프게 되니까 잘 못 먹게 됩니다. 그러면 한약을 먹입니다. 소화가 잘 됩니다. 또 먹입니다. 더 이상 못 먹습니다. 한약을 먹입니다... 이것이 반복된 것이죠.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달리 한약은 상당히 비쌌고, 한약을 해 줄 정도 집안이면 아이들 먹는 것을 사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살찔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살이 찌면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한약 때문에 살이 찌는 체질이 된 것이 아니라 하도 먹이니까 많이 먹는데 몸이 적응해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한약을 먹지 않아도 많이 먹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꾸준히 많이 먹게 됩니다. 그러면 그 체중을 유지하게 되는 겁니다. 그걸 무작정 한약 탓으로 돌리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어쩌면 지금도 어린아이의 미덕은 잘 먹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다이어트 한약은 정말로 도움이 될까?

일상적이지 않은 이유로 식욕의 조절 신호가 어긋나게 되면 한약으로 교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절제불가 재발성 위암에 항암요법(S1+CDDP)을 받게 되면 식욕부진이 부작용으로 흔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육군자탕이라는 약을 처방하게 되면 혈중 그렐린 농도가 저하되지 않고  유지될 뿐 아니라 식욕부진 증상도 개선된다고 합니다. 또 반대로 비만 실험을 위해 쥐에게 일부러 고지방 식이를 급여하는 실험 모델에서 한약 투여군에서는 체중 증가가 억제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문제는 다이어트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빼면  뺄수록 더 빼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당연히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다이어트를 원하는 우리 몸은 현재 날씬한 상태가 아니라 비만한 상태에 적응해있고,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몸뚱아리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단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어트 약으로도 다이어트가 힘든 이유

미국에선 다이어트 식품의 용도로 사용이 금지된 마황을 비롯해 교감신경을 항진시키는 각종 향정신성 의약품들은 실제로 식욕을 저하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대사도 항진되어서 살이 빠지는 것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식욕이  저하된다고 하더라도 잘 먹으면 섭취하는 칼로리가 더 많아지니까 살이 빠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처음에 식욕을 의지로 조절하기 쉽지만 강한 의지가 없다면, 식욕 조절은 점점 더 힘들게 됩니다. 우리 몸은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체내의 여러 신호등을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는데, 섭취하는 에너지가 소모하는 에너지 보다 너무 적어지게 되면 체내의 신호등은 계속해서 섭취를 늘리라는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배 고픕니다. 정말 배가 고픕니다. 모니터를 핥아 먹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다이어트 한약을 먹어도 음식을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실제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더라도 약 3주~6주 정도, 평균적으로 4주면 내성이 생겨서 식욕 조절 효과가 급감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약을 먹어도 당장은 식욕이 떨어지지만 한 달 정도 안에 다시 배고픔이 마구 느껴지고 음식을 보면 엄청 먹고 싶어 집니다. 우리 몸의 조절 체계는 생각 이상으로 쓸 데 없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식욕 억제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할 지라도 다이어트 한약은 분명 다이어트에 일시적인 도움은 줍니다. 이유는 다이어트 한약이라는 것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체중이 늘어나고 줄어 드는 것은 결국 체내로 흡수하는 칼로리와 사용하는 칼로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몸은 항상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먹는 것만 줄이게 되며 대사율도 같이 줄어 들어서 체중이  유지되고 운동만 늘리면 영양을 보다 효율적으로 흡수해서 체중을 어떻게든 유지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체중이 빠지는 만큼 더더욱 에너지를 갈망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몸의 자기 조절 능력이 다이어트로 체중이 줄어 들수록 다이어트를 유지하기 점점 힘들어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한약 다이어트에서도 운동을 병행해야 하고 식욕 조절과 먹는 양을 일정하게 하려는 노력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차라리 너무 힘들면 운동 강도를 무작정 올리기 보다는 체중을 현재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쉬는 기간을 두고, 우리 몸이 현재 체중에 적응하면 다시 다이어트 강도를 높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극단적일 정도로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도 버틸 수 있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운동을 안 하고 살을 뺄 수는 없다. 운동 없이 적게 먹으면 인체는 결국 그 상황에 적응해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이어트 한약의 세계

아까도 언급했지만, 한약은 정말 다양합니다.

다이어트에 있어서 한약이든 양약이든 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입니다. 게다가 우리 몸의 신호등은 찌는 쪽으로만 발달했지 빼는 쪽으로는 극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든 안 빼려고 버티게 되어 있습니다.

다이어트 한약이니까 살이 빠지겠지 식욕이 억제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과 달리, 다이어트 한약의 치료 목표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식욕 억제

내성으로 인해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초기 일주일에서 2주일 정도의 단기 플랜에 적합하고, 반복되는 과식, 간식, 야식 등으로 식욕의 하루 스위치가 엉망이 된 경우, 음식의 적절한 양과 식사 플랜을 스스로 깨닫고 자시에게 알맞은 식사 습관을 계획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단기간 적용하게 됩니다. 일단 일주일만 적게 먹는 것을 지켜도 천천히 먹게 되면 1회 식사량 자체가 상당히 줄어 들게 됩니다.

이 경우에 사용하는 한약에는 곡류를 포함해서 식사 한 끼 대신 섭취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욕이  억제되었을 때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심한 영양 불균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복용 초기에는 어지럼증 등이 흔하게 생길 수 있어 운전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 등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대사 항진

가장 무의미한 방법이지만 단기간 내 심혈관계 이상이 없는 젊은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방법입니다. 대사 자체를 항진시키기 때문에 고체온, 고혈압, 불면, 빈맥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생깁니다. 운동을 해서 대사를 늘리는 게 더 좋은 방법입니다. 직접적인 목표로 해서 효과를 본다기 보다는 식욕 억제를 시키는 약을 좀 더 파워풀하게 사용하게 되면 자연히 동반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3. 소화 조절

소화 자체를 억제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시적이지만 소화기를 무력하게 하는 약을 복용하게 되면 과식만 하면 토하거나 설사, 복통이 생기게 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위험성이 높아서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먹는 음식물의 양이 줄어 들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게 하고 변비가 생기지 않게 하는 보조적인 요법을 시행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4. 운동 기능 향상

심폐지구력을 향상시켜 유산소 운동의 지속능력을 향상시킵니다. 가장 바람직한 다이어트 한약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5. 근육 피로 해소

유산소 운동이든 무산소 운동이든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의 피로는 누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은 피로가 더 빠르게 누적됩니다. 근육의 피로는 한약과 침을 병행하게 되는데 침은 근육의 피로를 완화시키고, 젖산 농도를 낮추는 한약도 있습니다. 특히 무산소 운동을 하게 되는 경우엔 필수적입니다.


6. 통증 조절

운동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근육통이나 건증이 쉽게 발생하고 특히 고도 비만 환자는 관절도  위협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기적으로 운동에 따르는 통증을 관리해 주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추천은 통증이 동반되는 운동 강도에서는 주 3회 이상의 외래 관리, 과체중인 경우에는 운동 시 안정성 문제로 통증이 없어도 부상 예방을 위한 주 1회 이상의 외래 관리를 추천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어차피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식욕 조절만을 목표로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욕 조절은 필요한 경우 가급적 단기간에 확실하게 식사 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식사량 관리와 운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을 관리하는 쪽이 더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다이어트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다이어트는 식이요법과 운동의 병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운동을 할 때마다 아프고 심한 피로를 느끼게 되면 다이어트를 향한 강철 같던 의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간의 다이어트 플랜을 계획한다면 지속 가능한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의사는 당신의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파트너지, 대신 살을 빼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이어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입니다. 그냥 살 빠지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지속 가능한 관리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지를 다이어트 파트너의 입장에서 상담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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