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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Oct 12. 2023

눈앞에 바다거북이 헤엄치는데 담배를 버리고 싶었나요?

[튀르키예 여행] 이방인 주제에 현지인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꼬끼오 끼끼끼

힘차게 내지르는 의지와는 달리 어딘가 좀 아파 보이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이고 오늘도 시작이구나 싶어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튀르키예에 도착한 이후 이틀째 매일 아침 저 이상한 수탉의 모닝콜로 강제 기상 중이다. 우리는 휴가 중인데 너도 이참에 며칠 쉬는 건 어떠니?



며칠 뒤 도착할 친구를 기다리며 보내고 있는 여유로운 나날들. 달라만 국제공항 근처에 가볼 만한 곳들을 하루 한 두 군데 정도 방문하고 있던 우리의 오늘 목표는 달얀의 이즈투주 Iztuzu 해변이었다. 바다거북들이 매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알을 낳는다는 곳, 알을 깨고 나와 모래를 헤치고 나온 아기 거북들이 달빛에 이끌려 바다로 들어가는 신비한 여정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이즈투주 해변으로 가는 보트에 탑승했다. 해변과 달얀 중심지를 이어주는 보트의 왕복 가격은 약 8천 원. 이 보트를 이용하면 달얀의 또 다른 명소인 카우노스 왕의 무덤까지도 멀리서나마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튀르키예에 거주하던 시절부터 보고 싶었던 두 장소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물 위에 뜬 보트처럼 내 마음도 들떠서 울렁거렸다.


사람들이 잇달아 보트에 올랐고 젊은 선장은 능숙하게 닺을 올리고 천천히 배를 몰았다. 하늘은 파랬고, 살갗에 닿는 햇살은 만족스러우리만치 뜨끈했으며 갈대숲 사이를 비집고 소리를 내던 바람이 얼굴에 부드럽게 부딪혔다. 통통통 반복되는 평화로운 리듬의 모터소리와 배가 가르는 물살의 소리조차 완벽했다.



저 멀리 미처 완성되지 못한 카우노스 왕의 무덤이 보였다. 페트라 같은 유적지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자연의 섭리가 지배하는 갈대숲과 흐르는 물 위로 나 홀로 존재하는 인류의 흔적은 그 대비가 극명한 만큼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천수만 년 그곳에 존재한 강물조차 소리 없이 바다로 흘러가 그 흔적을 감추는데 고작해야 한 세기를 살까 말까 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존재를 영원에 두고자 애를 쓰는구나.



대개 근사한 건축물들이 권력자의 허영심과 과시욕에서 비롯되어 무고한 이들의 희생 위에 지어지는 것을 보았다. 가파른 암벽에 만들어진 저 무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원되었고 또 몇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미완성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즈투주 해변 선착장에 보트가 우릴 내려주었다. 보트에서 내린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걸었다. 얼마지 않아 부드러운 모래길이 나왔는데 해변이 시작되는 입구에 한 표지판이 보였다. "샌드 릴리 보호 구역"



우리말로 모래 백합쯤 되려나. 영어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 낯선 이름의 꽃은 전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었고, 실제로도 사람들이 해변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매 3미터 간격으로 샌드 릴리를 꺾거나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 및 당부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변으로 들어서는데 몇 미터 떨어진 전방에서 모래 위로 솟은 식물이 보였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샌드 릴리였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온 주제에 샌드릴리의 개화기를 마주하다니 기막히게 운이 좋다!

짜디짠 바닷물이 코 앞에서 일렁이는 황량한 모래 위에서 어떻게 이렇게 멋진 꽃을 피웠는지, 마른 모래와 생명력이 가득한 꽃의 대비는 자연 속 카우노스 왕의 무덤만큼이나 강렬했다. 다음에 왔을 때는 더 많은 샌드릴리가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해가 꽤나 뜨거웠는데도 따뜻한 바람 사이에 간간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제 존재를 감추질 못했다. 감기에 걸릴까 싶어 결국 욕심껏 물에 머물지 못하고 우리는 물에서 나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마침 배도 고파오던 참이라 보트를 타러 가는데 선착장 한편 사람들이 모여있다. 왠지 거북이가 있을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어 얼른 가보니 사람들이 모두 수면만 쳐다보고 있다. 정박해 있던 보트 위에서 누군가 꽃게 반쪽을 던졌고, 잠잠했던 수면 아래로 물고기보다 큰 무언가의 실루엣이 휙 지나갔다. 거북이었다.



수면 아래 실루엣이 불러온 흥분도 잠시, 다시 돌아온 실루엣은 점점 선명한 무늬가 되더니 물 위로 올라와 유유히 꽃게를 물었다. 거북은 생각보다 거대했고 우아했으며 아름다웠다. 와아! 사람들과 함께 나도 그 누구보다 크게 탄성을 질렀다. 자연 속에서 거북을 만난 것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다시 거북이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 서성이다 보트에 올랐다. 우리의 맞은편에는 중년의 튀르키예인 여성 두 명이 앉아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는데 그녀의 주변에 재떨이나 재떨이로 쓰일만한 물건은 보이질 않았다. 배의 난간에 팔을 걸친 그녀가 툭툭, 아무렇지 않게 난간 밖으로 재를 털었다.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고, 친구에게 속삭였다.

 

"혹시 네 눈엔 저 사람 옆에 재떨이가 보이니?"

"누구 말하는 거야?"


고갯짓으로 살짝 그녀가 앉은 맞은편을 가리키는 순간 아무것도 들려져있지 않은 그녀의 양손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갔다.


"설마 지금 물에다가 꽁초를 버리신 거예요?"


그녀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 '아차'에서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바다에 그 꽁초를 버렸다는 사실을, 평소에도 이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담배꽁초를 도로 위에 자연 속에 버려왔기에 그 순간 또한 일말의 망설임 없이 행해진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음을 말이다. 그녀는 작게 "네..."하고 중얼거렸다.


"여기 국립공원이에요. 지금 보트 밑에도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고요. 배 옆에서 보셨을 거 아녜요. 저기 배에 구비해 둔 재떨이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는데 그걸 왜 바다에 버리세요? 정말이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요. 여기 주인은 동물들이에요. 당신 집에 누가 놀러 와서는 방바닥에 담배꽁초를 던지고 가도 괜찮은가요?"


화를 감추기가 어려웠다. 내게 튀르키예는 고향인 한국만큼이나 의미 있고 애정하는 곳이다. 지구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한데 모아둔 것 같은 이 나라의 매력에 빠져 매년 튀르키예에 오는 게 나뿐만이 아닐진대 정작 마음이 울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주인인 그들 중 일부는 이토록 무신경하다니.


특히나 달얀과 이즈투주 해변에서는 유독 영국과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해변에서 우리 옆에 누워있던 영국인 커플은 이곳에서 진탕 먹고 마셔도 영국에서의 국내 여행 하루치 경비에도 못 미친다고 떠벌렸으며, 단체 관광을 온듯한 커다란 영국인 무리 중 다수는 불필요하게 목소리가 크고, 무지해 보였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지인들을 하대했다.

이미 여행 온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나 이해를 위한 노력 따위는 애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일진대 현지인조차 그들의 나라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 광격을 보고 과연 누가 이곳의 자연을 보호하려 하겠으며 이곳의 규칙을 존중하고 따르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얼마나 이 나라를 사랑하고 애정하든 어쨌든 나는 이방인이었고 그녀는 현지인이었다. 내 주제에 부릴 수 있는 오지랖은 이 정도가 다였다. 그저 앞으로는 그녀가 담배꽁초를 버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날의 일이 떠오를 수 있길, 바닷속에 버려진 담배꽁초의 종착지가 어느 물고기나 거북의 뱃속이 아닌 깊은 바닥 어딘가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거북이들이 산란한 장소 위를 밟지 않도록 올려두는 철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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