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첫 출근일이었던 1월 2일. 어김없이 나의 임무는 재고실사였다. 다행히 이번에 재고실사를 맡은 회사는 내가 매 분기마다 검토를 나갔던 회사라 이미 어느 정도 재고의 종류나 흐름 등이 익숙했다. 게다가 내게 늘 친절하고 상냥하셨던 회계팀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서 더욱 든든했다.
지난 글에서의 석유화학 공장은 평소 내가 감사하던 회사가 아니라, 재고실사를 위해 처음 가본 회사였다. 재고실사 담당자를 배정할 때 가급적이면 평소 그 회사의 감사를 맡고 있는 사람을 배정하려고 하지만, 일정 상 낯선 회사의 실사를 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재고는 감사 대상이기 이전에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므로,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된다. 업종에 따라(재고자산의 종류와 수가 많을 경우) 소량의 분실이나 진부화 등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장부와 실제 재고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말 그대로 재고를 누군가 훔쳐갔거나, 횡령 등 부정적 목적을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장부를 조작했거나, 재고 관리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계팀과 물류팀에겐 재고실사가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제 막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병아리 회계사이지만, 나 역시 재고실사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었다. 넓은 창고를 뛰어다니며 실사를 해야 하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결의를 다지며 창고에 도착했다. 그리고 과장님께 전화를 드려 물류팀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무려 열다섯 분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맙소사...
SNS 중독자라 남겨둔 흔적이 많다. 다양한 흔적들 덕에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내어 수월하게 이런 글들을 쓰고 있다.
나는 다소 작고 왜소한 편이다. 지금은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얼굴에 포악함(?)도 붙었고 살도 쪘지만, 20대 초중반의 나는 마르고 작았고, 허여멀겋게 생긴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좀 만만하게 생겼던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회계사로서 나의 외모가 장점이 되었던 적도 많지만, 이 날 만큼은 큰 단점으로 느껴졌다. 평소 감사 때처럼 정장을 갖춰 입었다면 좀 더 나았을 텐데,운동화에 편한 복장이 나를더 어려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15대 1이라니... 물론 내가 오늘 이곳에 싸우러 온 것은 아니지만,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나 있을지 겁이 났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근무하던 당시 IFRS(국제회계기준)의 도입으로 감사기준과 절차가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회계사들에게는 매년 더욱 엄격한 감사절차가 요구되었다. 예컨대 A 재고자산의 개수가 1,000개라면, 작년엔 50개만 확인했지만 올해는 300개를 확인해야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그런 상황을 아무리 회사 담당자분들께 설명해도 돌아오는 것은 원망뿐이었다.
300개를 확인하겠다고 말씀드리면,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구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작년엔 이렇게 안 했는데요.", "이전에 오셨던 회계사님은 50개만 봤었는데요.", "다른 분들은 이렇게 하시던데요."라는 푸념이 줄줄이 쏟아졌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열다섯 분이 모두 일제히 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이러한 상황을 인차지(팀장) 선생님께 보고하니, 절차대로 하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다 세어봤고, 다 맞는 숫자인데 또 전부 확인하겠다는 회계사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혹여나 장부와 실제 재고가 맞지 않는다면, 창고를 뒤져 찾아내고, 다시 확인하고, 원인을 밝혀내는 등 귀찮은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나게 되니 더욱 그럴 것이다.
나도 그러한 회사 분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고, 집에 일찍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겨우 혼자 이곳에 나왔고, 내가 절차를 따르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해 부정을 잡아내지 못했을 때의 모든 문제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명색이 회계사인데, 안 본 것을 봤다고 하며, 거짓 조서를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칙이라 어쩔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본격적으로 실사를 하는데, 과장님 한 분이 유독 날이 서 있었다. 나는 주로 장부와 자료만을 사무실에서 봐왔기에 실제 재고의 모양이나 보관 방법은 잘 몰라 회사 담당자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하는 말마다 틱틱거렸다. 이건 어딨느냐 물으면, 거기 앞에 있지 않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식이었다.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었지만, 여기서 싸워봤자 이득 될 것이 없다 생각하여 꾹꾹 참았다.
다행히 재고실사에서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실사가 끝나니 얼추 퇴근시간이 다 되었고, 다 같이 회식을 하러 갈 건데 회계사님도 같이 가겠느냐 물으셨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거절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회사 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싶어 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문제의 그 과장님이 입을 열었다.
그 여자애 갔냐?
여기서 '그 여자애'는 당연히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한참 어린 나를, 내가 없는 곳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뭐가 문제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하루 종일 쌓인 게 있어서인지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그렇게나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내가 우리 팀에서 대표(?)로 오늘 실사에 나온 건데, 사사건건 퉁명스럽게 굴더니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자존심이 상했다. 마주해 있던 다른 한 분과 눈이 마주쳤고, 황급히 그분께 눈짓을 보내는 것이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술을 좀 했다. 뭐 대단하게 잘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싱싱한 간을 가지고 있었고, 웬만한 술 잘하는 남자들만큼은 너끈히 마셨다. 나름 악과 깡도 있어 술자리에서 술을 빼거나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넌지시 그분께 술을 좋아하시느냐 물었더니, 술을 즐기지 않고, 잘 못 마신다 대답하셨다.
오호라, 그래 너 잘 걸렸다. 내가 오늘 집에 가서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며 자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오늘 이 아저씨는 죽이고 가야겠다는 객기 어린 마음이 생겼다.
"저도 회식 껴주세요."
회사분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괘념치 않았다. 난 한 놈만 팰 거니까.
그때 객기 부리지 말고 집에 갔어야 했는데...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그분들은 모두 친하다는 사실. 회식 자리에서도 결국 나는 15대 1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고, 그렇게 그날 흑역사만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래도 회식 자리에서 결국은 그 분과 화해를 했다는 기록이 페이스북에 남아있더라.
소심한 나의 복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조금은 분하지만, 이 또한 추억이다. 그분이 잘 지내시는지, 그 회사는 요즘 어떤지 무척 궁금하다.
그 시절의 저는 늘 더 나이가 많아 보이고, 더 똑똑해 보이고, 더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클라이언트 분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날을 세우기도 했고요. 사실 더 융통성 있게 실사를 풀어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경험 부족과 자격지심이 그 과장님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어설펐지만, 그래도 그 시절 가졌던 날 것의 열정과 정제되지 않은 채 파닥거리던 감정들이 가끔 그립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