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아버지가 쓴 산문은 역시 매혹적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가 그렇다. 시적인 문체와 돋보적인 영혼이 담겨져있는 우아한 산문이다. 원래는 크로키를 그리는 풍속 화가 콩스탕탱 기라고 하는 화가를 다룬 글이다. 그의 그림을 비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자신의 주요 개념인 현대성과 댄디즘이라는 두 개념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시적 산문에 가깝다. (산문시의 정점에 오른 《파리의 우울》과 달리 엄연한 산문이다)
이 저서에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을 비판적 시선으로 살핀다. 그에게 현대성이란 반은 순간적이고, 반은 영원한 것으로 본다. 찰나에서 영원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보들레르의 현대성이다. 그는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이야말로 영원불변한 인간 경험의 진실과 만나는 지점이라 설명하며, 이를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본령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현대성의 미덕은 그 순간의 미학에 있다. 그가 비평한 콩스탕탱 기의 경우 그림이 바로 현대성을 포착하고 있다. 간단한 크로키임에도 순간을 포착하면서 영원을 놓치지 않는다.
보들레르에게 현대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삶의 문양, 그 가운데 놓인 시간의 무늬이다. 현대성은 고대, 중세, 근대의 문화적 이미지와는 다른 일시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는 단순한 일탈이나 일회적 즐거움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드는 창조의 과정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중심에 서서 시대의 흐름을 요리해야 한다.
댄디즘은 이러한 현대성의 한 표현 방식으로, 외적 아름다움을 넘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방편이다. 댄디는 세속적 규범을 초월한 채, 자기 자신을 주체적인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간다. 그는 스타일과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사회 전체에 각인시키지만, 동시에 개인적 의지와 고독의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그의 댄디즘의 기본은 자연적인 것에 대한 거부가 담겨져있다. 이 지점에서 보들레르는 여성을 비하한다.
프랑스 문학에서 ‘여성혐오’라는 말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가는 19세기 중엽에 활동하여 현대시의 선구자가 된 시인 보들레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고백 형식의 글에서 ‘여성혐오의 철학’을 이렇게 정식화했다.
-황현산,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 중에서
물론, 이 지점에서 그의 여성관은 비판받을 만하다. <여자>와 <여자들과 창녀들>이라는 글을 보면 가부장적이기보다 현대판 인셀같다. 그가 평생을 사모한 여인 잔 뒤발을 향한 뒤틀린 숭고한 감정은 역겨운 여성관으로 나타난다. 그의 후진 여성관은 후대 댄디인 랭보, 오스카 와일드에게도 나타난다. 이런 댄디의 먼 후계자인 후대 귀족예절론자(일명 미래파 시인)들에 이르러서야 댄디의 여성비하는 사라진다.
그렇지만 초기 부르주아 도시인 파리를 산보하던 보들레르의 댄디는 기어코 물화되지 않겠다던 삶의 예절론이다. 댄디의 삶은 천상의 고개를 숙여 세속의 현실을 탐험하는 과감한 여정과도 같다.
예술가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말고, 그 구르며 바뀌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라고 말이다. 예술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현대성과 댄디즘은 다가오는 새로운 흐름 속에서 인간 경험의 영원을 끌어내는 예술적 도구로 자리매김한다.
보들레르의 통찰은 단순한 미학적 스케치에 그치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 현대성과 댄디즘이라는 그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며, 순간 속에 깃든 영원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