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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랑 Sep 02. 2022

주름을 어루다

-2018 동서문학상 맥심상 수상작

손가락의 주름을 쓰다듬고 있었다

주름 사이 어딘가 적혀있을 기억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 어느 주름 아래에 아주 작게 진동하는 푸른 핏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 꼭꼭 깨물어서

미지근한 살과 피로 덮인 마디마디의 뼈는 어떤 느낌인지

내 치아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만지던 입술의 주름이 몇 개였는지 기억해보고 있었다

지문과 주름들이 교차하며 어루고 이루는 그림을 펼쳐보고 있었다

동글고 여리고 오래된 지문들이

입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느린 애무를 하며 춤을 추었다


결결이 주름을 따라 쓰다듬어나가면

점자를 읽듯이 씌어진 기억들을 읽을 수 있었다

울음을 빼앗기던 밤들을 손가락들은 기록해두었다

행여 들키는 순간 뎅겅뎅겅 잘려나갈까 두려워

아주 잘게 기억들을 쪼개어 수많은 주름 사이사이에 숨겨 두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세월이 온몸 구석구석 새겨놓은 물결들이 일렁였다

또 다른 체온의 이야기들이 서로를 감싸 안았다

파도가 되고 따뜻한 바다가 되었다


손가락의 주름을 쓰다듬는다

우리의 기억들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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