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에 세 들어 사는 메시아
구원자라는 뜻의 메시아. 그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태 개신교 신자였던 나는 수 없이 들어 왔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정녀인 마리아에게서,,, 여느 개신교인처럼 나 또한 그에 관해 익숙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메시아는 성서 속에서는 어찌저찌 태어났을지 몰라도 내 마음속에는 태어나지 못했 다. 그는 내 밖에 있었다. 수없이 전해 들은 예수는 유대인은 구했을지언정 나는 구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성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는 매주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불러도 그가 내 안에서 진정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그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힌트를 얻은 적이 있다. 기억은 고등학교 어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다. 방학 때 교회에서 간 수련회에서 한 선교사님을 만났다. 그분의 성함은 기억나지 않으나 어렴풋하게 외모와 인상이 기억난다. 그는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20대 때 매일 술에 취해 방황하던 어느 겨 울,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몸이 붕 떠 맨홀에 처박혔다고 한다. 목이 비틀리고 사지가 틀어지는 고통과 청춘을 맞바꿔 그는 장애인이 되었다.
그날의 설교에서 그는 장애인이 된 후 어떻게 선교사가 되었는지 설명했을 테지만 나는 단 하나의 말을 제외하고 아무 내용도 기억나지 못한다. 그가 나와 또래 친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눈에 예수 가 있다!” 나도 본 적 없는 메시아를 그가 어떻게 내 눈에서 본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그는 진심으로 사 람의 눈 안에 예수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에 아프리카 그림을 파는 갤러리에서 일을 했다. 화랑에 손님들이 방문하실 때 관 장님을 대신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 했기에 우리가 파는 아프리카 그림에 관해 공부했다. 한 자료에 서 밝히길, 탄자니아의 어떤 부족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내가 산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태양이 엄청나게 내리쬐는 그 동네에서는 강한 햇빛으로 인해 왠지 옆 사람의 눈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나는 옆 사람의 눈에 세 들어 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집 에서 쫓겨난다. 그러므로 화장실도 깨끗하게 쓰고 벽지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다. 잠시 빌린 집이므로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염치없이 행동한 날에는 부끄럽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사과한 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의 도리를 지킬 수 밖에.
남의 눈에 세 들어 사는 나는 그의 눈동자를 거울삼아 말과 행동을 점검하며 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 느새 그의 눈 속의 내 모습이 변하겠다. 더럽게 살면 더럽게 변하고 깨끗하게 살면 깨끗하게 변하겠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으로 변하고 책을 좋아하면 책으로 변하겠다. 메시아가 되기 위해 애쓰면 메시아 가 되겠다. 그의 눈 안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겠다.
고등학생 때 뵌 그 선교사님은 어쩌면 메시아였나보다. 메시아 눈에는 메시아가 보일 수밖에. 그는 내 눈 안에 잠시 세 들어 산 메시아였나보다. 엄청 큰 부지에 지어진 대형 교회가 아니라 비좁은 눈 한 칸에 살 던 메시아. 십 년쯤이 흐른 지금, 나 또한 주변 사람의 눈에서 메시아를 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동공을 마구간 삼아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