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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작가 Dec 13. 2023

나의 정신질환을 이해해 줘

2019.10.14

그런 말이 있다. 부모님에게 꼭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말.


니가 나중에 니 자식을 낳아봐라 그래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


부모마음은 자식을 낳아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은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은 있다. 아 정신과의사선생님은 제외로 하겠다.


우울증을 진단받기 전 모든 힘든 상황에 대해 내 탓만 했던 적이 있다. 내가 사회생활을 잘 못해서 그런 거겠지,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남들 다 힘든데 나만 투정 부릴 수 없지 등등...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서는 그래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원인은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도 이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은 큰 욕심이었을까? 생각보다 나의 이 질병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거나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으면 내 상황에 대해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다. 바로 눈에 보이니까. 아프고 힘들다고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를 해주고 배려를 해준다. 쉽게 도움을 준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배려를 받을 수 있다.


정신질환 또한 질병임은 마찬가지인데 참... 슬픈 질병인 것 같다. 질병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해를 해달라고 말을 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다. 심지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쉽게 상처도 준다. 환자한테.




처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환자분은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겉보기에도 안 괜찮아 보이는 우울증 환자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를 바라기 위해서는 자살시도를 해야 할까? 자해 흔적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그러면 좀 더 이해를 바랄 수 있게 될까? 단 한 명이라도 이 우울증에 대해 아니 나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시도는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살시도를 해본 적은 없다. 수 없이 다양한 상상만 할 뿐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든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어도 이런 생각은 끊기지 않는다. 예컨대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속에서 프리다이빙을 한 순간이 있었다. 오가사와라 캐비지 비치라는 곳이었고 관광객들도 없어서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정말 깨끗한 시야와 많은 물고기들 아름다운 산호... 그 광경을 보는 몇 초 사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 이렇게 아름다운 이 바닷속에서 죽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질환이 없는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냥 '와~ 너무 예쁘다!!! 좋다!!! 행복하다!!!'라고만 생각하겠지? 겉으로는 나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 실제로 만약 내가 자살을 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바닷속에서 고통 없이 죽고 싶다고 결정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데? 나는 바다도 좋아하고 시체를 찾기도 어려울 테니. 그냥 바닷속에서 어떠한 생명체들에게 영양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기기증을 하고 싶은데 못한다는 것.




자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일까? 자살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영향을 크게 받는다. 2019년 10월 14일 설리의 자살소식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 중 한 명이 기사를 봤는지 격양된 큰 목소리로 "선생님!!! 그거 알아요??? 설리 자살했대요~!!!"라고 말하던 그 순간.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나에게 소식을 알려준 사람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은 전혀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는 없었다. 그저 동네방네 떠들어댈 수 있는 하나의 재미있는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너무 불쾌했다.


그녀 또한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우울증을 앓고 있지는 않았을까? 자신을 이해해 주는 가까운 사람이 곁에 없지는 않았을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치료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가까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은 정말 큰 힘이 되기도 더 자살하고 싶게도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평생 내 옆을 떠나지 않고 든든하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자살을 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우울증은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시간만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치료되는 질환이 아니다. 이게 다 나은건지 아닌 건지 판단하기도 참 어렵다. 재발도 잘한다. 참 거지 같은 질병.


나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가까운 사람은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인 '와노보노'이다. 와노보노는  번도 자살에 대해 생각해   없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화목하고 끈끈한 가정에서 자란 영향인지 나와는 정말 다르게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것에 많이 끌리기도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쉽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정신질환을 고백했다. 진지하게 만나고 싶고 이를 숨기는 것은 거짓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심이 나서인지 이해를 바랐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어렵다. 내가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면 "?"라고 묻는 사람이다.  질문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조차도 이제는 .


때로는 내가 깨끗한 이 사람을 더럽게 물들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죄책감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 반대로 내가 조금이나마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나는 나에 대한 글을 쓴다. 나 아프니까 봐달라는 외침이다.




정신과에 진료를 보러 가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항상 사람이 많았다. 주위에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고 건너 건너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사람들도 있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유명인의 자살 소식은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준다. 유명인의 우울증 고백 및 극복하는 소식이 많이 들린다면 조금 더 힘이 되지 않을까?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같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는 소식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자체가 대단한 일임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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