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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누리 Nov 18. 2024

영화 소울을 본 사람과 나누는 감상평

스파크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내려 꽃힌 충격


(스포가 매우 포함되어 있는 글. 누구든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고, 또 같이 떠들면 좋겠다)


소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에요.
멘토들은  다들 왜그러는지
목적, 삶의 의미...단순하긴 



이 장면부터 이 영화를 보는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뭐지? 뭐야?

뭔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보는 기분에서 단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로 순식간에 뒤집어지면서, 물음표가 가득한 채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조 가드너가 겨우 붙잡은 공연 기회를 날리지 않기를 나는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22번이 자기 불꽃을 찾겠다고 뛰어가 버릴 때 진짜 너무 화가 났고, 니 인생으로 그러지 왜 남의 인생에 들어와서 저래?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결국 테리에게 붙잡혀 둘 다 끌려 올라갔을 때, 22번이 곧 스파크를 찾기 직전이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걸 보고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 22번...!!!


처음부터 조 가드너가 '재즈 피아노'를 향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 부러웠다.

조 가드너의 삶의 전당에는 별다를 게 없지만 반짝이는 열정이 있어서 특별해보였다. 다른 어떤 멘토들도 22번에게 해주지 못했던 진정한 삶의 의미 찾기를 조 가드너가 도와줄 수 있겠구나! 이미 찾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조 가드너의 열정에 감명받은 22번이 지구에서 살아볼 생각을 하겠구나, 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게 내가 편안히 보고 있던 스토리였다.  


그러니까 22번은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 조 가드너와 빨리 영혼을 바꿔줘서.. 드디어 꿈을 이루는 장면을 보고, 그 마음을 느끼고 설레서 뾰로롱! 하고 지구에 갈 결심을 할 줄 알았는데...


조 가드너의 인생을 바꾸는 순간을 보지 않겠다 작정하고 무작정 뛰어간 22번이 불꽃을 채웠다? 지구행 스티커를 얻었다?? 이게 뭐지?

그래서 조 가드너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22번의 삶의 목적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뭐라고요?
있잖아요, 불꽃. 음악이었나요? 생물학, 아니면 걷기?


그런데 대답이...ㅎㅎ.. 다시 생각해도 그 얼떨떨함이 떠오른다. 어? 스파크는 삶의 목적 같은  아니라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같았다. 내가 찾고 있던 게 스파크고, 그건 삶의 목적이었는데요. 그게 아니라뇨. 예??


나는 여태  찾고 있었을까. 남들에게는 있는게 나에게는 없다는 공허함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게 열정이라 생각했고 삶의 목표라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런 공허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고?


사실, 아주  옛날 얘기를  에는 이런 자세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20대 초에 제주도를 3주 정도 다녀왔다. 그렇게 다녀오면 대단한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거나 나를  빠지게  뭔가를 찾을  있을  알았는데 그냥 더운  열심히 고생하고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동안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여행 책들에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던데??


10이 지나고  그냥 제주도를 다녀왔다는   자체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훌쩍 다녀올  있던  젊음이고,  나이에 그냥  없이 아무한테나 차도 얻어타고 밥도 얻어먹으면서 지내본 , 그게 그냥 재밌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는 . 그게 아무런 대단한 것을 나에게 남겨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다는 . 오히려 뭔가 남겨가려는 마음때문에 제대로  즐긴게 후회됐다.


그런데 그건 그냥 젊을 , 20대일때 이야기고.  이제 30대니까 달라져야하지 않나. 이제 정말 인생의 의미를  남겨가면서 뭐라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해방감을 뭐라 설명할  있을까.


불교에서 하는 말들이 공허한 말이 아니고 그냥 정말 지금을 살아라, 현재에 있어라라고 하는게 이런 뜻이었구나. 아, 내가 괴로운 이유는 오직 나의 생각때문이었구나. 그렇구나.


영화를 다 보고, 온 몸이 해방감과 기쁨과 불빛으로 가득 차서 어딘가에 마구 터트려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 잠이 들었다. 평온하고, 행복하게.


이 영화를 본 다른 어른들은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영화를 봤을까. 조 가드너? 22번? 아 안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나는 22번에게 정말 많은 공감을 했다.


첫번째는 지구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순간순간 홀딱 반한다는 점. 와! 맛있는 음식 많아! 하늘 예뻐! 우와 바람!! 나는 맛있는 걸 참 많이 좋아하고 하늘을 참 예뻐하고 수많은 사진을 찍고 작은 순간순간들에 깊이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건, 정말 작은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런 건 삶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일상일 뿐이야라는 가드너의 말을 나 스스로에게 늘 하고 있었으니.


두번째는 이것도 저것도 약간씩 깔짝거려봤지만 정작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용기는 없었던 것. 적당한 재능은 오히려 독이라고. 뭘 해도 적당히는 하는 수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도 확고하게 길을 정해 나아가는 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직 잘 시켜준다는 학원에 들어가서도, 마무리 시점에 내가 취직을 할 거란 사실을 솔직히 믿을 수 없었고, 안좋은 일들이 겹쳐 일어나면서 아예 아프다는 핑계로 구직준비를 하지 않은지 4달이 넘어가고 있다.


세번째는 수많은 '멘토'들의 이야기에 둘러쌓여서 오히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더 심해지기만 한 것. 나는 그만큼 대단하지 못해, 나는 준비가 안됐어, 나는 저렇게 살 수 없을 거야. 안 할래. 안 움직일래. 수많은 자기 개발서를 읽고, 습관을 형성하려 노력하고, 일기를 쓰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화가 아니라 두려움을 얻었다. 이 모든 노력이 향하는 방향이 없었기에. 멘토들이 가지고 있기 마련인 그 하나의 불타는 열정을 살려가는 과정으로 하나하나 차곡차곡 뭔가 쌓이는 게 아니라 그냥 산발적으로 조금씩.. 뭐가 올라가다 말고 할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삶의 산을 쌓는 게 너무 무서웠다. 초석이 어설프면 어쩌지 위치가 나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에 둘러쌓여서. 내 스스로가 항상 등산 초입에 앉아만 있는 사람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등산하는 사람들을 더러 비웃기도 하고 더러 부러워도 하면서, 정작 한 발자국도 못 떼고 있었는데. 애초에 산은 없었다.


그냥 앉아있는 내가 있었을 뿐. 그리고 '만약 제대로 방향을 잡고 세웠더라면 내가 세웠을지 모를' 거대한상상속의 산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세워 나가는 산의 반짝이는 부분만을 보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던 내가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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