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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Feb 14. 2024

그 사람의 좋은 의도만 받기.

[기록을 기록하기] 말속의 진짜 마음 골라 담기 2






번역가 황석희 님의 글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합니다. 어떤 말이라도 그 말을 받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로 번역되기 때문이래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오역을 하기도,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하고요.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내 입을 떠나는 순간 그 말은 온전히 내 의지와 다르게 가닿게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말의 이런 특성은 우리의 삶에 반짝하는 즐거움을 더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불편함을 남기기도 해요. 친구가 A라는 의도로 건넨 말을 제가 B로 해석했는데 그 오역이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다거나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하는 순간들은 말이 가진 오역의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발현한 때예요.


하지만 나의 말이 의도와는 다르게 가닿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상대가 살아온 삶과 현재 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머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은 마치 실험실에서 미상의 두 물질의 화학반응을 기대해 보는 것만큼 예측이 불가하죠.


고백하건대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그것들을 소화해 내는 과정은 제게 가치관이라는 것을 확립해 주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한 살씩 더 늘수록 깨달은 건, 생각을 많이 하는 습관은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한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십 대 시절과는 달리 이제 저는 상대가 한 이야기를 너무 곱씹지도 않고 그 의도를 굳이 번역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언어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건 맞지만 동시에 각자의 우주를 가진 두 사람의 언어가 언제나 문자적 의미나 감정을 같은 함량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결국 나의 언어로 읽어낸 상대의 의도는 깊이 읽어보려 할수록 오해의 여지만 더 커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보통 상대의 말을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과거에 종종 코미디 채널에서 이런 대화들로 웃음을 끌어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자가 "자기야. 오늘 입은 코트 정말 예쁘다!"라고 말하면 여자는 부루퉁한 얼굴로 "그럼 어제 입은 코트는 안 예뻤어?", "코트만 예쁘고 나는 안 예쁘단 소리야?" 하고 반문하는 거예요. 그러면 남자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관중들은 공감한다는 듯 폭소를 터뜨려요. 과연 이런 화법이 오로지 성별적 특성일까요? 적어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쯤은 이런 사람들 혹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이럴 때가 바로 번역 대신 직역을 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마워!"

그녀가 입은 코트가 정말 잘 예뻤고, 잘 어울렸기에 나온 말일 거예요.

그저 그 사람의 좋은 의도만 받는 겁니다. 그 순간 모든 게 단순해져요.


그런데 상대가 정말로 다른 의미를 담아 그렇게 말을 한 거라면요? 그럴 때 저는 이 사람 많이 꼬였구나. 하고 말아요. 다른 사람에게 굳이 못된 말을 하는 그 사람의 심성이 꼬인 것이지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니까요.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내가 귀 기울여야 할 말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관계의 지속과 성장을 혹은 나를 아끼기 때문에 어렵게 꺼내는 속마음이나 조언뿐입니다.

제 경우 상대가 건넨 말에 마음이 불편한 건 대체로 그 지적이 사실이기 때문이었어요. 그 말들이 정확하게 나의 잘못 혹은 부족함을 날 것 그대로 가리키고 있고,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는데 그게 마치 마음이 아픈 것처럼 느껴졌던 거죠.


그런데 이건 하늘이 준 기회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그런 나쁜 역할을 자처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저 나의 못난 점을 알려주지 않고 조용히 내 삶에서 걸어 나가거나 뒤에서 험담을 하겠죠.

사랑하는 친구들이 어렵게 건넸던 말들이 그랬고, 존경하는 회사 선배가 어느 날 해주었던 따끔한 지적이 그랬어요. 그 덕에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말들을 전한 마음이 무색하지 않게 꼭꼭 씹어 체화하고 싶었어요.


언제나 그래왔든 앞으로도 우리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살아갈 테고 우리의 우주와 언어는 결코 완전히 서로의 것과 같아질 수 없으니 우리는 앞으로도 종종 서로를 오해하게 될 테죠. 저는 그때마다 서로를 여기는 그 마음을 한 번 더 상기하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을 찬찬히 되돌아볼 거예요. 당신의 말은 가장 좋은 의도만 받고, 나의 말은 당신이 오역하지 않도록 다듬고 또 다듬어 볼 거예요. 당신이 내게 의미하는 만큼 나는 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소중한 당신 오늘도 당신의 세계에서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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