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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Jan 17. 2021

아가야 방 빼주라

D-5

이제 예정일이 일주일도 남았다. 34주 차부터 아가가 큰 편이란 소리를 들어 일찍 낳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39주도 넘어버렸다.


37주 5일 차 검진에서 아가 머리가 아래에 있어 제왕절개를 취소하고 자연분만을 기다리기로 했었다. 덕분에 이제 아가를 만날 날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예정일이 있긴 지만, 예정일 전에 만날지, 아니면 그 이상 더 기다려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 진통이 먼저 올지, 이슬이 먼저 비칠지, 양수가 먼저 샐지 전혀 알 수 없는 쫄깃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37주 차 진료 결과 아가가 저번 주보다 많이 커진 상태였다. 내가 0.5kg이 찌는 동안 아가가 0.4kg나 커졌다고 했다. (막달 평균 주당 증가량은 0.2~0.3kg이다) 절대 수치도 3.4kg라서 작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아가를 만나고 싶은데, 야속하게도 전혀 나올 기미가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초산은 원래 느리니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아가가 좀 큰 편이니 이번 주엔 운동을 열심히 해보자 하셨다.


앞으로 더 많이 걷고 더 건강하게 먹어야겠다 다짐하던 그날 저녁, 돌연 거센 눈발이 날렸다. 삽시간에 겨울왕국으로 변해버린 풍경에 어찌 산책을 다니나 걱정이 되면서도 또 철없이 마음이 설렜다. 저녁에 남편을 끌고 나가보니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여 하얀색이었다. 얼마만의 눈다운 눈인지! 설이야, 네 태명 따라 눈이 이렇게 오나보다. 너도 곧 와줄 거지?


설렘도 잠시, 다음날부터 한파가 닥쳐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원래 멀쩡한 길에서도 툭하면 넘어지고 다치는 탓에 녹지도 않은 눈밭을 걸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산책을 고집한 나 자신을 오래도록 원망할 게 뻔했다. 눈 때문에 며칠간 산책을 못하니 아무리 짐볼을 타고 요가를 해도 야금야금 몸무게가 늘었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게 다 아가 몸무게가 될까 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들 이슬도 보고 진통도 걸린다는데, 나보다 일수가 덜 된 엄마들도 아가를 낳고 있는데, 우리 아가는 태동만 활발하고 여태 아무 신호를 주지 않았다. 점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예정일에 맞춰 낳고 싶다고 생각한 게 겨우 한 달 전이었는데, 38주 차에 이렇게 조바심이 난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38주 5일 검진 날, 결국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잠을 설쳤다. 불면증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자는 요즘이긴 했지만 악몽 때문에 깨는 건 처음이었다. 몸무게도 며칠 사이 갑자기 훅 불어나 걱정을 가중시켰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내진을 먼저 했는데, 골반 입구가 조금 좁은 편이고, 아가가 조금 내려와 있다고 했다. 그러고 초음파를 보는데, 어라? 아가 몸무게가 3.35kg으로 오히려 저번 주보다 약간 적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저번 주보다 아가 크기가 오히려 작아졌다고, 문제가 있는 거냐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은 덤덤하게 아기 위치에 따라 측정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정도 차이는 오차범위 내라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아가 크기가 많이 크지는 않은데 골반 입구가 좁아 자연분만 성공 여부는 당일 되어봐야 알 거 같다고 했다.


갑자기 긴장이 탁 풀렸다. 지난 한 주 내내 아기가 너무 클까 걱정했던 건 다 뭐였나 싶으면서도 다행이었다. 이번 초음파도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매번 3주 가깝게 크던 머리도 이제 주차에 딱 맞았고, 엄마가 먹는 당에 영향을 받는다던 배 둘레도 적당했다. 입덧 때부터 그러더니 아가가 아주 밀당의 귀재였다.


그리고 39주 2일째인 오늘, 아직까지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38주 차 검진 이후로 날이 풀려 산책도 다니고 계단도 오르고 짐볼도 타고 있는데, 진통은 커녕 흔히들 이슬이라고 말하는 피 비침도 한번 없었다.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몰라 하루 한 끼는 마지막 만찬처럼 먹는 탓에, 살도 부쩍 오르는 중이다.


41주가 지나면 태반이 제대로 영양공급을 못하기 때문에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유도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어떻게든 아가를 꺼내야 한다. 유도분만은 아무래도 자연적으로 진통이 걸리는 것보다 난산의 확률이 조금 더 높고, 그렇다 보니 응급 제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유도를 하느니 제왕을 하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막상 예정일이 다가오니 또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이런 고민이 들지 않게 아가가 먼저 신호를 보내주면 좋을 텐데, 하고 다시 도돌이표처럼 생각이 처음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초조해지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게 참 맘처럼 쉽지가 않다. 자연 진통이 와도 응급 제왕을 할 수도 있는 게 출산이란 걸 알면서도, 자연진통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산'을 자꾸 기대하게 된다. 기왕이면 가장 덜 아프게, 가장 후유증 없이 아가를 낳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내가 노력해서 바뀌는 게 별로 없어서인지,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간절해진다.


막상 나오고 나면 뱃속에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겠지? 그래도 좋으니 이제 그만 애태우고 방 빼주라. 엄마 아빠가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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