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혼둘셋 Aug 27. 2020

스무살에 처음 만난 우리,
그리고 15년 뒤

'혼자 왔습니다, 둘이 왔습니다, 셋이 왔습니다' 프롤로그

아주 오래 전, 먼 나라에 여자 셋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살 세 명은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쟤랑 술 마시면 나랑 코드가 딱 맞겠구나. 아주 술이 쭉쭉 들어가겠어' 


입학식 이후 셋은 죽어라 붙어다니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낮술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온 날에는 '왜 너 혼자 마시고 왔냐'며 셋이 우르르 몰려나가 밤이 될 때까지 즐겁게 알코올을 섭취했습니다. 누군가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온 날에도 함께 울며 술을 마셨고, (아마도 술 마시기 위한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짝사랑의 흑역사도 함께 공유했습니다. 365일 함께 할 것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애인이 없더라도 셋이 함께 있으면 세상에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습니다. 대학은 이미 10년 전에 졸업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술을 마십니다. 여전히 한 명은 소주파()이고, 한 명은 맥주파()이며, 한 명()은 주종 가리지 않습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싱싱한 간이 아니라 주량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 이 정도 먹으면 죽는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인지 능력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술을 마신 뒤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주제를 술잔 위에 올렸지만, 집에 귀가한 뒤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온 뒤 16년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4인1실 기숙사, 하숙, 자취 등 주거 환경만 바뀌었을 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엔 큰 변화가 없습니다. 혼자놀기의 달인이 됐습니다. 


은 36년 동안 혼자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표 하숙에 최적화 상태입니다. 연애도 10년째 한 남자와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부모님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체감상 때로는 함께 사는 것 같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서는 순간 묘한 자유로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양쪽에 한 발씩 걸친채로 사는 삶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요즘, 2인분의 삶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잠깐, 아주 짧게 말입니다.


은 토끼 같은 남편과 여우 같은 딸을 기르며 '일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만 서른 살이 되는 해에 부모님 슬하에서 벗어났습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극한 경험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혼자, 누군가는 1.5인 가구의 느낌으로, 누군가는 빼박 3인 가족을 꾸렸습니다. 그런 셋이 주기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는 날에는 주제 하나당 소주 혹은 맥주를 1병씩 까는 것 같습니다. 각자 삶에서 조금씩 다른 주제를 하나씩 꺼내 올려놓으니 거뜬히 서너병은 해치우고 파합니다. 


한 개의 주제, 각기 다른 세 명의 삶을 소주 한 병의 시간에 담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스무살 여대생 셋이 아닌 지금의 우리 셋을. 그때는 같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이야기들을. 


굳이 시간을 내서, 각 잡고 책상에 앉아서 적는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세 명의 카톡방에서 누군가가 던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각의 시선으로 끄적끄적 적습니다. 마감도 없고, 분량도 없고, 형식도 없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글이 웃기면 웃고, 바쁘면 그냥 무시합니다. 그렇게 15년 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