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음식 한두 가지쯤은 먹지 않는 것이 있다. "안 먹는 음식 있어요?"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수'이다. 아마 세계여행을 하고 있어서 먼저 생각이 났다. 고수의 향이 너무 싫다. 나에게는 하수구향이 난다... 이 외에도 생간, 천엽, 순대 허파는 먹지 않는다. 이외에는 딱히 안 먹는 음식은 없다. 생각보다 음식에 대해서는 편식을 안 하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나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꼬막'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 할머니집에 가면 자연스럽게 먹던 꼬막무침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명절 때처럼 할머니집에서 꼬막무침을 먹었는데 얼굴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얼굴 전체와 목까지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할머니는 화분에 있던 알로에를 잘라 얼굴에 발라주셨다. 아직도 할머니의 두꺼운 손바닥의 촉감이 잊히지 않는다. 다행히 피부에만 알레르기가 올라왔고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뒤로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었지만 마음껏 먹지 못했다. 너무 먹고 싶으면 1~2개 정도만 집어먹었다. 안 먹는 음식이 아니라 못 먹는 음식이 처음으로 생겼다.
먹을 것에는 크게 편식하지 않은 나인데 살다 보니 인간관계에 상처를 많이 받게 되면서 인간을 편식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살기 위해서 편식을 하기 시작했다.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탈이 난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와 맞지 않는 인간과 억지로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억지로 억지로 꾸역꾸역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와 호흡기까지 영향을 미치면 죽을 수 있다.
꼬막을 좋아하고 잘 먹었지만 어느 순간 꼬막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피하게 된 것처럼 살다 보면 나와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나와 맞지 않아 질 수 있다. 그 관계는 피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는 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할까 자책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책을 하기 싫어 이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안 먹는 음식이 있다. 편식을 한다. 편식이 심한 사람도 있고 나처럼 나름 이것저것 편식 없이 잘 먹는 사람도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억지로 부모가 몸에 좋다는 핑계로 먹이는 경우가 있지만 성인이 되었다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음식을 편식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기에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인간관계도 있다. 하지만 내 몸에 탈이 날 정도로 먹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음식과 달리 내 몸에 탈이 나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채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탈이 나서 병원에 가봐야 알기도 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제 나는 마음껏 편식을 할 것이다. 나의 마음에 조금이라고 상처를 내는 인간관계는 주저 없이 끊어내기로 했다. 억지로 무언가를 위해서 이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혹여 편식으로 인해 나에게 실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 선택에 절대 후회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나 자신'이고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음식 좀 편식한다고 죽지 않는다. 사람 좀 편식한다고 딱히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