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던 지난 몇 주였습니다. 글밥을 짓겠다고 한 줌씩 씻어둔 생각들은 쌓여 어느새 메모장을 채워가고만 있는데 그중 제대로 마음 솥에 올려 지어낸 글은 하나도 없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사실 글이 써지지 않은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기필코 이번 주에는 써야지 마음을 먹고서 끄적여둔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제가 지난해 11월에 써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 사람의 좋은 의도만 받기.'
이거다 싶었어요. 마침 설 명절이기도 하니 마음에 다시 한번 더 새기기에도 좋은 말 같았거든요. 왜냐고요? 명절의 푸짐한 음식과 1+1 구성처럼 푸짐한 잔소리들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사실 저희 집 어른들은 '연령별 맞춤 잔소리'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어요. 아니 그런데 어느 순간 외할머니와 일가친척 모두가 합세해 8000km 나 떨어져 있는 제게 "일도 좋고 다 좋은데 시집은 언제 갈 거니!"를 외치시는 게 아니겠어요? 심지어 할머니는 저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가신대요. 아이고 맙소사.
물론 저는 지금도 행복합니다. 일에서 얻는 만족감과 강한 유대로 맺어진 친구들과의 우정이 채워주는 일상 그리고 어떤 면이든 매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단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더해보는 작은 시도와 노력들이 즐거워요. 독립된 성인, 완전한 자유의지에 따라 내 삶을 채워갈 수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함을 느낍니다. 물론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의 즐거움을 다시금 애정하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이전에도 집안 어른들이 이따금 인간으로 태어나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제게 넌지시 말하시긴 했어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별 수 없이 제게도 이런 말을 듣는 시기가 와버렸나 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어휴. 그러니까요!"
그 사람의 좋은 의도만 받기. 이 자세를 적용하기 위한 필수 바탕은 상대를 신뢰하는 일이에요. 상대가 얼마나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인지,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 사람인지를 떠올리며 그 순간의 말이 아닌 함께 걸어온 지난 시간 속에서 내 눈으로 보고 겪은 그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는 거예요.
설령 그렇게 친밀하지 않은 사이더라도 그를 떠올릴 때의 첫 문장이 '이 친구 꽤 좋은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우선은 나의 그 판단을 믿어보는 겁니다. '그런 좋은 사람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려고 그 말을 했을 리는 없어.' 하고요.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하는 말은 오죽하겠어요. 제게 하는 그 말들이 그저 남들이 하는 것들, 남들이 누리는 기쁨을 너도 한 번 누려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일 거란 걸 알아요. 가족과 멀리 떨어져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는 제가 의지할 존재가 있었으면, 그래서 좀 더 안정적인 행복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이겠죠.
커리어와 우정 만으로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우리 할머니가 당신께서 살아오신 여든 평생의 삶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선택지였고, 할머니의 기준에서 당신이 아는 순리와 삶의 가장 귀한 것을 저 또한 가지기를 바라실 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사랑하는 가족들의 말에서 '좋은 마음'만 잘 담아서 챙깁니다.
11월 기록 당시의 내 생각은 명절이 지난 후 다시 정리해 봐야겠어요. 음력으로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새해이니 새 마음 새 뜻으로요. 이 글이 닿을 모두에게도 저의 '좋은 마음'을 보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설맞이 떡국은 없지만 붕어빵을 먹었어요.
체코 친구들의 강력한 주도로 한식당에서 설날 저녁을 기념했답니다.
설날 당일 좋은 꿈을 꿨어요. 저녁 식사를 하며 복권을 사야한다고 했더니 친구가 가방에서 복권 하나를 꺼내주는 게 아니겠어요. 나머지는 같이 샀는데 결과는 개꿈이었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