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 어쩔 수가 없다

결국은 선택이었다.

by Julianus

요즘은 짧은 영상에 노출이 많이 되다 보니, 2시간 남짓의 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게 된 데에는 박찬욱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9할 그리고 굳이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제목이 1할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과 인물 그리고 가족관계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어쩌면 과장되고 과도하게 부풀려진 가족애를 보여주며, 주인공의 역경은 바로 이 가족애에서 출발할 것임을 미리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직장에서의 위치,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서의 충실하다 못해 모범을 보여주는 가족구성원,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마치 주인공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맞물린 제지공장에 있을 법한 기어장치를 보는 것 같았다. 잘 맞물린 기어는 유기적으로 각 부위의 역할을 하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듯이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직업-가족-사회관계를 보여줌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그러다 단 하나의 변화, 주인공의 실직이 이 모든 기어의 리듬을 붕괴시키게 된다. 직장에서의 퇴출이 가족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주인공의 오랜 로망과 가족이 누리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반응과 선택을 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서 지인에게 부탁하고, 무작정 찾아가 읍소를 하고, 혐오하던 이들과의 거래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를 의심하고 질투하게 된다. 그러나 문득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자리가 없으면 만들자.

제목 "어쩔 수가 없다"이지만 주인공은 결국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제목은 주인공이 주인공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자조적인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상황에 적응하기에는 본인의 여건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자신의 경쟁자를 직접 찾고 찾아가 없애게 된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하지만, 과정에서 상황은 중구난방이 되고 여러 번의 위기가 오지만 그래도 그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이 아주 운 좋게도 흔적을 남기지 않거나, 우연한 조력자들을 만나 본인이 원하는 결과들을 얻게 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인공은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잠재적 경쟁자들을 없애고자 했다. 이러한 선택이 어쩔 수 없었음을 말하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상황이 그토록 궁지에 몰렸었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이 간절했는지를 설득하기에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을 조금 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이거나, 주인공이 잃어버린 그리고 잃어버리게 될 것들이 주인공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서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배우들은 분명 고군분투한다. 표정의 미세한 떨림, 목소리의 변화, 눈빛의 흔들림은 인물의 불안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연기가 서사의 부족을 완전히 보완하기는 어려웠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 감정의 비가역성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부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주제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지는 않는다. 영화가 체념과 선택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진짜였는지, 거짓이었는지 끝내 명확하게 흔들어주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생영화 중 하나로 꼽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잔상이 커서 그렇지 그래도 박찬욱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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