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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작가 Dec 21. 2023

무리에서 스스로 나온 돌고래

고래를 동경한 돌고래 한 마리

인간으로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어떤 인간을 만나거나 모임에 참석한 뒤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이 온몸에 묻어있는 느낌을 아는가? 집에 돌아와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어도 남아 있는 그 찝찝한 느낌. 심하면 몇 년 동안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찝찝하고 불편하지만 꾸역꾸역 이어나간다.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많다.


기분이 나빠도 웃는다.

웃기지 않는데 웃는다.

화가 나도 꾹 참는다.

눈물을 꾹 참는다.

이해가 안 가는데 이해하는 척한다.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상처를 받아도 티 내지 않는다.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사회생활'이라고 부를 수 없다. 아니, 부르기 싫다. 불러야만 한다면 나는 그냥 사회생활고자라고 말하련다.


사회생활고자는 약 7년간 사회생활을 했다. 그리고 병이 낫다.


나는 왜 이 찝찝하고 불편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였을까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불안함'이다.

이 무리에서 도태되면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불안감.

참 웃기다. 죽지 않기 위해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는데 결국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죽어가고 있는 거 나를 괴롭히는 공간에서 괴로워하면서 죽기는 싫었다. 도망쳤다.


또 하나는 '욕심'이다.

이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쏟아낸 나의 노력. 이 무리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을 놓치기 싫었다.

욕심을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죽음 앞에서 내려놓게 되었다. 내려놓았더니 아파 죽을 것 같던 어깨가 조금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욕심이라는 짐 없이 자유롭게 바다에서 헤엄치다 조용한 바닷속에서 죽고 싶다. 고래처럼. 아- 한 가지 욕심이 있다. 내가 죽고 나서 남긴 무언가로 인해 어떠한 생명이 조금이나마 연장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신체의 일부 그리고 나의 이야기.

버킷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다. 한국에 돌아가면 장기기증을 신청하는 것.






제주도 돌고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 무리 중 가장 뒤쪽에 조금 떨어져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돌고래였다. 이 돌고래는 꼬리의 절반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돌고래들보다 더 많이 버둥거리는 헤엄을 치며 무리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멋있게 헤엄치는 돌고래 보다 꼬리의 절반이 없는 돌고래의 헤엄이 더 눈길을 끌었다. 마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만약 내가 돌고래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봤다. 꼬리의 절반이 없이 헤엄쳤던 돌고래와 비슷한 느낌이겠다. 이 무리에서 도태되면 죽을 것 같아 반 밖에 없는 꼬리로도 어떻게는 발버둥과 같은 헤엄을 치며 무리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돌고래. 이 돌고래는 어느 날 옆을 지나가는 거대한 고래 한 마리를 보고 생각한다. '나도 저 고래처럼 혼자서도 넓은 이 바다를 살아갈 수 있었으면...'하고. 다른 돌고래들을 쫓아갈 필요 없이 내가 헤엄치고 싶은 속도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칠 수 있는 여유. 거대한 몸집으로 멋있게 거대한 바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를 부러워한다.


걱정이 많은 돌고래는 혼자인 고래가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생각보다 평화롭지만은 않은 거대한 바다를 혼자 헤엄치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오랜 기간 성치 않은 몸으로 아등바등 헤엄치다 보니 지쳐버렸다. 다른 돌고래들의 시선과 속닥거림 또한 이제 지긋지긋하다. 돌고래는 결심했다. 비록 나는 고래는 아닐지 모르지만 남은 삶은 고래처럼 살아보리라고. 혹 이 자유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후회는 안 한다. 나는 무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무리와 나는 맞지 않는다.


혹시 모른다. 무리를 나와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이 돌고래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아 자기와 맞는 무리를 만나게 될지도-


무리 지어 살아갈 필요가 없는 고래를 동경한다.


세계여행 하면서 고래는 꼭 직접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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