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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공존하고 있지만, 결코 같이 할 수 없는.

지금 난 프랑스에, 동시에 한국에서로부터

7시간, 아니 썸머타임이 아닐 땐 8시간.


부모님과 친구들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해오는 한국보다 프랑스는 딱 그만큼의 시간이 늦은데, 12시간의 시차가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이 시차는 밀물과 썰물처럼 서로에게 맞물려 있는 오묘한 시차다.


내가 스르륵 밤의 어스름 속 베개 아래 침잠하는 썰물 때에는, 한국은 이미 여기보다 먼저 뜨는 해를 맞으며 바쁘게 밀려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프랑스에서 내게 고향 같은 Saint germain en laye


그렇게 밤의 고요 속에 쓸려갔던 내가 밀려오는 프랑스의 아침의 빛 소리에 깨어보면, 이미 한국은 퇴근 준비로 혹은 일상을 마무리하며 바쁘게 지나간 하루를 빠르게 쓸어내려가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Versailles 저녁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에게 상대적이라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다른 시간이지만.

기어이 이 다른 시간은 한 지구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연락이 실시간으로 닿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꽤나 그네들과 같은 위도 혹은 고도의 감정에 놓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막 밤에 뒤척이며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바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한국의 친구들은 이성을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이륙하고, 그네들이 하루를 마치고 착륙할 때서야 나는 또 나의 뒤늦은 하루를 위해 이륙해야 한다.

 

참.. 공존하면서도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초연결사회가 가져다준 허무한 자각이랄까.


세상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프랑스인이 되기 위해 왔지만, 항상 나는 이방인으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여기서 나의 비교 우위를 만들어가고.


그렇게 혼자 있기를 싫어했으면서, 또 이렇게 혼자 타국에서 사는 삶을 편하게 즐기기도 하며


그렇게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다 했지만, 결국 그랑제꼴이란 석사 과정에 30 나이가 되도록 살고 있으며


그렇게 낮에는 얼른 밤이 오기 만을 바라면서, 막상 밤에는 뒤척이며 쉬이 생각의 밀물에 갇혀 평안의 썰물에 몸을 누이지 못한다.


그런 아이러니를 많이 위로해준 게 나에겐,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뜨였다.


사실 저 그림을 처음에 미술사에 볼 때는 의미적으로만 충격을 받았었는데, 사실 프랑스에 와서 더 충격적이었던 건, 실제로 해가 너무 길어서 여름에는 그림과 같은 파스텔톤 하늘에 조명이 켜진 거리를 은근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코 또 함께 할 수 없을 듯 하지만, 세상은 양과 음을, 고와 저를, 안과 밖을, 그 모두의 시계를 끌어안고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1년에 한두 번은 그 시차를 극복하고 나의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2020년은 참 오묘하다. 아마 앞 뒤가 같아, 구분할 수 없는 해라 시스템 오류라도 생긴 거니 하고 위안 삼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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