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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Aug 09. 2023

죽 쒔다 했는데 브런치 1만 뷰 알람이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씁니다.




지난주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1만을 넘었습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약 23,000회.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1000명씩 쑥쑥 늘어나던 조회수는 1만 명을 넘기고서야 더 이상 알림을 보내지 않았지요. 2020년 9월 브런치에 첫 글을 쓴 이래 제가 쓴 글의 조회수가 1만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000도 아니고 10000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봤더니 브런치 메인 에디터 픽에, 그리고 다음 메인 화면에 노출이 된 듯했어요. 이전에도 메인 화면에 노출된 적은 있었지만 조회수가 1만이 넘은 건 처음으로 있는 일이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소감 발표를 셀프로 해보려고 해요. "아아 키보드테스트. 일만뷰라는 성취의 영광을 죽밥 프로젝트 팀에게 돌립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일을 벌이는 데 비해 마무리 짓는 능력이 약하고, 초심과는 달리 끈기를 쉽게 잃기도 합니다. 그런 제게 조력자의 존재 유무는 아웃풋의 결과를 완전히 바꿔놓는 변수로 작용을 해요. 혼자서도 잘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다음 생이라도 그렇게 태어나보겠다고 의미 없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렇게 조력자의 존재가 절실하건만 정작 제 현실은 외로운 7년 차 1인 사업자입니다. 거의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진행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질 우려가 있고 실행력에도 한계가 있지요. 브런치도 마찬가지였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여행이 불가능해졌을 때 제 본업은 전면 중단이 됐죠. 백수가 되어버렸으니 이참에 차곡차곡 모아둔 글감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다시 본업이 조금씩 정상 궤도로 들어오면서 결국 꾸준히 쓰기로 마음먹었던 자세를 잃고 말았어요.


최근 몇 년간 어마어마한 유행을 몰고 왔던 MBTI. 놀랍게도 이 테스트를 십수 년 전 중학생 시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 유행한 이 검사를 다시 했을 때 놀랍게도 저는 중학생 때 받았던 결과와 알파벳 하나 바뀌지 않은 ENFP로 판명되었죠. 타고난 성향이란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요?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성격, 사람을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하며 모든 것에 호불호가 명확하다는 ENFP의 특징은 실제로 제 자신이 좋아하는 제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사람, 일, 음식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한 번 마음을 줬다 하면 한 우물을 파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엔프피의 단점을 읽으면 제가 바로 살아있는 엔프피의 표본입니다! 하고 번쩍 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아요. 특히 끈기가 없고 마무리가 약하며, 싫어하는 건 곧 죽어도 못한다는 해석을 읽으면 그저 뜨끔한 정도가 아니라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주변을 살피게 되죠.


처음엔 시키지도 않은 소감 발표를 대뜸 하더니 또 갑자기 웬 MBTI냐고요? 저의 나태함을 날 것 그대로 고백하려니 좀 민망해서 성향 탓을 해보려는 심산도 없진 않고요. 무엇보다 제가 이렇게나 공식적으로 우유부단하고 끈기 없기로 판명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야만 '죽밥 프로젝트'가 얼마나 근사한 프로젝트인지 알게 될 것 같아서요.



'일단 올리다 보면 언젠가 맛있는 밥을 지을지도 모르잖아요.'


긍정의 힘이 뿜뿜 하는 이 사랑스러운 문장은 죽밥 프로젝트의 모토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주일에 무조건 하나의 콘텐츠를 발행하는 거예요. 분야는 다양해요. 저처럼 글을 쓰는 친구도 있고 그림을 그려 인스타툰을 올리는 친구도 있죠. 올해 초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는 현재 여섯 명의 친구들이 모여있습니다. 다들 구면인 것은 아니고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구의 친구 관계인 팀원도 있어요. 그야말로 무언가를 '꾸준히'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이자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채찍과 당근을 적재적소에 던져주죠. 글이 발행되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읽을세라 얼른 달려가 오타는 없는지 확인도 해주고 좋아요나 댓글로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아요. 글감이 마땅하지 않을 땐 주제를 함께 고민해주기도 하고 발행 당일에 아직 업로드를 못했는데 놀러 간 게 발각이 되면 곧바로 호되게 혼이 납니다.


 오늘은 죽을 쑤었다고 누군가 자조하면 다음엔 밥을 지으면 된다고, 꾸준히 지으면 되는 거라고 서로에게 말해줘요. 이렇게 여섯 명이 각각 정해둔 요일에 약속한 콘텐츠를 발행하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갑니다. 내가 쓴 글은 고작 하나이지만 '우리'가 지어낸 밥은 여섯 그릇이니 보람도 여섯 배가 돼요. 한 주를 아주 알차게 살아낸 기분이 들어요.


채찍과 당근을 주고 받는 우리. 근데 목요일 담당자 좀 무섭지 않나요?


'동료'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는 저에게, 게으른 엔프피인 저에게, 타인의 고민을 내 것처럼 여겨주고 타인의 성장을 내 일처럼 즐거워해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동료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해가 부족한 이곳 체코에서 제가 생존을 위해 복용하는 비타민 D와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요.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다니, 역시 전 인복 하나는 타고났나 봐요.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다 보니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지은 밥들을 모아보니 한솥이 가득이네요. 솥을 채우는 동안 어느덧 글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는 일은 일상에 자리 잡은 습관이 되었어요. 습관이 되고 나면 그다음은 뭐든지 더 쉬워집니다.


 

ⓒMBC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김연아 선수가 했던 말 중에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한 마디가 떠올라요. "그냥 하는 거지." 

방향만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앞으로도 죽을 쑤든 밥을 짓든 묵묵히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제가 할 일은 약속한 대로 제시간에 쌀을 씻어 안치는 일이니까요. 최선을 다해 만들되, 만든 음식이 내 손을 떠난 순간부터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저 죽을 쑤면 그건 그대로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게 읽어줄 테고, 밥이 되면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그릇 싹싹 비워주리라 믿으면서요.


우리 일단 해봅시다. 생각만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함께 쌀을 씻어봅시다. 죽을 쑨다 해도 괜찮아요. 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과정이니까요.

  



죽밥 프로젝트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아래 이름을 누르면 각 멤버의 링크로 이동합니다.

으그흐 : 한국 신화를 연구하는 연구자. 옛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 옛날이야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위드피터팬 : 체코 프라하에 거주하며 낮에는 가이드로 밤에는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밍영 : 다재다능 공학도. 여행과 일상에 대해 기록합니다.

오무딴 : 딴짓하는 게 재일 재밌다는 외과 전공의. 사실 죽밥 프로젝트도 그녀의 딴짓의 결과물입니다.

야라마즈 : 음식에 진심인 튀르키예어 전공자가 들려주는 케밥 말고 다른 튀르키예 음식 이야기.

밍기적밍기 : 가정의학과 전공의. 부캐는 오무딴 매니저. INTJ의 장점을 살린 친절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은 포스팅을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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