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함
우연히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원대 심리학과 채선기 교수님의 상담프로그램이었다.
밭개마을교육공동체 마을교사들과 함께 한 집단 상담. 유쾌하고 재밌는 교수님 덕에 즐거웠다.
감정카드 하나를 골라 돌아가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나눈 얘기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신기하게 카드하나로 나의 인생과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각자가 처한 상황과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고 마주 하며 울고, 위로받고, 때론 재치 있는 피드백으로 웃었다.
내가 고른 카드는 느긋한이었다.
그냥 눈에 띄었다.
느긋함은 세상 편안한 상태가 아닐는지...
상담이 끝나고도 느긋함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 카드를 골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지금도 느긋함이 없다.
늘 마음이 바쁘고 머리가 복잡하다.
처리해야 할 일은 많고 그걸 나눌 사람이 없이 혼자 해야만 하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게 답답함과 무거움이 나를 짓누른다.
좀 가벼워지고 싶고 좀 편안해지고 싶다.
내 상황은 사실 만만하지 않다.
싱글맘으로 가장으로 아이 셋을 키우는 나의 현실.
객관적으로 보면 참 안 됐다.
( 난 불쌍하다는 말이 싫다. 자존심이 상한다)
남편과 사별 후, 나는 정말 나 자신을 버리고 아이들만 생각했다. 나는 이미 남편과 함께 죽었다고 생각했다. 17년 전에 말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아니다.
아빠가 없는 아이들을 엄마도 없는 아이들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이겨내야만 했고, 아이들이 삶의 이유였다.
내가 과연 느긋할 틈이 있었을까?
가장으로, 부모로, 직장인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다. 바빴다. 둘이서 함께 나누어할 일도 모두 내 차지였고, 마음은 고되고 머리는 복잡했다.
늘 빈자리가 느껴지고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함께 했다면, 둘이었으면 좀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랐다.
늘 나를 스스로 격려하며 괜찮다며 무너지지 않게 용을 쓰며 살았고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느긋함은 한치도 끼어들 틈이 없었구나......
느긋하게....
바쁘지 않고 가볍게
걱정이 없이 여유롭게
흡족하고 넉넉한 상태.
아직도 앞으로도 한참 동안 느긋하기 힘들 것 같다.
아직 부모로서의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느긋함은 10년 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니면 영원히 느긋하지 못할 수도...
느긋함.
희망사항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