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내려 꽃힌 충격
(스포가 매우 포함되어 있는 글. 누구든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고, 또 같이 떠들면 좋겠다)
소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에요.
멘토들은 참 다들 왜그러는지
목적, 삶의 의미...단순하긴
이 장면부터 이 영화를 보는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뭐지? 뭐야?
뭔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보는 기분에서 단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로 순식간에 뒤집어지면서, 물음표가 가득한 채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조 가드너가 겨우 붙잡은 공연 기회를 날리지 않기를 나는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22번이 자기 불꽃을 찾겠다고 뛰어가 버릴 때 진짜 너무 화가 났고, 니 인생으로 그러지 왜 남의 인생에 들어와서 저래?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결국 테리에게 붙잡혀 둘 다 끌려 올라갔을 때, 22번이 곧 스파크를 찾기 직전이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걸 보고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 22번...!!!
처음부터 조 가드너가 '재즈 피아노'를 향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 부러웠다.
조 가드너의 삶의 전당에는 별다를 게 없지만 반짝이는 열정이 있어서 특별해보였다. 다른 어떤 멘토들도 22번에게 해주지 못했던 진정한 삶의 의미 찾기를 조 가드너가 도와줄 수 있겠구나! 이미 찾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조 가드너의 열정에 감명받은 22번이 지구에서 살아볼 생각을 하겠구나, 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게 내가 편안히 보고 있던 스토리였다.
그러니까 22번은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 조 가드너와 빨리 영혼을 바꿔줘서.. 드디어 꿈을 이루는 장면을 보고, 그 마음을 느끼고 설레서 뾰로롱! 하고 지구에 갈 결심을 할 줄 알았는데...
조 가드너의 인생을 바꾸는 순간을 보지 않겠다 작정하고 무작정 뛰어간 22번이 불꽃을 채웠다? 지구행 스티커를 얻었다?? 이게 뭐지?
그래서 조 가드너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22번의 삶의 목적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뭐라고요?
있잖아요, 불꽃. 음악이었나요? 생물학, 아니면 걷기?
그런데 대답이...ㅎㅎ.. 다시 생각해도 그 얼떨떨함이 떠오른다. 어? 스파크는 삶의 목적 같은 게 아니라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찾고 있던 게 스파크고, 그건 삶의 목적이었는데요. 그게 아니라뇨. 예??
나는 여태 뭘 찾고 있었을까. 남들에게는 있는게 나에게는 없다는 공허함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게 열정이라 생각했고 삶의 목표라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런 공허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고?
사실, 아주 먼 옛날 얘기를 할 때에는 이런 자세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20대 초에 제주도를 3주 정도 다녀왔다. 그렇게 다녀오면 대단한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거나 나를 훅 빠지게 할 뭔가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더운 날 열심히 고생하고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동안 꽤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여행 책들에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던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냥 제주도를 다녀왔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훌쩍 다녀올 수 있던 게 젊음이고, 그 나이에 그냥 돈 없이 아무한테나 차도 얻어타고 밥도 얻어먹으면서 지내본 거, 그게 그냥 재밌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는 거. 그게 아무런 대단한 것을 나에게 남겨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다는 것. 오히려 뭔가 남겨가려는 마음때문에 제대로 못 즐긴게 후회됐다.
그런데 그건 그냥 젊을 때, 20대일때 이야기고. 난 이제 30대니까 달라져야하지 않나. 이제 정말 인생의 의미를 잘 남겨가면서 뭐라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이 해방감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하는 말들이 공허한 말이 아니고 그냥 정말 지금을 살아라, 현재에 있어라라고 하는게 이런 뜻이었구나. 아, 내가 괴로운 이유는 오직 나의 생각때문이었구나. 그렇구나.
영화를 다 보고, 온 몸이 해방감과 기쁨과 불빛으로 가득 차서 어딘가에 마구 터트려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 잠이 들었다. 평온하고, 행복하게.
이 영화를 본 다른 어른들은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영화를 봤을까. 조 가드너? 22번? 아 안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나는 22번에게 정말 많은 공감을 했다.
첫번째는 지구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순간순간 홀딱 반한다는 점. 와! 맛있는 음식 많아! 하늘 예뻐! 우와 바람!! 나는 맛있는 걸 참 많이 좋아하고 하늘을 참 예뻐하고 수많은 사진을 찍고 작은 순간순간들에 깊이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건, 정말 작은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런 건 삶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일상일 뿐이야라는 가드너의 말을 나 스스로에게 늘 하고 있었으니.
두번째는 이것도 저것도 약간씩 깔짝거려봤지만 정작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용기는 없었던 것. 적당한 재능은 오히려 독이라고. 뭘 해도 적당히는 하는 수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도 확고하게 길을 정해 나아가는 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직 잘 시켜준다는 학원에 들어가서도, 마무리 시점에 내가 취직을 할 거란 사실을 솔직히 믿을 수 없었고, 안좋은 일들이 겹쳐 일어나면서 아예 아프다는 핑계로 구직준비를 하지 않은지 4달이 넘어가고 있다.
세번째는 수많은 '멘토'들의 이야기에 둘러쌓여서 오히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더 심해지기만 한 것. 나는 그만큼 대단하지 못해, 나는 준비가 안됐어, 나는 저렇게 살 수 없을 거야. 안 할래. 안 움직일래. 수많은 자기 개발서를 읽고, 습관을 형성하려 노력하고, 일기를 쓰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화가 아니라 두려움을 얻었다. 이 모든 노력이 향하는 방향이 없었기에. 멘토들이 가지고 있기 마련인 그 하나의 불타는 열정을 살려가는 과정으로 하나하나 차곡차곡 뭔가 쌓이는 게 아니라 그냥 산발적으로 조금씩.. 뭐가 올라가다 말고 할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삶의 산을 쌓는 게 너무 무서웠다. 초석이 어설프면 어쩌지 위치가 나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에 둘러쌓여서. 내 스스로가 항상 등산 초입에 앉아만 있는 사람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등산하는 사람들을 더러 비웃기도 하고 더러 부러워도 하면서, 정작 한 발자국도 못 떼고 있었는데. 애초에 산은 없었다.
그냥 앉아있는 내가 있었을 뿐. 그리고 '만약 제대로 방향을 잡고 세웠더라면 내가 세웠을지 모를' 거대한상상속의 산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세워 나가는 산의 반짝이는 부분만을 보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던 내가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