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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Jan 09. 2024

12년 만에 학창 시절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면-

[기록을 기록하기]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주며 새해를 시작했다.





새해 인사를 전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명절도, 유럽의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에 오고 가는 인사도 언젠가부터 챙기지 못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버렸어요. 학창 시절만 해도, 아니 대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자정에 맞춰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고 연말연시에 언제나 먼저 연락을 했던 저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는 운 좋게도 새해의 첫 주에 잡힌 일정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겠어요? 이렇게 여유롭게 신년을 시작하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다신 없을 기회겠다 싶어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계획을 짰어요. 12월 31일엔 2023년에 있던 일들을 정리해 블로그와 일기장에 기록하며 묵은 해를 보내주고 새해에는 신년 계획과 함께 그리운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야겠다 생각했죠.



올해의 새 다이어리를 열어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눌러쓰고, 올해 여행하고 싶은 곳, 올해 이루고픈 개인적인 목표와 직업적 목표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이틀이 휘리릭 흘러버린 뒤였어요. 그리고 그 이틀 사이에 이미 많은 지인들로부터 신년 인사를 먼저 받아버리기도 했고요. 삼 일이나 지난 새해 인사라니.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망설여졌어요.  


그래도 내년엔 늦은 인사를 보낼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으니 맘먹은대로 인사를 해보기로 했어요.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을 열었습니다. 스크롤을 죽 내려봤어요. 아마도 하루 만에는 어려울 것 같더군요. 에너지가 한정적이니 수시로 일상을 나누는 사이는 패스했어요. 지난 한 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들과 특별히 고마움을 꼭 전하고픈 사람들, 지난 한 해 새로 만나 좋은 관계를 맺었던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귀한 인연들, 한동안 연락이 뜸했지만 가끔 안부가 궁금했던 소중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클릭했어요.


어떤 이와의 대화창엔 얼마 전 주고받은 카톡이 떴고, 또 어떤 대화창은 기록 없이 말끔한 텅 빈 대화창이 떴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오랫동안 망설였던, 마지막 연락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한때 서로의 삶의 반짝이는 부분을 함께했던 이들의 프로필도 용기 내어 딸깍. 클릭했습니다.


대화창 위에 굵은 글씨로 써진 그 사람의 이름을 보며 그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마치 눈앞의 그에게 말을 건네듯 다정하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키보드를 눌러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핑계와 진실 사이 그 어디쯤에서 꺼내온 마음을 고백하며 운을 뗐어요. "내가 언젠가부터 이런 인사를 못 챙기게 된 건 아마도 노화로 인한 체력 저하와 뇌 용량 감소 때문일 거야."


그리고 나면 정말로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어요. 한 해를 되돌아보니 네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거나, 당신을 알게 되어 한 해가 더 의미 있었다거나, 지난 한 해도 당신이 내 삶에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이에겐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기를 바란다고, 종종 일상 속에서 문득 당신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고, 그런데 연락을 해야지 생각을 했다가도 현생에 지쳐 미루다 보니 생각만큼 자주 연락을 하지는 못했노라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는 했다고 솔직하게 마음을 전했죠.


그중엔 대학시절 유학을 떠나던 시점에 연락이 끊겨버린 고등학교 친구도 있었어요. 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는 동안 아주 가끔은 친구의 카톡을 보며 안부를 물어볼까 생각하다가도 쉽사리 그 공백이 너무나 길어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왠지 이번이어야 할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안녕 12년 만이네. 너무 오랜만에 연락을 해본다.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 너의 소식이 궁금하구나. 새해에 너의 소망하는 모든 일이 이뤄지길 바랄게. 오랫동안 전하지 못했던, 그러나 마음 속에 있던 것들을 전했어요.


다음날 일어나니 카톡 알림이 빼곡히 화면을 채우고 있었어요. 일상 속에서 대화창 목록의 상위에는 언제나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날 아침엔 그 자리를 생경한 대화창들이 가득했지요.


포근한 침대 속에 그대로 누운 채로 하나하나 대화창을 열었어요. 피식 웃음이 났어요. 다들 같은 마음이었대요. 잊은 건 아닌데 현생에 치여 마음만큼 연락을 못했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니 너무 반갑고 또 고맙다고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저만 나이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다들 현생을 살아내느라 바빴던 거죠.


그리고 궁금했던 그들의 안부를 들었습니다. 어디서 뭘 하고 지내고 있는지, 우리의 연락이 부재하는 동안 삶의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제게 알려주었어요. 축하할 일도 소식도,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지요. 확실한 것은 모두가 각자의 삶에 놓인 각자의 시간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두고온 과거 그 어딘가에 찍혀있던 굵은 점이 2024년에 또 하나 찍힙니다. 그 사이로 선이 하나 그어지네요. 길게 그어진 한 줄의 선이 우리 사이의 공백을 모두 메꾸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겐 인연을 붙들 더 가까운 줄 하나가 생긴 셈이에요. 이제는 서로를 떠올릴 때 2010년이 아니라 2024년의 업데이트를 기억할 테고 그러면 다음 번 안부를 물을 때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똑똑, 문을 두드릴 수 있겠죠.


안부 뒤에는 내게 돌려보내는 다정한 인사들이 뒤따랐어요. 네가 건강하길 바라. 너도 언제나 행복하면 좋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바라는 일들이 다 이루어지길 기도할게. 우리 또 만날 때까지 잘 지내고 있자.

마음속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담다 보니 행복으로 마음이 충만해져요. 정말 올 한 해도 좋을 것만 같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 모두는 따뜻함을 느끼길 원해요. 저도 그래요. 일상에서 저를 행복하게 하는 건 사람들과 주고받는 다정한 미소와 인사 그리고 친구와의 따뜻한 포옹 같은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받고 싶은 것을 주기로 했어요.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오가는 연락 아니, 신체 노화에 따른 체력 감소와 뇌 용량 감소로 인해 몇 년에 한 번일 수도 있는 기회가 되어버린 셈이니 이럴 땐 그냥 있는 힘껏 따뜻하기만 할래요.


그러니 알아주세요. 우리의 연락이 부재할 때도 여전히 세상 한편에서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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