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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12. 2022

출산 후 4박 5일

둘째 출산을 앞두고, 첫째 때의 일기를 뒤져보았다. 당시에는 마음에 안 차서 발행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보니 날것의 묘미가 있는 거 같다. 이걸 다시 해야 한다니... 믿고 싶지 않다.




제왕을 한 탓에 병원에서 4박 5일이나 지내야 했다. 사실 저녁 늦게 아이를 출산하고 입원한 탓에 실제로 있던 시간은 매우 짧았던 거 같긴 하다.


첫째 날,

수술 후처치가 끝나고 의식을 찾은 게 오후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2시간 동안 참 많은 후유증을 경험했다.


- 갈증: 수술 후 깨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목이 너무 마르다는 거였다. 침도 나오지 않아 입안이 바짝 마른 탓에 입을 다물기도 어려웠다. 물 묻힌 거즈로 입술을 적셔봤는데 택도 없었다.


- 오한: 수술 전부터 바들바들 떨리던 몸은 여전했다. 수술하는 동안 피를 너무 쏟아서인지, 아니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이 너무 떨리던 탓에 혈압을 재기도 어려워서 간호사님들이 온갖 장비를 가져와 고군분투했다. 벌벌 떨리던 몸은 한 시간 후에나 진정되었다.


- 미열: 수술 후유증으로 한동안 37도 이하로 안 떨어졌다.


- 오로: 출산 후에는 오로가 계속 나오는데, 소변줄 때문에 거동이 어렵고 속옷을 입을 수 없어 엉덩이 아래 오로용 패드를 깔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내 손으로 갈 수 없어 간호사님과 남편의 도움이 필수다.


- 소변줄: 제왕의 치명적 단점 중 하나다. 그나마 수술을 일찍 하면 소변줄을 둘째 날 낮 12시에 뺄 수 있어 일찍 거동이 가능한데, 나는 저녁 늦게 수술을 한 터라 꼼짝없이 이틀 밤을 견뎌야 했다. 이틀 밤이 지날 때쯤엔 내 몸이 너무 더럽단 생각에 관장과 내진으로도 흔들리지 않았던 멘털이 부서질 뻔했다.


- 페인 부스터와 무통 약: 아플 때마다 파란색 버튼을 누르라해서 조금만 통증이 온다 싶으면 바들거리는 두 손으로 계속 눌렀다. 모든 게 마비된 탓인지 약이 들어오는 기분도 안 들었지만, 덕분이었는지 첫날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둘째 날,

갈증과 오한은 해결되었지만, 미열은 여전했다. 계속 37도가 넘었고, 원래 저혈압이라 110을 넘긴 적 없는 혈압도 130까지 오르기 일쑤였다. 간호사님들이 시간마다 찾아와 항생제와 진통제를 놔준 덕에 복부 통증이 심하진 않았다. 대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 나는 왜 자연 분만을 못했을까; '응급 제왕'이라는 나의 분만 과정이 자꾸 '실패'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진통이 허리로 와서 누워있기도 힘든데, 병원 입원을 5일이나 해야 하고 회복도 느리다는 제왕의 단점도 견뎌야 한다는 게 못내 억울했다. 이제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지 못한 길에 질척 질척 미련이 남았다.


- 신생아 면회: 출산 후 둘째 날부터 신생아실에서 유리창 너머 잠깐의 면회만 허락됐는데, 소변줄을 못 뺀 탓에 아가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수술할 때도 수면마취를 선택해 아가를 못 봤는데, 2일 차에도 볼 수 없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사방에서 축하 연락이 오는데, 막상 나는 아가를 사진으로 본 게 다였다.


- 제발 씻고 싶다: 2일 동안 못 감은 머리, 허리와 허벅지 부근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소독약, 끊임없는 오로...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런 생각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아기 출생 이후 신청해야 할 항목들을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 출생신고/출산지원금/영아 수당 등: 남편이 동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한 번에 해결했다. 온라인으로도 전부 처리 가능하긴 한데, 집에 다녀올 일이 있어 겸사겸사 처리했다. 전기세 감면은 한전에 별도 신청해야 한다고 한다.


- 어린이집 입소대기: 주민번호를 받자마자 한 일은 어린이집 입소대기였다. 어린이집이 그렇게 급하지는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혹여나 나중에 들어가야 할 때 못 들어갈까 봐 우선 신청해두었다. 역시나 한참을 대기해야 했다.


- 신생아 검사: 난청검사와 대사이상 검사는 국가에서 무료로 지원해주고, 혈액형 검사는 5천 원이다. 기타 추가 항목은 병원마다 다른데, 내가 있던 병원에서 유료 항목으로 검사 가능 한 건 유전자 검사/망막검사/윌슨 검사 이렇게 3가지였다. 나는 다 안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이 찜찜하다 하여 망막검사와 윌슨 검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했다. 난청 검사는 퇴소 시 바로 결과가 나오고, 그 외는 2~3주 뒤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셋째 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셋째 날이었다. 소변줄도 뽑을 수 있고 아가도 볼 수 있는! 새벽에 소변줄과 페인 부스터를 떼고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또 몸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겨우 소변을 보고 (이때도 아프다) 남편 도움을 받아 수술 부위에 물이 안 들어가게 노력하며 몸을 닦아냈다. 대충이라도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 패드를 갈고 앉으니 인간의 존엄을 회복한 느낌이었다.


- 걷기: 회복을 위해서는 많이 걸으라고 했다. 무통 약이 내일이면 끝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전에 부지런히 걸어둬야 했다. 처음엔 허리를 피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져서 저녁쯤엔 간단한 거동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남편이 하룻밤 집에서 자고 왔다.


- 몸무게: 아가가 3.5kg였는데, 나는 고작 1kg만 빠져있었다. 깜짝 놀라 맘 카페를 뒤져보니  출산 직후에는 붓기 때문에 원래 아기 무게만큼 빠지지 않으며, 오히려 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사실 이 날 출산 후 처음으로 내 몸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바람 빠진 공 같은 배, 쪼그라든 빨간 튼 살, 소독약으로 범벅이 된 배와 허벅지, 피지도 못하는 허리, 초췌한 얼굴. 차라리 임신 시절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 모자동실: 오전 11시, 드디어 내가 낳은 아가 실물을 처음으로 영접했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귀여웠다. 물론 이게 뱃속에 들어있었다 생각하면 절대 작지 않은 크기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모유수유도 시도해봤는데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결국 분유 수유를 했다. 몸이 성치 않은 나를 대신해서 남편이 먹였는데, 스푼에 담긴 분유를 꼴딱 넘기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아가가 귀엽긴 했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출산 후 2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탓에 이게 정말 내 아기라는 실감도 나지 않고, 모성애가 샘솟지도 않았다. 남편은 아가가 너무 예쁘다며 난리였지만, 그냥 아기는 원래 이렇게 생긴 거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밤에 잠을 설친 탓에 아기가 옆에서 빼액 우는데도 몇 시간을 내리 잤다. 혼자 2시간 동안 고군분투한 남편은 나중에 부스스 일어나는 날 보며 혀를 내둘렀더랬다.



넷째 날,

드디어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조리원에 자리가 없어 병원에서 2일 밤을 더 묵을 뻔했는데, 넷째 날 오전 원래 일정대로 들어와도 된다는 소식을 들어 너무 신났다. 병원 침대에서 자는 게 슬슬 허리가 아파오던 차였다.


- 몸 상태: 걷는 게 한결 수월해지만, 여전히 빨리는 걷기 어려웠다. 걷는 것보단 일어나고 앉고, 눕는 동작이 훨씬 힘들었다. 골반이고 허리고 등이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밥 먹을 때면 배에 미묘한 통증이 왔고, 재채기나 기침은 아예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 모자동실: 오전 모자동실 시간에 만난 아가는 눈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이전에 신청한 망막검사 탓이었다. 3시간 정도 모자동실이 가능한데, 남편과 나 모두 지쳐있어 3시간을 채우지는 못했다. 오후 낮잠을 자고, 저녁 먹고 저녁 모자동실을 하려고 가니 6시가 넘었다며 안 된다고 해 좌절했다. 6시 반에 아주 잠깐의 면회가 허락됐는데 너무 짧아서 감질맛이 났다.  부기가 가라앉은 우리 딸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 퇴원 전 진료: 내일 오전이면 퇴원을 해야 해서 목요일 저녁 퇴원 전 진료를 봤다. 수술 부위를 한 번 확인하고, 자궁 내 피고임 등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는 간단한 진료였다. 수술 부위에 땀 차지 않게 하라고 하셔서, 옛말처럼 출산 후 꽁꽁 싸매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다섯째 날,


- 퇴원 수속: 수술비, 입원비(병실+식사), 초음파 비용 등을 결제해야 한다. 조리원에 10시에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9시쯤 퇴원수속을 밟았다. 큰 짐들은 남편이 미리 옮겨놓고, 나는 간단한 서류들 처리.


- 조리원 이동: 10시 다 돼서 신생아실에서 아기 받아서 조리원으로 이동. 병원 연계 조리원이라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바로 조리원 입성. 한겨울이라 이게 진짜 좋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박 5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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