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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Aug 26. 2024

한 여름, 낯선 곳에서 원하는 카페 찾기.

조용히,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소음이 필요했다.


일요일 오전, 큰 딸이 독서수업을 하는  2시간 남짓, 어딘가 가있을 곳이 필요했다.

필요한 것은 다 챙겨 왔다.

읽을 책과 글쓰기 노트, 펜 2자루.

사실, 미리 생각해 둔 장소는 있었다. 바로 수업하는 곳 건너편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다.

요즘 편의점들은 취식 시설들이 잘 되어 있으니, 거기서 아메리카노와 쿠키 같은 간식을 하나 사서 먹으며

책 읽고 글을 끄적이면서  아이를 기다릴 계획이었다.

편의점은 항상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고, 손님들이 내는 이런저런 소음으로 어수선한 곳이니

그들과 그들이 내는 소리에 묻혀  있는 듯 없는 듯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계산대에 앉아 있을 사장님의 눈에 띄지 않게 테이블이 계산대와 조금 떨어져 있거나 진열대에 살짝 가려지는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대인기피증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이 내 눈에 자주 띄는 것도 낯선 사람의 눈에 내가 자주 띄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냈을 주변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조용함과 침묵이 주변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도 한다.

혼자 조용히 있을 내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나는 뭔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누군가가 나를 신경 쓸까 봐, 나는 그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예상과 계획은 항상 빗나간다.

학원 앞에 도착해 목말라하는 아이를 위해 내가 미리 봐 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음료수를 사서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는 바로 커피랑 쿠키를 사서 편의점에 자리를 잡아야겠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고, 들어가자마자 나의 계획이 어긋났음을 알았다.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테이블은 통유리를 마주 하고 있어 바깥의 한적한 주말오전의 거리를 보기엔 더없이 좋았다. 게다가 카운터와는 애매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어 사장님의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좁은 통로에 비치된 의자는 내가 앉았을 때 다른 손님들의 통행을 방해할 것이 뻔했다.

손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의자를 바짝 당겨 테이블 쪽으로 몸을 붙이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무리였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방해가 될 용기가 내겐 없었고,

다른 손님들의 통행을 방해하며 사장님의 영업에 또한 방해가 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만큼 염치가 없진 않았다.


어디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 모를 막막함이 차라리 나았다.

원하는 카페를 찾기 위해 큰길 쪽으로 무조건 걸었다.

맛있는 커피, 좋아하는 특정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특정 커피숍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게 커피는 맛이나 향으로 선택하는 기호식품이 아닌 카페인을 공급할 목적으로 마시는 기능성 식품이기 때문에 맛은 상관이 없었다.

오늘 내가 원하는  카페는,

두세 명의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된,

그런 무리의 사람들이 또한 두세 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그들이 내는 적당한 소음이 있는,

누군가가 나를 신경 쓸까 봐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카페였다.


큰길까지 걸어 나오긴 했지만, 갈등이 생겼다.

직진해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 ,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지나쳐온 2군데의 커피숍이 생각났다.

'돌아가서 그중 한 군데라도 들어갈까?'

어느 방향으로 가야 그나마 원하는 장소를 빨리 찾을지 모르겠을 막막함과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의 강렬한 여름 햇빛.

'돌아가는 게 나을까...?'


스쳐지나 온 커피숍 중 한 군데는 테이블이 4개 정도 있었다. 검은색 테이블에 철제 의자, 무채색을 주된 컬러로 인테리어가 된, 그렇다고 무겁거나 어두운 느낌이 아닌 모던하고 시크한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였다.

입구 맞은편 주방에서 진회색 앞치마를 두른 키가 큰 남자 사장님이  오픈 준비로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로 지나온 커피숍은 나무로 된 출입문이었다.

살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나무 테이블과 귀엽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진 카페 내부가 조금 보였다.

연한 핑크색으로 보이는  앞치마를 두른 여자사장님이 창문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카페 외양의 크기로 짐작해 볼 때 그 카페 역시 테이블은 3-4개 정도 있을 것 같았다.


2 군데 모두 마음에 드는, 괜찮은 카페였다.

하지만, 손님이 아무도 없다는 것, 내게 일행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픈준비를 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고 자잘한 소음들도 당연한 것들이다.

하지만, 일행도 없이 혼자 조용히 있는 손님에게 그 소리와 그 상황을 조심하려 애쓰게 될까 봐 싫었다.

내게 일행이라도 있어서 이야기라도 주고받는다면,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있어서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기는 여러 소음들에

나와 카페의 소리가 묻힐 것이 확실했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어느 곳에라도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2군데의 커피숍을 모두 지나쳐온 명확한 이유가 떠올랐고, 돌아갈 마음을 접었다.

낯선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이렇게 계속 걷고 또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지쳤을 때, 어느 곳이든지 상관없다는 절실함이 생기면  그때는, 신경이 쓰일까 봐, 조심할까 봐 하는 이런 고민 없이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핸드폰에 지도 앱으로 가까운 커피숍이라도 찾아봐야 겠다  싶을 때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눈에 띄었다.

"000 병원."

큰 병원 옆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커피숍이 하나는 있게 마련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여러 보호자들이 분주히 오고가고, 그 보호자들의 편의를 위해 취식시설이 상당히 잘 갖추어진  편의점이라도 있을 것이 확실했다.

(20년이 넘는 나의 병원생활에 대한 경험으로 봤을 때)

검색해 보려고 꺼내든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며 병원을 향해 걸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병원 건물 중심으로 좌우 맞은편, 어디에 있을지 모를 커피숍이든 편의점이든 찾기 위해서였다. 눈에 띄는 장소가 없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살짝 올라올 때쯤, 병원 바로 옆에 위치한 커다란 카페가 보였다.

분명히 몇 개의 테이블을 몇 무리의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내는 이야기 소리와 카페 주방에서 나는 소음,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나를 묻어 주는 소음은 오히려 편안하다.

2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카페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기분 좋게 나를 확 덮쳤다.

이야기 소리,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 무미건조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이톤인 직원 목소리.

드디어 찾은 것이다. 조용히 있을 나를 묻어 줄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따뜻한 거 맞으실까요?"

이 여름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받은 모든 직원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다 잠깐 멈칫하고 올려다보는 눈짓의 반응.

"네,따뜻한 아메리카노 맞아요."

직원이 안심할 수 있게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독백.

'따뜻한 커피 받으면서,아이스 시켰는데요. 라면서 진상 안부릴께요. 전 사시사철 따아 예요.'

직원이 들었을리 없지만,

마주친 나의 눈빛에 진심이 닿았으리라 믿었다.

한여름 주말 오전,나는 그렇게  아이가 수업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책을 읽고, 조용히 글을 쓰며

편안한 주말 오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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