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많은 선택들을 하고 살아간다. 그 선택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면서 선택을 하고 때로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수많은 선택들에 묻혀 지내다 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원래 목적지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한 건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그 질문들에 대해 딱히 대답을 찾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떤 답도 할 수 없음이 답답할 뿐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현세와 내세에 대한 명확한 구분, 그리고 삶에 대한 근원적으로 부여받은 목표와 목적이 있는 건 아니기에 평생 숙제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언제나처럼 연초가 되어 올해의 계획을 세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계획일 뿐 그것이 나를 어디로 가게 할지 내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행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답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그 계획대부분의 근원은 경제적인 이유와 목적이다. 어릴 때는 거창한 목적이 아닐지라도 삶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지' 등 나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이끌어 줄 만한 삶의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 생각하기에 모든 계획과 삶이 경제적인 목표, 목적, 이유에 발목 붙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선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 계획하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아마도, 나뿐 아니라 경제적 속박을 대부분의 사람이 벗어나지 못해 각자 최선의 노력들을 하며,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경제적 속박을 벗어나면, 이러한 고민을 안 해도 될까 생각하지만, 아직 오지도 올지도 모르는 '해방'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인 것 같다.
스스로 세웠으며, 사회에서 강요당한 경제적 속박을 당장 벗어날 수 없다면, 내가 지금 세울 수 있는 목표는 무엇일까? 절대적으로 빈곤하지 않은 내가 스스로를 경제적 속박으로 가둔 이유는 남의 시선, 남의 처지와 비교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차/좋은 집/좋은 옷/시간적 여유는 현대사회에서 비싼 차/비싼 집/비싼 옷/경제적 여유로 치환이 된다. 내가 가진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값을 매기고 시장 가치를 주변인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싼 물건을 가지도록 채찍질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자괴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 끊임없는 순화의 고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위에서 나열한 좋은 차/좋은 집/좋은 옷 은 한계를 모르고 비교대상을 바꾸어 더 높은 값어치의 물질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만큼은 모두가 다 같은 시간이 주어지는 만큼 절대적 비교가 가능하다. 물론 이마저도 경제적 여유로 일부 치환 가능하지만 다른 요소에 비하면 그나마 누구에게나 공평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올해는 시간적 여유를 절대적으로 확보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조금은 눈치 덜 보고 덜 비교하며, 확보된 시간적 여유에서 내가 하고 싶지만 미뤄왔던 일을 하나씩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로 여기에 글을 꾸준히 쓰는 것으로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