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
“우리 여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은주는 안전벨트를 몸 쪽으로 바짝 더 끌어당겼다. 면허를 딴지 5년 만에 운전 연수를 받기 위해 노란색 승합차를 타고 운전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구리 OO 운전면허시험 학원은 서울 시내보다 연수 비가 훨씬 저렴했다. 논, 밭을 달려야 나오는, 구리시내에서도 훨씬 더 들어가는, 한적한 시골에 있었지만 망우역까지 픽업 차량이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었다. 3일 중 마지막 날 평일 오후에 연수를 받으러 온 사람은 은주 하나다. 날이 스산하게 흐려서 가지 말까 생각했던 터라 놀랍지는 않았다. 망우역 집합장소에서 뒤에 타려고 승합차의 슬라이딩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뒷문은 잠겨있었다. 그때 오른쪽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학생, 조수석에 타요, 오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노란색 승합차를 타고 논, 밭을 달리는 장면. 운전석에 앉은 중년의 남성. 조수석에 앉은 젊은 여성. 이 장면에서 최민식은 조수석에 탄 여자를 끔찍하게 죽였다. ‘악마를 보았다’가 떠오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은주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어 뛰어내릴 수 있도록 왼손은 안전벨트 클립에 오른손은 차 문 손잡이 근처에 뒀다.
“대학생?”
“네.”
“학생은 남자 친구 있어요?”
“아뇨.”
“사귀어 본 적은 있고?”
“네? 네."
"헤어졌어요?"
“아…네에, 없앴어요.”
“왜?”
“별로인 사람이라서요.”
“잘했네, 잘했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돼요.”
“아, 예”
“아니야 진짜야. 우리 여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남자 잘 못 만나 죽었어. 그 망할 놈의 술독에 빠진 호로새끼 때문에, 아이고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비가 오려면 차라리 오지, 구름만 잔뜩 내려앉은 도로는 텅텅 비어있다. 흘깃 본 계기판은 시속 120km.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다리만 부러지고 살 수는 있을까 은주는 깁스를 한 자신을 상상했다.
“내 여동생은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놈도 처음에는 안 그랬지. 막노동을 해도 부지런히 열심히 했으니까. 근데 하루 이틀, 일 안 나갈 때 술 마시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일을 안 나가고 술만 쳐 마신다 하더라고.”
말이 많은 운전기사라고 생각하며 먼 산과 논을 바라봤다. 시내에서 벗어나 외곽에 나오면 닭을 요리하는 곳과 타이어를 판매하는 곳이 많아졌다.
“하루는 그 새끼가 또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들어와 쳐 자고 있었던 거여. 숙이는 야간에 식당일을 하고 들어와서, 남편이 추운데 잔다고 불을 땐겨. 또 불만 때겄어? 큰 양동이에 물을 올려 놨겄지. 학생, 옛날에는 부엌에서 불을 땠어. 그거 아는겨?”
“네. 알죠 알죠.”
“학생이 알긴 뭘 알어, 큼큼, 우쨌든, 그 주방에 불 때고 하는 데, 거기에 사람 허리까지 오는, 아주 대자 양동이를 올려놨던 거여, 옛날에는 다 부엌이 그래 생겼어. 세멘바닥에 불 때는 데도 있고. 밥도 하고 물도 끓이고. 우리 숙이가 근데 그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지 키만 한 양동이를 목욕한다고 내리다가 그만 지가 뒤집어쓴 거여.”
“으악!”
은주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으악! 하고 갸도 소리를 질렀겠지. 근데 업어가도 모를, 술 마시고 자는 놈이 깰 리가 있겄어? 수챗구멍도 없는 코딱지 만한 세멘 바닥에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그 물이랑 같이 거기에 5시간을 기절해 있었댜. 갸가. 잠깐 깨어나서 ‘영호 아빠, 여기, 살려 줘유’ 하다 다시 기절하고 또 깨어나면 ‘영호아빠, 영호 아부지’ 그랬다고. 근데 의사가 병원에서 그러더라고 나중에는 기도까지 다 익어서 소리를 내는 게 엄청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으아……”
“그 잡놈의 새끼가 오후 2시깨나 눈을 떴대요. 목이 마르지, 그니께 영호엄마 물, 물, 불러도 사람이 대답이 없어, 그제야 부엌에 나와 봤다는 거지.”
“어머나, 어떡해…그래서요?“
은주가 여차하면 차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손을 벌어진 입 앞으로 가져왔다.
“부엌에 나와보니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더라는 거여. 깜짝 놀라 가까이 가 보니, 바닥에 물이 찰방찰방하는데 그 안에 사람이 반 익어 있더래. 몸이 퉁퉁 불어서 다 쭈글쭈글한 채로 눈을 뜨고 있는데, 아휴, 지금 생각을 해봐도, 갸가 뜨거운 물을 다 덮어쓰고 나서는 얼마나 뜨거웠을 거여, 물이 식고 난 후엔 또 얼마나 추웠을 거여. 한 겨울이었으니까.”
“아이고… 어떡해요.”
“학생도 황당허지? 내가 우리 집사람이랑 병원에 갔을 때 진짜 눈이 뒤집혔겠어 안 뒤집혔겠어. 사람이 삶아진 거여. 그 뜨거운 물에. 그 통증이 얼마나 끔찍했겠어? 숙이가 그렇게 5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있었다고 생각을 하니까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고. 근데 그 새끼가 중환자실 침대 옆에 찔끔찔끔 울고 자빠져있는겨. 내가 왜 이렇게 늦게 병원에 왔냐 물으니 야간 근무를 해서, 늦게 일어나서 못 봤다 하더라고 근데 그 새끼 술냄새가 나는 겨. 내가 그때 생각을 했어. 이 새끼 숨통을 오늘 내가 끊어 놓는다. 병원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서도 내가 그 새끼를 뒤지라고 팼어. 신발, 휴지통 손에 잡히는 대로 다 들고 두들겨 팼지 아주. 나중에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 목발이 들려 있드라고. 학생 목발이 왜 목발인 줄 아는겨?
“목... 나무 목?”
“허허 맞아! 옛날에는 목발이 나무였어요.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하대. 얼굴은 뭐 말도 못하지. 그래도 다리가 병원에서 부러졌으니 기부스는 빨리 했지 뭐, 으하하하하하.”
운전기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네, 크흐흠, 퉤.”
콧물을 길게 들이마신 그가 운전석의 창문을 열어 코를 지나 입으로 내려간 가래를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다.
“의사 말이, 피부는 고사하고 근육, 장기 일부까지 익었댜,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랴. 그래서 동생들을 불렀지, 그리고 옆에 기부스를 하고 있는 그놈 새끼는 쫓아냈어. 동생들 오면 니 남은 다리도 분질러버릴 테니 걸어 나가고 싶으면 지금 나가라고, 장례식장에 오면 내가 나머지 팔, 다리도 분질러 버린다고. 그제야 그놈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가는겨."
“어휴…”
“내가 누워있는 동생한테 물어봤지, 숙아, 야야 네가 얼마나 지금 아플 거이냐? 왜 못 가고 있는겨? 갸가 누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겨. 그러면서 모기만 한 소리로 그랴. ‘집, 집’ 그랴. 내가 집에 가고 싶은겨? 물으니 눈을 꿈뻑꿈뻑 햐. 병원에서도 진통제 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니께 진통제랑 링게루를 잔뜩 받아서 병원 응급차를 타고 집으로 왔지. 갸가, 집에 와서 한 시간 만에 그라고 간겨. 집에 와서야 편히 눈을 감은겨… . 크흐흐흐흠.”
“어떡해… 이게 무슨…. 너무 힘드셨겠어요. 하… 솔직히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
“말씀은 무슨 그냥, 학생이 이리 잘 들어주니 됐어. 퉤.”
창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닫혔다.
“그놈이 장례식장에 왔드라고. 목발을 집고 와서 제발 장례식장에 있기만 해달라고 싹싹 빌대. 입술은 터지고, 다리는 기부스를 하고 눈은 팅팅 부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 꿇지도 못하지 뭐, 부러졌으니. 그 꼴을 보는데, 나도 그제야 눈물이 나더라고. 그 상 놈의 새끼를 붙잡고 울었다 아니여. 사람이라는 게 지 여동생을 죽게 만들어도 연민이라는 게 생기는 겨. 참 우습지?”
운전기사는 끊임없이 내뱉던 말을 잠시 멈췄다. 그의 옆모습만 보며 한참을 가던 은주는 그제야 도로를 멀리 바라봤다. 구리 OO운전면허시험학원. 커다란 간판이 도로 저 멀리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반대편 가로수에는 한방 옻닭, 닭백숙, 오리백숙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냄비 속에 하얗고 통통한 닭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사진이 낮은 해상도로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저 기사님, 창문 좀 내릴게요, 속이.. 욱…. 읍.”
달리는 차 안에서 밖으로 고개를 내민 은주 뒤통수로 빗물이 떨어진다. 그의 식도로 넘어온 토사물이 도로로 후드득 떨어진 하얀색 차선 위로 길게 점점 멀어졌다.
"죄, 죄송해요. 왜 이러지."
“아이구, 무슨 토를 햐. 그래도 비가 와서 다행이지. 금방 씻겨 내려 갈겨.”
학원 주차장안으로 차가 들어섰다. 갑자기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이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자, 다 왔습니다.”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어쩐지 한 톤 높아졌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저 동생분 일은 정말.”
“예예, 좋은 하루 되세요.”
승합차는 차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출발했다. 땅에 발을 디딘 은주의 다리가 휘청했다. 노란색 승합차는 다음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시 망우역 방향으로 떠났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던 그를 알아본 어제의 감독관이 말을 걸었다.
“안은주 교육생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안 들어가요?”
“제가요? 생각을요?"
그렇다. 은주에게는 지금 좋은 생각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