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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준 Oct 13. 2024

좀 더 행복하려고요. 근데 이제 좋은 사람을 곁들인

당신의 철새는 어디로 날아가고 있나요?

오랜만에 글을 쓴다. 생각보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반면, 다른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사람으로 남게 되는 순간이 공존했던 하반기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나약함의 끝을 보기도 했으며 더불어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도, 게임도, 일상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되 작은 거에도 행복해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되거나 일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빠르게 불행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오래 알고 지낸 지인한테 자주 듣던 소리가 여유가 없고 어딘가 모르게 막혀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당연히 열심히 사니까 그런 거 아닌가 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물론 열심히 사는 건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어느 순간부터 잘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22년도 12월에 번아웃이 오고 지금까지 안정된 직장? 의 개념인 정규직보단 나의 장점을 살린 것들로 현재까지 혼자서 잘 살아오고 있다. 거의 2년이란 시간을 개인으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동안 겪어왔던 걸 자연스럽게 복기하는 시간을 상당히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의 마지막으로써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20대 때 잃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을 다시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곰곰이 나의 20대 일대기를 생각했다.

아래 간략? 하게 20살 10년간 나의 일대기를 요약해 봤다.


1. 고등학생 때 잠만 죽어라 자고 대학생 때도 학교 수업보단 부모님께서 하시던 택배 사업의 송장 입력을 어떻게 하면 빨리 입력할 지에 대한 생각만 했던 철없던 대학생이었다. (개발이란 걸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반복 프로세스를 단순화하려는 생각 정도에 그침)


2. 군대 가기 전까지 생각 없이 살다가 군대 가기 일주일 전 생각정리 겸 간 제주도 뚜벅이 여행 중 치맥 하신 아머지 세 분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들으며 독서 100권 읽기 프로젝트란 목표를 세웠다.


3. 군대에서 개인적으로 독서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하며 처음엔 그냥 책을 읽다가 나중엔 생각정리 노트로 만들며 조금씩 일반 상식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협상이라는 개념을 알려준 인생 책을 알게 됨 → 대대 상을 타며 본격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며 커리어에 대한 관심 증가


4. 전역하고 나니 이전에 해왔던 행동 때문에 어학연수는 꿈도 못 꾸고 답이 없어 복수전공을 들으며 3일 학교, 4일 알바 몰아서 다니며 방학 땐 모아둔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옴


5. 우연한 계기로 이모부의 조언으로 패스트캠퍼스 마케팅스쿨에서 마케팅이란 것을 처음 접하고 천직이다 생각할 정도로 엄청 긴 커리큘럼을 행복하게 공부하며 수료


6. 운이 좋게 2달 만에 IoT 스타트업에 마케터로 취직
(당시 졸업 예정이 아닌 1학기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이러니하게 코로나 때문에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어서 주말에 몰아서 들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뀜)


7. 경력직만 뽑는데 신입을 뽑는 도박을 했고 덕분에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기회를 얻었고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생각, 직속 사수는 없었지만 팀장님은 사업계발 쪽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이었던 만큼 마케팅에 관해 나눴던 이야기는 다 유의미했다 생각 → 무엇보다 난다 긴 다한 엑셀고수 중 이 사람 만큼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고, 옆에서 MD 하셨던 분은 지금 리멤버에서 빅데이터 쪽에서 일하시고 계실 만큼 개발과 데이터를 잘 다루시는 분이어서 지금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기술이나 엑셀, query 실력의 기초는 다 거기서 배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추가로, 생각보다 IT 업계에서 불가능한 건 많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힌 건 팀장의 역할이 크다. 어떻게 서든 꾸역꾸역 방법을 찾아보면 신기하게도 1~2개는 나온다.


8. 대학교를 졸업하지도 않고 인턴을 거치지도 않았으며 바로 정규직으로 입사를 하며 사회생활을 갑작스럽게 한 탓일까?(핑계) 내 성격은 불 그 자체였다. 첫 회사인 만큼 내 브랜드라 생각도 해서 그 때문에 팀장님과 많이 싸웠던 것 같다. 지금은 문제없지만 당시 너무나도 감정적이었고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왜 해야 할까?라는 전형적인 MZ 식 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후회를 하기보다 그때 조금이라도 성숙했다면 좀 더 이해해 보려는 화법을 구사하며 이야기해보려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지금 와서도 근본적으로 생긴 의문 자체는 변경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때로 돌아가도 또 그렇게 했을 것 같다.


9. 새롭게 이직한 회사에서는 유망주라는 수식어로 기대를 받으며 업무에 투입됐다. 조금 신기한 건 나를 얼마나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대기업 프로젝트를 신입인 나와 다른 팀 사수 한 명으로 배정하고, 그마저도 기존에 하던 프로젝트에 일이 생겨 거의 대부분을 신입 첫 프로젝트를 혼자 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회사 프로세스의 경험은 많이 없어 모르는 건 바로바로 질문하고 기본적인 SEO 지식은 사내에서 잘하는 축에 속했었기 때문에 작업하고 피드백받는 식으로 다행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사한 지 4~5개월쯤 사내 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땐 아 빠르게 인정받았다란 생각으로 잘 다녀야겠다 생각을 했다.


10. 여기서 내 성격이 또한 번 걸림돌이 돼버렸다. 업무 프로세스와 작업물에 대해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첫 커리어를 마케터로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물음표였고 SEO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왔는데 SEO보단 수 만 개의 키워드 정리만 하고 있는 게 맞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고 낸 액션 플랜을 보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며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물론 그때 당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결할 수 없는 루션이라 100% 확신하고 있을 때 그 솔루션을 제출물로 일단 전달하라는 걸 들었을 때 리스펙에 대한 모든 게 무너져 내리면서 정리했다.


11. 첫 회사에 입사할 때 당장 돈보단 성장할 수 있는 기회에 초점을 둔다고 했었는데 막상 저렇게 무너져 내리니까 보이는 게 돈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족한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연봉이 높은 외국계로 이직을 했다가 그대로 무너졌다.


12. 2개월 동안 폐인처럼 놀고 게임하고 쉬고 간간히 온라인 강의하다가 직장을 다 시들어가려고 생각하니까 아직 젊은데 혼자 한 번 해볼까? 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2~3년 차쯤 됐을 때가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 같을 때라 생각한다고. 나도 그랬던 것 같고 분명 그랬다. 강의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


13. 그리고 사회는 생각보다 생각한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23년 한 해 많이 느꼈다. 직장은 내가 맡은 업무, 하루 루틴, 안정된 월급이 있지만 혼자 해본다는 건 미팅, 생전 처음 해보는 세일즈, 기획서, 어떻게 가격을 세울지, 홈페이지는 어떻게 기획을 해야 할지?, 세무 작업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등 다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14. 그리고 24년 다른 사람들은 2년이라는 직장 경력을 채우는 동안 나는 비록 직장 경력을 채우진 못했지만 나무만 볼 수 있던 놈이 이젠 그걸 인정하고 숲을 보려는 단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새로운 툴이나 기술은 빠르게 나오기 때문에 이제는 툴이나 기술을 단순히 익힌다는 관점보단 왜 이 툴을 만들었을지? 에 대한 문제 인식으로 접근을 하면 사용성이 떠오르고 그걸 다른 것에 접목시키려는 단계까지 가보기 위해 노력해보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한 번 무너졌을 때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님이었다.

그리고 서울이란 타지 생활에서 지금까지 만나고 있고 또 새롭게 만나고 있는 좋은 사람들.


그래서인지 최근 9월에 들어서부터는 많이 웃고 더 자주 행복해하고 있다.

남은 24년 모든 날이 행복한 날일 수는 없고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면은 조금 더 단단하게 하지만 외면은 이전보다 유하게


"근묵자흑 마중지봉"

주변 색깔에 자연히 물들게 마련이듯, 좀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 나도 그들에게 있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자.


한마디로 정의해 보면 나에게 10년은 마치 발효 과정이었다.
발효는 유기물을 분해하며 알코올, 산, 가스를 생성하는 과정인데 나에게 있어 여러 가지 방황, 번아웃, 1인 도전 등은 모두 시끌벅적한 무언가가 생성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혹시 2차가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숙성의 단계에 접어드는 30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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