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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May 13. 2024

소비는 불안이었다.

불안은 하지않던 소비를 하게 만든다.

남편이 내게 "흑염소흑마늘" 이라고 적힌 팩을 하나 내밀었다.

"먹어봐,한 박스 샀어."

"우와~자기야 고마워. 나랑 자기한테 좋은 거네~~"

영양제를 비롯한 모든 건강식품은 쓸데없는 거라 하던 남편이, 차라리 고기 한 번 더 먹는게 훨씬 낫다고 주구장창 말하던 남편이 웬일인가 했다.

용돈을 모아서 이런걸 사서 나한테 줄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찡하게 감동도 했다.

씁쓸하니 맛은 없었지만 남편의 정성에 꿀꺽꿀꺽 마셨다.

"자기야, 좋다~ 매일 챙겨먹을께."

"응, 그리고 이거."

남편이 내게 내민 종이에는


"고객님,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제품은 ~~~~~~~.건강하십시요.

**은행. 1**,***원.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쪽으로 계좌이체 해주면 된다."

"어?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용돈을 모아 산게 아니었다는 실망은 잠시였다.

이 사람이 건강기능식품을 돈주고 샀다는게 너무 의아했다.


추석전에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 건강식품 샘플을 무작위로 보내는 이벤트에 자기가 당첨이 되었단다.

그래서 샘플을 5팩 정도 받아서 먹었고, 며칠 전에 전화가 와서 후기를 묻길래 괜찮다고 이야기 했더니

상품광고를 막 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저것 사은품도 많이 챙겨주고 몸에 좋은 것도 맞고,그래서 한박스 샀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남편에게 잘했다고 했다, 그리고 잘 보이는 곳에 둘테니 내가 못챙겨 주더라도 꼭 꼬박꼬박 챙겨먹으라고, 나도 고맙게 잘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맺고 끊는게 확실한 사람이다. 샘플 몇 개 공짜로 받았다고 해서 물품을 구입할 사람이 아니다. 샘플로 보내주신 물건값 쳐줄테니 이런 전화 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 이렇게 물건을 산 이유가 뭘까....

아이러니 하게도 남편이 그렇게 쓸데없다고 말하던 건강기능식품 이라는 것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남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지는 것만 같은 자신이 불안했던게 아닐까.


가끔 핸드폰 화면을 갖다대면 항상 멀찍이 떨어뜨려 보면서 노안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고 얘기를 했었다. 바쁘게 일을 하고 온 날은 예전과 다르게 유난히 피곤해하고 일찍 자고 싶어했다.

강아지 산책을 도맡아 시키던 사람이 점점 소파와 한몸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본인도 걱정을 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약해지는 체력과 불안감은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소비를 하게 만들었다.


돌아보니 나 역시 다를게 없었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새로운 화장품들을 사서 바르곤 했다.

내가 유난히 더 초라해 보이진 않을까,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옷을 사고, 백을 샀다.

우리 아이들만 안하는 건가, 이러다 나중에 큰일 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학원을 소비한다.

돌아보니 이렇게 불안함이 아니었다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것들,굳이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꾸준히 살피고, 남들과 맞추려 꾸준히 소비한다.

나에게 맞는 소비인지, 내게 필요한 물건이 맞는지 보다는 어느만큼 나의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느냐가 

소비의 기준이 되어가는 것 같다.


불안,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가 하는 소비의 다른 이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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