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시인을 읽으며>
-겸손한 민중의 시선으로
2000년대 나온 시집 중 사적으로 가장 편애하는 시집은 김정환 시인의 《레닌의 노래》이다. '레닌은 어디에/레닌은 어디에'라던 구절은 미래파 시인들에 환멸을 느끼던 갈증으로부터 목마름을 잠시 해소시켜주었다. 당연히 무척 인상 깊게 남은 시집 중 하나였다. 그렇게 잊고 있던 '김정환'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각인했었던 계기가 있었는데, 가야할 길을 잡아줬던 은사덕분이다.
80년대 진정한 민중시인은 김정환이라 말할 수 있다. 80년대 라이벌로 여겨진 황지우나 이성복은 부르주아 및 그것의 수호자인 정권에 비판적이었지만, 민중과는 조금 결이 다른 비판적 중간계급의 위치에서 시를 썼다. (박상수 시인의 《너의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줄게》을 참고) 언어의 낯설게 하기, 감수성의 깊이, 해체시의 시도 등 수많은 아방가르드한 기법으로 한국시의 진보화에 있어 대단한 기여를 했지만, 비판적으로 돌이켜보면 대중과 괴리된 지적인 층위에서 만족감을 얻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시의 색체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영역에서 비판적으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와 달리 이들과 동시대에 살아가면서, 진정한 민중의 시선으로 처절한 민중시를 써내려간 시인이 바로 김정환이다.
김정환의 《황색예수》는 "성경을 모티프로 삼아 1980년대 한국이라는 억압과 착취의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위대한 민중시이자, 서사시의 반열에 오른 시집이다. 감히 단언하건데, 무신론자들을 위한 새로운 성경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증오, 민중에 대한 희망, 사랑하는 이에 대한 사랑('그러나 사랑이 멈추면 큰일납니다' <사랑에 대하서> 중)을 보존하며 무엇보다 민중의 언어로 인간의 풍경을 스케치한다. 문학의 계보 중에서 '사랑과 저항은 하나'를 외치던 계승자이자, 80년대 민중 문학을 서사시의 반열로 승화시킨 김정환의 《황색예수》를 추천한다.
민중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언어와 상황에서 조금 앞선 미적 기교로 민중을 이끈 영원한 민중시인 김정환을 기억하며,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긴다.
그대는 어쩔 수 없다버리지 못하고/ 그대의 가슴은 그대를 버림까지 품고 있으니/ 그대의 거대한 포옹 속에서/ 그대를 버린 사람들은 가시처럼 그대를 찌른다/ 그대 육신의 가슴을 찢어져라 찌른다/ 그러나 그대는 바로 찢어질 수 없는/ 깜깜한 사랑의 힘/ 그 자체/ 언젠가 손끝, 발끝, 황홀한 마주침같이 입맞춤같이/ 아주 가까운 귓전의 입김 소리같이
-서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