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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랑 Mar 15. 2024

  천장이 높고 검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파도들이 반사해서 보내는 달빛에 반짝반짝 천장의 무늬가 보일 듯 어른거렸다. 하얀 조개껍질들로 만들어진 침대에 길게 누워 나는 그 높은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북이가 다정하고 축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런 거 몸에 지니고 있으면 위험하잖아.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그러니까 그냥 내게 맡겨. 그럼 안전해질 거야.”

  “여기 없다니까. 햇살에 말려야 해서 육지에 널어두었다고 몇 번을 말해.”

  “어디 뒀는지 말을 해 줘야 내가 잘 찾아서 보관하지 않겠어?”

  “그런 거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다며. 날카롭고 위험한 것이라 누가 가지고 있어도 위험해. 왜 네게 맡기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 등껍질을 봐. 얼마나 단단해? 내가 등껍질 아래 잘 숨겨두면 너도 다치지 않을 거야. 내가 잘 보관해 줄게.”

  

  나는 그의 등껍질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 줄 알았었지. 저 등껍질이 단단하고 견고해서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었지. 하지만 그 아래 숨겨진 당신의 속은 어찌나 여리고 약했던지. 꼭꼭 들어찬 당신의 여린 속살을 오롯이 지켜내는 것만이 그 등껍질의 역할이었지. 나까지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런 크기가 아니었어. 온통 굳은살 박인 내 살갗보다도 당신의 그 등껍질 속 덩어리는 너무도 연약해서 나까지 지켜 달라고 할 수가 없었어. 오히려 내 굳은살이 당신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지.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 당신을 지키려면 내가 웅크리고 내 굳은살들을 최대한 숨겨야 하는 줄로만 알았지.

  

  “토끼야, 나는 네가 너무 걱정이 돼. 너의 간이 너무 날카로워서 네 속에서 너를 찢어 놓을 것만 같아. 그러니 그냥 내게 맡겨놔. 내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을게.”

  “재주 있으면 찾아봐. 내 안에는 없다니까.”

  

  거북이는 조용히 한숨을 후 뱉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거북이가 열고 나간 그 문의 안쪽 고리에는 내가 매어둔 긴 끈이 늘어져 있었다. 저 끈이 이 주가 넘도록 저렇게 문고리에 묶여 늘어져 있지만, 저 문을 열고 닫으며 드나드는 거북이는 저 끈이 왜 저기에 묶여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저 문고리에 걸린 긴 끈을 문 위쪽으로 넘겨 나는 반대쪽에서 목을 맬 셈이었다. 그렇게 이 방에서 대롱대롱 길게 매달린 나를 거북이가 발견하길 바랐다. 당신이 나를, 결국 나를 죽였노라고. 이 길고 어둡고 깊고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결국 내가 나를 죽이게 만들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목을 매지 못했다. 거북이와 함께 이 방에 들어설 작은 아이가 있었다. 엄마의 늘어진 시체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는 숨을 쉬고 있는 엄마가 필요했다. 아이의 눈에는 이미 영혼이 죽은 몸뚱이라도 엄마가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저 끈의 끝에는 고리를 만들지 못했다.

거북이가 식사를 가져왔다.

 

  “이것 좀 먹어 봐. 먹고 기운을 좀 내.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접시 위에는 은빛의 물고기가 파닥파닥 아직 붙은 숨을 증명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어지럽다. 거북이는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드러내곤 했다. 내가 먹지 못하는 은빛 물고기, 조개, 새우 같은 것들. 죽은 것을 무서워하는 나를 위한다며 산 채로 잡아다 정갈하게 담아오는 이 바다의 생물들.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저것들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가 잡아온 생물들을 바다에 놓아주고 나는 짠 해초를 뜯어 조금씩 먹곤 했다. 그러면 늘 목이 탔다. 가끔 육지로 나가 물과 풀을 마음껏 먹다가 오곤 했다. 그러면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의 집으로 돌아오면 거북이가 아이를 안고서 수심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왜, 엄마이면서 아이를 네 생의 일 순위에 놓지 않니? 라고 묻곤 했다. 살고 싶어서 그래. 이렇게라도 다녀와야 내가 좀 살 것 같아서 그래. 울며 애원하면 그제야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처음 이곳으로 올 때, 거북이가 만들어 놓은 통로는 아주 넓고 튼튼해 보였다. 육지와 바다의 집을 잇는 그 통로에서는 숨을 쉬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우린 자주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거북이는 육지 생물인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와 그의 등껍질이 듬직했다. 저이와 함께라면, 저 깊고 검푸른 바닷속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든든하게 나를 지켜 줄 저 등껍질이면, 육지와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수고로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토끼들이 내게 경고했다. 너는 바다생물이 아니야. 어떻게 토끼가 바닷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저이가 만들어 놓은 저 멋진 통로를 봐. 나 아니라 어떤 토끼라도 저 바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걸. 나는 그렇게 사랑과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로 이곳에 왔다.


  한동안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거북이는 우리가 비슷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며 기뻐했다. 나는 다른 토끼들과는 좀 다르게 이가 약하고 짧아 딱딱한 줄기류를 먹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도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싫어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같은 식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았지만, 그가 그렇게 좋게 생각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육지와 바다를 들락거리며 분주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그는 주로 바다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햇살을 받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풀숲을 다니는 것이 좋았다. 햇살을 듬뿍 받고 뛰어다니다 바다의 집에 돌아오면, 느릿느릿 그가 마중을 나와 나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했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듣곤 했다.


  어느 날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육지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아이를 갖는 것을 조금 더 미루길 원했지만, 그와 그의 어머니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바다의 집에 왔으니 바다의 자손을 낳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에게 눈물로 호소했지만 그는 어머니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이해한다는 말로 정작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몸을 통해 아이가 태어나는데, 내가 내 몸에 대한 의견을 갖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했다. 육지에 가서 몇몇 친구들에게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조언을 구했지만, 싸늘한 대답이 이어졌다. 바다로 가면 그렇게 될 거라고 경고했잖아. 알고 간 거 아냐? 그럼 돌아오던가.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거북이를 사랑했다. 그와 이제 겨우 만들어가기 시작한 우리의 삶을 여기서 팽개치고 나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에 대한 결정을 왜 그들이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바다의 집에 올 때, 나와 거북이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리라 믿고 왔는데, 어째서 내 몸을 찢고 생명이 나오는 일에 대해 내가 의견을 갖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어른들이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먼 옛날 바다 용왕이 아파 그에게 줄 약으로 토끼의 간을 가지러 온 거북이가 있었노라고. 그런데 간을 육지에 널어두고 와서 돌아가야 한다고 지혜롭게 이야기해서 그 토끼는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었다고. 그 토끼와 거북이도 사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거북이에게 내어줄 무언가가 없어서 그 토끼와 거북이는 결국 헤어져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없이 슬픈 이야기로 끝낼 수 없어서 그렇게 각색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조용히 배를 만져보았다. 여기 어디쯤이 간이라던가. 손끝에 볼록한 뭔가가 만져졌다.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뭔가가 그렇게 안에 있었다.


  아이가 생겼다.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어떤 슬픈 기운도 스며들지 않길 바랐다. 바다의 낮과 밤은 육지와는 달리 너무도 어둡고 축축했다. 나는 종종 육지로 나가 나무를 주워왔다. 튼튼하지 않은 이로 열심히 나무를 갉아 나무 인형들을 만들었다. 나무 냄새를 맡으며, 나무뿌리에 붙은 흙냄새를 맡으며, 나뭇결 사이사이에 배인 바람 냄새를 맡으며 부지런히 갉아 인형을 만들고 있노라면, 육지로 가고 싶은 갈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인형들은 제법 예쁜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육지와 바다의 친구들은 내가 만든 인형들을 좋아했다. 너는 참 재주가 좋구나. 아이에게 이런 것도 만들어 줄 줄 알고, 너 참 좋은 엄마구나.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가? 내가 좋은 엄마인가……? 나는 그저 살고 싶어서 이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이 인형들을 보며 이곳에 혼자 있는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랐는데.


  몸이 부풀어 올라 육지로 나가는 통로는 내게 너무 좁았다. 겨우겨우 비집고 나가더라도 나무를 주워오기에는 이제 힘이 부쳤다. 거북이는 이런 나를 안쓰러워하며 나무를 주워다 주기도 했다. 그러면 부푼 앞다리로 나무를 붙들고 끌어안고 한참 육지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다시 나무를 갉아댔다. 그렇게 나는 아름다운 인형을 조각해 내곤 했다. 예쁜 결과물을 하나라도 만들어내고 나면 그제야 조금 갈증이 가셨다. 나무냄새를 그렇게 한창 들이키고 나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천사 같은 아이는 한편으로는 지옥에서 온 것 마냥 울어댔다. 아이는 나를 다 내어주어야 안심하고 방긋방긋 웃었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주어야 했고, 그런 아이를 생존하게 하기 위해 나는 바다의 음식이라도 꾸역꾸역 먹어서 젖을 돌게 하고 아이에게 먹여야 했다. 아이는 육지 생물인 나와 바다생물인 거북이를 모두 닮아 다행히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로 자랐다.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 동안 나는 육지에 거의 나가보지 못했다. 늘 축축한 털 속의 얇은 피부는 염증으로 아프고 가려웠다. 거북이가 이런저런 좋다는 약을 계속 구해다 주었지만, 피부는 낫지 않고 속으로 곪아 들어 썩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를 거북이에게 맡겨 두고 육지로 나섰다. 따뜻한 햇살에 좀 말리면 몸이 좀 나아질 것만 같았다. 길을 나서며 보니, 육지와 바다의 집을 이어주는 통로가 그새 좀 낡아 보였다. 이상하게 좀 좁아지기도 했다. 군데군데 금이 간 듯한 모습도 보였다. 조금 불안했다. 그래도 이 길을 늘 사랑했던 기억이 났다. 이 길을 나설 때면 그리운 육지로 가는 단단한 통로를 만들어 준 거북이가 늘 자랑스럽게 느껴졌었다. 이 길을 통해 바다의 집으로 돌아올 때면, 통로의 벽면 곳곳에 있는 그의 흔적들을 살피며 그가 그리워 길을 재촉하곤 했었다.


  통로를 벗어나자 햇살이 쏟아졌다. 축축했던 털이 금세 보드랍게 부풀어 올랐다. 몸을 한껏 말고 털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수 있게 웅크렸다. 고운 햇살이 내리고 따뜻한 바람이 쓰다듬는 것을 온몸의 털들이 한 올 한 올 벅차게 느끼고 있었다. 행복했다. 검붉게 썩어가던 피부가 한결 편해졌다. 풀밭 위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있었다. 햇살이 간질간질 배를 만져왔다. 나는 배에 손을 얹었다.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면서 잊고 있었던, 그 어딘가에 볼록하게 만져졌던 것이 더 단단하고 볼록하게 올라와 있었다. 이게 뭐지? 의아함은 금세 지나가고 햇살이 내린 따뜻함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음이 터졌다.


  토끼의 끼잉 끼잉 대는 울음은 누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도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 작은 울음소리도 듣고서 느린 걸음으로 부지런히 오던 거북이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울음소리가 아무리 커져도 그는 코를 골며 잠을 자곤 했다. 잠든 그의 머리맡에 앉아 끼잉 끼잉 울음을 흘리고 있다 보면 바다의 밤이 너무도 깊고 추웠다. 온몸에 쌓여 온 그 한기가 울음으로 쏟아져 내리는지 한참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햇살이 구석구석 몸에 파고들었다. 이제야 좀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폐 속에 따뜻하고 바삭바삭한 햇살이 들어차는 것만 같았다.

  

  며칠 동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먹고, 햇살과 바람을 충분히 쏘이며 뛰어다녔더니 곪아든 피부도 많이 나았다. 털의 윤기가 반짝반짝 빛을 되찾았다. 거북이와 사랑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늘 축축함을 유지해야 하는 자신의 피부와 달리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내 털을 보며 그는 나를 아름답게 여기고 사랑해 주곤 했다. 나도 그를 사랑했다.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작은 토끼인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포용력을 가진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그 통로를 만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커다란 마음을 가진 이와 평생 할 수 있겠다는 기쁨에 벅차고 감사했다.


  며칠이 지나 바다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통로가 나올 때보다 더 좁게 느껴졌다. 내가 몸이 더 커진 것인지, 이 길이 좁아졌는지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나갈 때 보았던 벽의 금이 조금 더 벌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들어서니, 거북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어두운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보이네.”

  “응. 나 이제 많이 나아졌어.”

  “그래. 나아졌다니 다행이네. 앞으로는 애 엄마가 이렇게 집을 오래 비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갑게 뱉는 그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거북아, 내가 나으려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큼 자주 육지로 오가야 할 것 같아. 저 통로도 보수를 해야 할 것 같고……. 군데군데 금이 가 보이는 것 같았거든. 그리고 왜 길이 훨씬 좁아진 것 같이 느껴질까?”

  “그 길, 보수하지 않으면 계속 줄어들 거야. 바다가 깊어서 압력이 아무래도 있으니까. 좁겠지만 당신이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다시 고쳐주면 안 돼? 위험해 보였어.”

  “모르겠네. 나는 우리 아이를 돌보는 게 우선이라, 당신처럼 밖에 나가서 햇살 쬐는 게 우선인 이를 위해서 그 길을 고쳐줄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아.”

  “거북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내가 놀러나간 게 아니고, 아파서 요양하러 간 거잖아. 그리고 다 나은 것도 아니고, 아이랑 당신이 보고 싶어 돌아온 건데, 어떻게 내가 하릴없이 놀다 온 것처럼 취급을 해?”

  “피부 좀 곪아 들어갔기로서니……. 그러다 죽진 않잖아. 그러다 우리 거북이 같은 피부가 될지도 몰라. 제법 오래 살았으니 체질도 바뀌지 않을까?”

  “토끼는 피부병으로도 죽어. 토끼는 놀라서도 죽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도 죽어. 당신이 우리의 삶을 알아?”

  “난 당신이 너무 예민한 것 같아. 왜 당신한테는 등껍질 같은 게 없지? 좀 만들어보면 어때?”

  “내가 토끼인데 등껍질을 어떻게 만들어!”


  너무도 차가운 거북이의 반응에 놀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끼잉 끼잉. 끼잉 끼잉. 거북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아빠랑 저기 가서 놀자.

  

  밤새 끼잉 끼잉 울어대는 나를 두고, 거북이는 내가 투명한 존재이기라도 한 양 아이와 웃고, 놀고, 잠이 들었다. 긴 바다의 밤이 깊어갔다.

  

  잠든 거북이와 아이의 머리맡에 앉았다. 아이의 이마와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너무 고단했다. 다시금 숨을 쉬는 게 어려웠다. 축축한 바다 냄새가 폐 속으로 스며 속이 온통 짠 느낌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짠 물과, 바람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짠 해초를 뜯어먹으며 허기를 견디고 싶지 않았다. 벌써 고파오는 배를 어루만졌다. 딱딱하고 볼록 솟은 무언가가 또 잡혔다. 이게 뭘까. 뭔가가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건가.


  방으로 돌아와 주워 온 나무를 갉았다. 원래도 약했던 이가 아이를 낳고 나서 더 약해졌다. 바닷속에서 계속 생활하며 몸이 더 많이 약해졌는지 이도 더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허겁지겁 나무냄새와 흙냄새를 들이키며 나무를 갉았다. 그렇게 해야 이 추운 바다의 밤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렇게 나무 인형을 만들었다.

  

  아침이 왔다. 기운이 없는 나는 힘없이 늘어져 잠을 잤다. 거북이는 물고기와 새우들을 잡아다 주었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먹을 수도 없었고, 더 이상 해초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거북이가 아이와 바다로 나갔다. 나는 일어나 육지로 나섰다. 배가 고파서 육지로 가야 했다. 살갗이 찢어지는 것같이 아파서 육지로 가야 했다. 햇살을 담뿍 받고, 바람도 맞고, 보드랍고 바삭거리는 풀잎들을 뜯어야 했다. 육지에 도착해서는 닥치는 대로 풀을 뜯었다.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또 언제 먹게 될지 모른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그늘 아래서 쉬기도 해야 하는데 햇살 아래를 벗어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해가 든 자리만 다니며 풀을 쉬지 않고 뜯다가 바다의 집으로 향했다.

  

  통로가 더 좁게 느껴졌다.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통로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몸을 밀어대며 집으로 향했다. 통로의 중간까지 들어왔는데 지난번에 유독 눈에 띄던 벽의 금이 이제 더 깊게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씩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위험했다. 주변의 작은 돌조각들을 그 균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전혀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거북이가 더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말도 하지 않고 육지에 다녀온 거야?”

  “너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어. 배도 너무 고팠고.”

  “왜 아직까지도 바다의 음식에 적응을 못하는 거야?”

  “거북아……. 나는 토끼야……. 물고기나 새우를 먹으면서 살 수가 없어.”

  “해초도 있잖아.”

  “계속 어떻게 그렇게 살아. 나는 육지의 동물이야. 해초를 먹으면 속이 너무 타고 아파.”

  “애 엄마가 되어서 왜 그렇게 강하질 못해?”

  “거북아……. 내가 우선 살아야 하잖아……. 애 엄마도 우선 살아야 하잖아……. 내가 이 바다에서 오래 살 수가 없는걸 어떡해.”

  “애가 너의 생에 우선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고 봐. 어떻게든 바다의 삶에 익숙해지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당신은 바다와 육지에서 다 살 수 있잖아. 왜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게 안 보여?”

  “당신은 멀쩡히 육지를 오가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잖아. 죽어가긴 누가 죽어간다는 거야.”


  차가운 말들을 뱉어내고 거북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허탈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내 머릿속으로 통로의 균열들이 떠올랐다. 고쳐달라고 이야기도 못했는데……. 통로가 부서지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육지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피부가 곪아 썩어 들어가다가 죽는 걸까. 더 이상 육지의 보송보송한 햇살과 바람을 만지지 못하고 검고 푸르고 깊은 이 바닷속에서 죽은 토끼가 되는 걸까.

  

  절망이 휘몰아쳤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짝이는 은빛 물고기를 접시에 담아 올 그가 두려웠다. 나무인형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모아둔 주머니로 향했다. 주머니 입구를 묶어두기 위해 육지에서 주워 온 긴 끈이 있었다. 끈을 문고리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 끈 한쪽을 물고 깡충깡충 돌을 타고 올라가 문고리 위로 넘어섰다. 길이를 재어보니 이제 끝에 고리를 만들면 거기에 목을 매고 나는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로웠다. 깊은 이 바닷물보다 더 차고 어두운 외로움이 목 끝으로 찰랑찰랑 차올랐다. 세상에 그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고 뿌듯했는데, 우리의 두 세계는 저 통로를 통해 이어지고 아름답게 어우러질 거라고 믿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축축한 끈의 끝을 발톱으로 만지며 끼잉 끼잉 울었다. 내가 이렇게 목을 매고 길게 늘어진 토끼로 죽으면, 저 작고 어여쁜 아이가 이 무서운 풍경을 보게 되겠지. 살아있는 엄마의 몸에도 영혼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있어 주어야 하는 거겠지. 너무도 외롭고 고단했다. 뱉어내는 울음에 차가운 한숨이 섞여 방 안에 한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언제나 너무도 추웠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다 자다 깨다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얀 조개껍질로 만든 올록볼록하고 아름다운 차가운 침대 위에서 나는 그저 눈만 껌뻑이며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거북이는 내게 뭐든 가져와 먹여보려고 했지만, 정작 내가 필요한 것은 가져다주지 않았다. 끼잉 끼잉 우는 나를 달래는 것도 할 줄 몰랐고, 달래려다 언성이 높아져 싸우기 일쑤였다. 싸울 기운도 없었지만, 뭐라도 먹으면 그 기운으로 다시 내가 목을 매려 들까 두려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서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털이 빠지고, 피부의 염증은 심해져 진물이 흐르고 더 심하게 썩어 들어갔다. 나는 이대로 죽는구나. 죽어가는구나. 그래, 목을 맨 시체를 보는 것보다는 병든 엄마로 죽는 것이 아이에게도 차라리 나을까.


  거북이와 아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친 몸을 끌고 육지로 향했다. 그새 내 몸은 너무 야위고 작아져서, 좁아진 통로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예전에 확인했던 통로 벽의 균열은 더 크게 벌어져서 물이 졸졸 새고 있었다. 이곳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까. 숨이 차 헉헉대며 겨우 밖으로 나왔다. 더 걸을 기운도 없어 그냥 땅을 밟자마자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결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소스라치게 놀라 깼더니 웬 늙은 토끼 하나와 더 늙어 보이는 거북이 하나가 나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다.


  “누구세요?”

  “그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겠니?”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죠?”


  늙은 토끼는 쓸쓸한 눈빛으로 앞다리를 뻗어 조심스레 내 배를 만졌다.


  “점점…… 커질 게야. 그러면 날카롭게 찢고 나오겠지.”

  “이게 뭔지 아세요?”

  “그럼. 알고말고. 그건 네 간이야, 간.”

  “간이 왜 딱딱하게 커지고 있는 거예요?”

  “너의 고통을 더 이상 녹여내지 못 해서야. 결국 너를 찢고 나올 게다.”

  “그럼 죽나요?”

  “그럼 살겠니? 나도 살아야 해서 저 바다에서 나온 거야.”


  곁에 있던 늙은 거북이가 끄덕끄덕한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나? 너희가 아마도 용왕의 수하로 알고 있는 그 거북이가 나일 게다. 용왕에게 간을 바쳐야 해서 토끼를 꼬드겨 바다로 데려간 그 거북이 말이지.”


  늙은 토끼와 거북이는 큭큭 대며 웃기 시작했다. 이들은 몇백 년을 살아온 걸까. 그들은 고통을 극복하고 육지로 와서 함께 살고 있는 걸까. 묻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왔다. 숨이 막혀온다. 뱃속이 찢어지는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허겁지겁 주변의 풀들을 뜯어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바다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어야 고통이 덜했다. 어서 집으로 가서 아이를 안고 싶었다. 풀을 좀 뜯었다고 그새 조금 좁게 느껴지는 통로를 비집고 들어와 집으로 왔다. 아직 거북이와 아이는 집에 오지 않았다. 배를 만져보니 풀을 먹어 좀 부풀어 올라 딱딱한 간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왠지 마음이 좀 놓였다.


  거북이가 돌아왔다.


  “당신, 요즘 몸이 좀 이상하지 않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잘 때 우연히 봤어. 걱정이 되어서 주변에 좀 물어봤지.”

  “주변에서 뭐라고 해?”

  “아주 드물게 우리처럼 육지의 생물과 바다의 생물이 함께 사는 경우 그런 문제가 있다고, 그 간을 몸속에서 빼내면 나을 거라는군.”

  “그걸 말이라고 지금 하는 거야?”

  “그냥 몸을 찢고 나오게 되면 정말 위험하다고 들었어. 그러니 경험 많은 거북이 의사를 찾아서 수술을 하는 게 어떨까?”

  “당신은 나를 낫게 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나씩 내 몸을 없애고 죽여갈 셈이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간으로 끝날 것 같아? 간을 없애고 나면, 몸의 다른 부분들이 하나씩 내 고통을 녹여내지 못해 또 딱딱하게 굳어가고 날카로워지겠지.”

  “아닐 거야. 당신 바다 생활에 많이 적응했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당신은 나에 대해서 도대체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어?”


  화가 난 거북이는 나가버렸다. 남겨진 나는 겁먹은 아이를 안고 끼잉 끼잉 울었다. 이 생은 왜 꿈이 아닐까. 왜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닐까. 내 간은, 도대체 왜 저이의 사랑을 받아내지 못하고 이 바다를 견뎌내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육지 생물인 걸까. 왜 나는 저이가 원하는 이가 되지 못하는가. 서러움을 쏟아내며 하염없이 끼잉 끼잉 울었다.

  밤이 깊었다. 천장은 높고 검었다. 거북이는 식사를 두고 나갔다. 그 등껍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작게 숨을 뱉었다. 한숨도 크게 쉬어지지 않을 만큼 이제 이곳의 모든 공기는 탁하고 습했다.


  반짝거리던 나를 사랑했던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 지금도 내가 반짝거리기를 바란다는 당신은 왜 이 바다에서 나를 풀어주지 않는 걸까. 자유롭게 햇살을 받으며 깡충거리던 나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 왜 당신은 내가 아니라 바다의 자손을 낳고 기르는 아이 엄마만 찾는 걸까. 당신이 사랑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누우니 딱딱하고 한층 더 날카로워진 간이 볼록 솟아오른 게 보였다. 더 딱딱하고 날카로워지면 이게 배를 찢고 나온단 말인가. 그때는 죽을 수 있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북이인가 싶어 그냥 눈을 감았다. 울고 있는 나를 그저 차갑게 바라보고 나갈 그가 무서워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조용하고 잰 발걸음이 가까워왔다. 이건 거북이의 발걸음이 아니다. 눈을 천천히 떴다.


  엄마를 부르며 내 천사 같은 아이가 서 있다. 손에 든 뭔가를 내민다. 몸을 일으켜 아이가 내미는 것을 받아들었다. 방금 주워 온 듯한, 흙이 잔뜩 묻은 나뭇조각. 온몸의 감각이 죽어있다가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갑자기 훅 하고 느껴졌다. 울음이 터져 올랐다. 아이를 안고 끼잉 끼잉 울었다. 아이가 눈물을 닦아주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 우지마. 엄마, 우지마. 내가 있으니까, 다 괜찮아.”

  “응. 아가야. 엄마 안 울게. 우리 아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안 울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폐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아 벅찬 눈물이 흐른다. 내 아이가 이만큼 컸구나. 육지와 바다를 오고 갈 수 있을 만큼 자랐구나. 엄마에게 나무를 주워다 줄 수 있을 만큼 이제 많이 컸구나.


  내가 만든 나무 인형들이 빼곡하게 가득한 아이의 방에서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잠을 재웠다. 늘 아이에게 육지와 바다의 이야기를 섞은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아이는 엄마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결말로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작던 아이가 무럭무럭 많이 자랐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살핀다. 엄마보다는 강한 이를 가졌고, 엄마에게는 없는 등껍질도 가졌고, 육지와 바다의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으니 너는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겠지. 너의 아빠는 이제 내가 아닌 너를 가장 많이 사랑하니, 너를 위해 필요하다면 저 통로를 다시 넓히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겠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거북이의 방에 가서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지친 몸을 끌고 빈손으로, 육지로 향하는 통로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통로 앞에 서서 보니 길이 더 좁아졌다. 벽의 균열은 더 벌어져 이제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나가지 못하면, 다시는 햇살을 맞이할 수 없겠지. 나는, 살아있는 엄마로 있을 수가 없겠지. 아가, 엄마는 살아야겠어. 너는 헤엄도 칠 수 있고, 이 통로가 없어도 엄마에게 올 수 있겠지만, 엄마는 아빠가 만들어 준 이 길이 아니면 올 수도, 갈 수도 없어. 아가, 엄마는 살아야겠어. 나는 토끼야. 육지에서 살아야 하는 토끼야.


  걷는다. 외롭지만 걸었다. 햇살에 널어둔 내 간을 찾으러 가려면 걸어야지. 내 뱃속의 이것이 날카롭게 나를 찢고 뚫고 나오기 전에, 살아 있어야 내 아이와 저 흙냄새, 나무냄새를 같이 맡지. 어서 가자. 그가 나를 사랑해서 만든 이 길이 다 무너져 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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