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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May 27. 2021

단유가 아쉬울 줄이야

엄마 130일차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의 모유수유는 완모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먼저 이야기해두고 싶다. 나는 모유와 분유 반반 비율로 100여 일 수유하다가 단유 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인단 걸 알지만, 그래도 모유수유를 했던 백여 일을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출산 전부터 나는 모유를 먹일 생각이 별로 없었다. 젖 나오는 건 유전이라는데 엄마도 별로 안 나왔다고 해서 당연히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초유 정도는 먹이라고 하니 그것만 먹이고 단유 할 생각이었다.


어라, 근데 예상외로 모유가 꽤 나왔다. 완모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단유 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분명 모유 욕심이 없었는데도 매번 유축할 때마다 조금씩 젖량이 늘어나는 게 뿌듯했다. 이론적으로 완모가 가능한 양만큼 늘렸는데도 흔하다는 유선염도 한번 걸리지 않았다. 모유수유가 자궁수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직수였는데, 예상치 못한 선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완모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헌혈에 가깝다는 모유수유를 몇 달간 지속할 자신도 없었고, 출산으로 이미 망가진 내 몸이 더 이상 축나는 것도 싫었다. 모유를 먹이는 동안에는 오롯이 나만 아기를 봐야 한다는 것도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젖가슴이 늘어질까 걱정도 됐다. 아기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하기도 싫었다. 7개월 뒤 복직할 예정이라 어차피 완모가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모유수유 자체에 미련이 없는 줄 알았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뒤, 대중없는 수유 텀을 잡아보고자 분유를 평소보다 많이 줬다. 그거 때문에 젖량이 줄었던 건지, 그날 새벽 아기가 젖을 먹다 비어있다는 듯 앙 울었다. 이렇게 단유 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어라, 왜지?


언제든 단유 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젖을 오물거리는 아기 모습도 좀 더 보고 싶었고, 새벽마다 했던 눕수도 너무 달콤했다. 젖을 먹이면서도 잘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이 유일했다. 고민 끝에 단유를 미루기로 했다.


새벽에 모유수유를 하려면 낮에도 모유를 먹이며 젖이 줄어들지 않도록 유지해야 했다. 혼합수유를 하다 보니 여느 아가들처럼 우리 애도 젖병의 편함을 알아버려 젖 빨기를 종종 싫어했다. 울고불고 난리 치는 아기를 볼 때마다 모유수유가 날 위한 건지 애를 위한 건지 모르겠어서 단유를 고민했다가도, 새벽에 눕수의 편함을 느끼며 하루만 더 버티자 다짐했다.


그렇게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한 달만 더, 하다가 80일 차가 됐다. 아기가 8~9시간씩 통잠을 자기 시작해 새벽 수유도 훨씬 할만해졌다. 자궁수축도 이미 다 되었다. 단유 하기에 좋은 타이밍인 거 같아 100일 단유를 목표로 직수 횟수를 아주 천천히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젖이 줄수록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는커녕, 지금이라도 젖량을 늘릴까 하는 미련이 질척하게 남았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낀다 생각해왔는데, 닥쳐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쓸데없는 미안함이 가슴 한켠에 쌓였다. 



단유한 지 한 달 차, 이미 단유 마사지도 받았고 분유 수유가 당연한 일이 됐다. 미련 떨었던 것과 다르게 사실 지금은 그렇게 미안하거나 아쉽지 않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쩌다 애가 아프다고 단유 탓을 하지도 않을 거 같다.


다만 젖을 오물거리던 나의 작은 아이는 조금 그립다. 이제야, 내 뱃속에서 생명을 품어서 내 젖으로 길러내는 일이, 꽤나 근사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임신 전에는 이 모든 걸 원시적이라 여겼었는데. 왜 21세기에도 배 아파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했던 게 고작 1년 전 일인데. 부모가 된 나는 가끔 소스라치게 낯설다.


앞으로, 우리 딸과 함께 마주할 부모의 세상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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