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뒤집힌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
이 영화는 전형적인 블랙코미디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만족하는 영화였다. 평소에 우리가 추구하고 높은 가치를 두는 것들(대게는 희소성을 띄고 이에 따르는 경제적 값어치가 높은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게 블랙코미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다소 과장되어 불편할 수도 있는 설정이 있지만, 인간의 권력에 대한 본질을 잘 보여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모델 커플인 칼과 야야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화려하고 세련된 세계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미 균열이 존재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휴대폰화면 속의 이미지와 실제 세상에서의 나와의 균열에서 시작하여, 누가 돈을 내야 하는가,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같은 사소한 갈등으로 전개되어 곧 이 영화가 다루려는 핵심인 권력관계로 확장된다. 연인 간의 관계조차도 일종의 권력 구조안에서 이루어진 다는 점을 초반부터 명확히 드러낸다.
이후 이야기는 초호화 크루즈로 이동한다. 여기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계급 구조와 권력관계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초호화 크루즈보다 인간사회에서의 권력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설정은 없었을 것이다. 부유한 승객들과 그들을 응대하는 승무원들, 그리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강요되는 과도한 친절과 복종. 특히 “손님은 항상 옳다”는 규칙은 서비스 산업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 웃음은 점점 불편함으로 변한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가 현실감을 유지하면서도 과장된 표현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권력관계가 급변하게 되는 계기가 폭풍 속 만찬 장면부터이다. 배는 흔들리고, 사람들은 구토하며, 무형의 권력관계를 제외하고는 질서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붕괴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블랙 코미디를 넘어서 현실에서의 사회적 지위, 돈, 교양 같은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극단화한다. 무엇보다도 선장과 러시아 부호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두고 술에 취해 논쟁하는 장면은, 고귀한 이념조차 현실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대사처럼 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인도에 도착한 이후부터,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권력관계라는 개념이 불변하는 생물학적 목적이나 생존본능에 기반하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바꾸어 말하면, 이 영화는 인간사회에서의 권력관계가 생존본능이나 생물학적 이유와 상관없이 순전히 사회적 관계에서 기인하고 있다를 말해주고자 한다. 무인도에서는 기존의 계급 구조는 완전히 전복된다. 돈도, 외모도, 사회적 지위도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대신 생존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권력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크루즈 내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이 그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이전까지 가장 낮은 위치에 있던 인물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된다.
이 전환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권력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그 상황에 맞춰 너무나 쉽게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고, 타인을 지배한다는 것. 애비게일이 권력을 쥔 이후 보여주는 행동은, 이전에 그녀를 지배하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질은 특정한 권력구조를 숭배함이 아니라, 어떤 권력구조라도 만들고자 함이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타인을 종속시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권력의 중심에 애비게일이 있다면, 새로운 권력구조에 적응하는 인물로 칼을 부각한다. 기존에 그는 외모라는 자본을 기반으로 살아왔지만, 무인도에서는 그 가치가 사라진다. 그가 애비게일과 맺는 관계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권력관계의 재현이다. 생존을 위해 관계를 맺고 이 과정에서 권력이 나오며, 이것이 고착되어 계급이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관계, 권력, 계급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분명 과장되어 있다. 상황은 너무나도 극단적이고, 전개는 다소 길게 늘어진다. 특히 반복되는 장면들은 의도적인 불편함을 축적한다. 그러나 그 과잉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다. 보는 이로 하여금 웃다가도 불편해지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불편함을 통해 자신이 속한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결국 이 영화는 계급 질서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위에서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웃음으로 시작해 불편함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단순한 풍자를 넘어선 일종의 관찰실험처럼 보인다. 당신이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끝까지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