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에서 회장 형으로

재벌 총수의 이미지 변화

by 꿈꾸는 곰돌이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오랜 세월 산업화 신화의 주역이자, 때로는 신성가족처럼 신화화된 존재로 군림해왔다. 그 중심에는 늘 막대한 권위를 두른 아버지로서의 이미지, 곧 재벌 회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재벌총수들을 보면 '회장님'이라는 불변의 카리스마는 점차 힘을 잃고, 그 자리에는 '형'이라는 호칭이 조용히 파고들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쥐었으나, 겉모습은 한층 친근하고 소탈해진 듯하다. 혈연을 통한 권위는 여전하지만, '형'이라는 호칭이 풍기는 분위기 속에는 교묘한 막강함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권위를 과감히 포기한 듯한 이미지 변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깊은 뿌리와, 그 바탕을 이루는 권력과 대중 사이의 골격을 뒤흔드는 굵직한 문화적 지각변동이다. 무겁고 경외롭던 권위는 친밀하고 유연하게 모습을 바꿨으며, 이제는 대중의 정신에 은연중 스며드는 새로운 유혹의 얼굴이 되었다.

라캉적 '상징적 아버지'의 시대: 1, 2세대 회장
한국 경제의 초창기를 이끈 1, 2세대 재벌 총수들은 흔히 '아버지'의 견고한 그림자였다. 이병철, 정주영, 이건희, 정몽구. 이 이름들은 평범한 기업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라캉이 말한 '상징적 아버지'로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권위, 온 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서의 상징이었다. 이들의 말은 곧 법이었고, 때로는 한 가족이자 기업의 운명을 쥔 신화적인 존재감으로 남았다. 혼외자 논란, 사카린 밀수, 어마어마한 비자금, 성매매 등 자본주의의 법률과 도덕률에 위배되는 논란을 벌였음에도 이들은 법률적 처벌에서 예외 상태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강한 권위에 도전하는 오이디푸스는 늘 있기 마련이다. 현대가와 삼성가 모두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아버지 권력에 맞선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좌절되었다.

'형'으로 위장한 친서민적 얼굴의 시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재벌의 권위는 더는 무적이 아니게 되었다. 50대 안팎의 현 재벌 총수들은 이제 '가부장'의 딱딱한 외피를 벗고, 나긋나긋하게 "형"이라 불리며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몇몇 대표적인 '형들'의 얼굴을 살펴보자.

- '재용이형' 이재용: "형"이라는 호칭은 이재용에게 일종의 사회적 사건이었다. 국회 청문회장에 앉아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깊은 고민에 잠긴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 '나와 다를 바 없는 친근한 사람'이라는 착시를 불러왔다. 권력형 비리에 얽혀 수감되었음에도 출소 후 곧바로 치킨을 시킨 모습이 포착되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권위 있는 재벌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그조차 어쩐지 골목 끝집에 사는, 삶이 버거운 '형'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말수 적고 묵묵한 태도 속에서 '함께 고통받는 형'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대중과 은근히 감정의 끈을 잇는 데 성공했다.

- '용진이형' 정용진: 자신을 줄곧 "형"이라 부르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용진이다. 인스타그램에 명품 패션, 소소한 음주 취미와 요리까지 일상을 숨김없이 공개한다. 게다가 SSG 랜더스를 인수하며 스포츠 구단주로서의 행보를 보인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심과 ‘친근한 부자’라는, 어쩌면 착각에 가까운 환상을 심어준다. 치밀하게 계산된 유희 속에서 대중의 감정을 파고드는, 이른바 전략적 친밀감인 셈이다.

- '묵묵한 형' 정의선: 직접적으로 나서는 타입은 아니지만, 스포츠 구단 후원이나 국가대표팀 지원 등 대중이 열광하는 영역에서 한 발 물러나 묵묵히 힘을 보태는 정의선 회장. 그는 조용히 힘을 싣는 ‘속 깊은 큰형’의 역할을 자처한다. 개인 취향보다 공공 기여와 대의적 연대를 강조하며 ‘민족의 동반자’라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엮어간다.

이처럼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연출되는 '재벌 형'의 등장은 지배계급이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획득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전략이다. 엄숙한 가부장이 아닌, 친밀한 형의 이미지는 그들의 압도적인 계급적 특수성을 희석시켰다. 살해의 대상인 아버지가 아닌, 같은 핏줄을 공유하는 형제라는 인식은 적대의 관계가 아닌 동반자의 관계를 상정한다. 그러니 재벌형이라는 인식은 재벌 세력과 마치 화해할 수 있는 듯한 판타지를 부여한다.

권위의 실추와 뉴미디어 시대의 헤게모니 재구축

이러한 이미지 전환의 배경에는 재벌 3세의 태생적 한계와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가 깔려 있다. 그들은 선대처럼 자신의 힘으로 부를 창출한 '창업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오직 혈연을 통해 거대한 부와 권력을 세습받았다는 원죄적 한계는 그들의 '권위'에 본질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산업화에 기여했던 2대 회장들과 달리, 회장님의 '손자'인 재벌3세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었다. 더욱이, 부르주아 관점에서도 조용하게 무능력한 이재용이나 '멸공 논란' 등 시끄럽게 무능력한 정용진 등 재벌3세들의 무능력함 역시 한 몫했다.
게다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뉴미디어의 확산은 과거처럼 일방적인 권위 주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건희의 성매매 논란을 보도하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등불로 부상하기 시작한 뉴스타파가 대표적이다.

결정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때 무너진 '아버지'의 장엄한 권위는 이제 회복 불능 상태가 되었고, 재벌들은 필사적으로 이미지 쇄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혈연 같은 형'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는 동시에, 대중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통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동의, 즉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치밀하고 교활한 시도이다.

'재벌 형'의 눈웃음 뒤에 숨겨진 차가운 자본의 얼굴을 냉철하게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허위의식의 장막을 걷어내고 현실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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