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풍경들: 존버거 예술론》(열화당2019. 신경경역)을 읽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이은 두 번째 저작이다. 사실 '예술론'이라는 부제에서 학술적 저작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상은 잡문집 성격을 띈 예술에 대한 글로, 엮은이에 의하면 "생생함과 자유를 부여해 주는 상징에 가깝기 때문에, 이 책은 《초상들》과 마찬가지로 버거의 글쓰기가 바탕으로 삼고 있는 취지에 공감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자유로이 장르를 넘나들며 글의 주제를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지평이 넓어진 데 대한 기록으로, 이 글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를 개척한 시도가 보인다. 그러니,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는 그가 스케치한 지도를 따라가며 그가 개척한 새로운 지도를 포착하고자 한다.
일단, 문체와 글 스타일에 대해 말해보자. 존 버거 정도되는 거인들의 글은 대체로 어렵다. 나쁜 말로 하면 글을 못 쓴다. 같은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에릭 홉스봄이 그런데, 그의 글은 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엄한 만연체로 쓰여졌다. 워낙 읽기가 어려워 《제국의 시대》 초반 부만 읽다가 그만두었는데, 지식의 방대함을 뿜내는 홉스봄의 문장들은 숨이 막혀온다. 같은 마르크스주의자 캘리니코스도 그렇다. 그렇지만 간결체가 돋보이며, 지식을 자랑하기보다 검소하고 담백하게 글을 써낸다. 그러면서 <크라쿠프>처럼 소설의 형식의 글쓰기도(실제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로자 <룩셈부르크를 위한 선물>과 같은 서간체 글쓰기 등 형식을 넘나드는 탁월한 문장가이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발터 벤야민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야기다. 벤야민을 '골동품 연구가이자 혁명가'로 칭한 것 역시 흥미로운데, "골동품 연구가와 혁명가는 두 가지를 공유할 수 있다. 주어진 현재에 대한 거부와 역사가 자신에게 과제를 맡겼다는 인식이다. 둘 다에게 역사란 직업 같은 것이다."라고 하며, 그를 일개 문학평론가 이상으로 본다. 특히 벤야민이 체계적인 사상가는 아니더라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합'은 없지만, 정치상태의 공백을 예견한 예언자로 본다.
. 그의 분석은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를 넘어,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버거는 벤야민의 관점에서 시간을 중시하며, 현대 사회가 어떻게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버거는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의 투쟁과 이상이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의 편지에 담긴 정치적 열망과 감성은 버거의 특유의 시선으로 재해석되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또한, 그의 자전 소설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 경험이 예술 관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버거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연 속 경험을 통해,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러한 경험은 독자로 하여금 예술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포괄적 이해로 확장하게 만든다.
, 《풍경들》은 예술이 단순한 미적 경험을 넘어 인간 존재와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도구임을 강조한다. 버거의 글은 철학적 깊이와 동시에 명료성을 갖추고 있어,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책은 우리가 주변에서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여정으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