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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 나의 첫사랑, 보르도 생떼밀리옹

UNESCO 문화유산 아래 숨 쉬는 Chateau Franc Mayne

2021년 5월. 바람처럼 달려온 보르도 여행. 어 사유의 장미님은 루아르 와인만 드시는 거 아닌가요?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렇게 루아르에 흠뻑 빠지게 된 것도 Thierry 아저씨 덕분이지 그 전에는 취향이 조금씩 새로운 와인 지역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취향이 바뀌었다.

위 글에서 나오는 루아르 Jasniers를 방문하기 전, 토요일 저녁. 뭔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할 때 분기에 한 번쯤은 꺼내 보는 영화가 있다. 사실 최근 오롯이 취업 준비와 논문 준비를 하면서 요즘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이 들기도 했고, 뭔가 루아르 만 붙잡고 쓰자니 고민도 되고 그냥 영화 와인이나 오랜만에 또 보지 하면서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한국 독립 영화관에서 나와서 대구에서 처음 봤었는데, 불어로는 Ce qui nous lie 우리는 이어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감독은 Cédric Klapisch. 이 영화의 한 장면을 한 번 보자. 꼭 보자!

보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중

이 영화에서 와인 생산자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호주에 가 있던 첫째 아들 Jean 그리고 둘째인 딸,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와인을 만드는 Juliette, 그리고 마지막 막내 Jeremy.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수확을 하는데, 줄리엣은 노동자들과 다툼을 벌이게 되고 그만 혼자 힘들어서 한 구석에 울고 있을 때, Jean이 다가와 영화 속 같은 이야기를 한다.


너무 단순한 대화들인데, 그 대화들 안에 내 가슴을 푹푹 후벼 파는 푼크툼들이 존재해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늘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혹은 잘하는 일인지, 잘할 수 있을지 등을 걱정하며 와인에 슬슬 취해 영화를 보다 보면 꼭 야기서.  와인 좋아하지? 응. 그럼 와인 만들어야지. 하며 웃어넘기는 이 장면은 봐도 봐도 왜 이렇게 흐뭇한지.

토요일 저녁 혼자 차분히 분명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6월 말까지 논문 제출이라는 시간과 앞으로 인턴 등을 하게 될 생각 등을 생각해보니 문득, 아 내가 처음으로 와인에 사랑을 빠지게 만들었던 그 보르도. 그곳에 안 간지 꽤 되었는데 여기 한 번 가보자. 이 곳도 이제 지금 내가 보는 바이오, 내추럴 와인 트렌드에서 다가가면 무언가 새로운 걸 볼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에, 그날 저녁 바로 모든 짐을 챙기고 새벽 아주 일찍 길을 나섰다.

새벽에 기름 넣으면서 한 3번 후회한 거 같다.

사실 생떼밀리옹을 먼저 간 건 아니고, Entre Deux Mer라는 곳을 먼저 갔지만, 그곳은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보르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의 편의를 위해 생떼밀리옹부터 살펴보자. 유네스코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곳이 바로 샴페인인데, 예전에 글을 한 번 남긴 적 있다. 그 정도로 전 세계 지구 상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곳이기에 그만한 역사가 있기에 꼭 한 번 기회가 되면 인생에서 여행해보길 추천한다.


Saint-Émilion UNESCO village  유네스코 문화유산 생떼밀리옹


보르도 와인을 처음 접할 때 마신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를 아직도 잊을 구가 없다. 한국에서 와인이라고 먹던 것들과는 다르게 너무나 강렬하게 내 혓바닥을 한 번 쓸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던 생떼밀리옹 와인. 그 이후로 점점 더 강한 Medoc부터 마트에서 보르도라고 이름 적힌 건 한 2년 가까이 다 찾아 마셔본 것 같다.

 보르도 지역 지도 Carte vignoble de Bordeaux

생떼밀리옹은 보르도 지역 중에서 우리가 많이 비싸다고 듣는 샤또 마고, 혹은 HAUT BRION 5대 샤또로 유명한 PESAC LEOGNAN과 같은 강의 좌안(rive-gauche)이 아닌 Rive-droite의 좀 더 내륙 지방 Libourne라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같은 보르도 지역 내에서 유난히 Saint Emilion 그리고 Pomerol 지역이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외유내강과 같은 성격.

오후 3시의 생떼밀리옹 와인밭

그렇기에 보르도까지 내려온 이상, 가장 정수 중에 정수인 이 곳으로 왔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 첫 보르도 여행, 그리고 2019년 절친과의 여행, 그리고는 이번 2021년이 인생에서 3번째 방문이다.


오전에 Entre deux Mers 지역에서 샤또 몽페라를 방문 후 바로 낮 3시쯤 도착했는데, 도착 후 무작정 생떼밀리옹에서 바이오 와이너리를 찾았다. 예전에는 투어 센터에 가서 꼬마 기차를 타고 다니곤 했는데, 이젠 그런 건 관광객을 위한 곳이라는 걸 알기에 폭풍 구글링을 했다.

아무래도 전통 중의 전통적인 도시다 보니 없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다행히 Chateau Franc Mayne이라는 도메인(https://www.chateaufrancmayne.com/en/

)을 하나 찾게 되고 오후 4시부터 투어가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갔다. 역시 보르도 특유의 부티가 줄줄 흐르는 느낌. 넓게 펼쳐진 포도밭들. 그래. 이게 보르도였지.

샤또 앞 포도밭들

마침 파리에서 온 커플 하나가 샤또 내 호텔에 숙박을 하는 덕분에 그들과 함께 심심하지 않게 불어 가이드 Visite Astereis라는 투어를 할 수 있었다. 22유로에 3가지 와인 테이스팅이 가능했는데 식당이고 뭐고 열지 않은 나에게는 아주 감지덕지한..

중세 방식으로 쉬게 내벼러둔 땅 5년까지 휴지기를 가진다.

Savare family가 20년째 해온 이 와이너리는 중세 시대에서 사용하던 땅에게 휴식을 주는 방식도 채택하고 있었다. Thierry 아저씨가 현대 와이너리에서는 끊임없이 땅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식으로 와인이 그만큼 힘이 없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서 이미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순례길과 구 우체국 건물

바깥 포도밭에 대한 설명들을 들으며 산티아고 아 캄파넬라 순례자 길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전에 우체국으로 쓰이던 건물 같은 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꺄브 투어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와이너리의 특징도 Les maison rouges처럼 꺄브가 원래 석회암을 채굴하던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생떼밀리옹에서 채굴되던 좋은 품질의 석회암은 무려 18세기까지 채굴이 되어있는데, 보르도 대도시의 각종 큰 건축물들을 쌓는데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표준 석회암 사이즈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채굴의 역사와, 순례자 길에 대한 설명을 엮어 빛을 이용한 애니메이션도 소개가 된다. 나중에 영어 투어가 있다면 되도록 영어 투어로 보길 바란다. 아마 영어 투어로 보아도 단어들이 낯설어서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채석장 위로 난 평평한 대지. 와인 나무가 옆으로 자란다.

채석장으로써의 가장 큰 특징은 생떼밀리옹이 약간 언덕처럼 솟아있는 지형이었는데 이 밑은 석회암 지대가 되며 아래 사진에서처럼 흙이 있는 곳이 생각보다 얇았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포도나무 줄 사이의 간격이 넓은데, 나무뿌리가 지하로 깊게 들어갈 수 없어 옆으로 길게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들을 흥미롭게 듣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테이스팅 장소.


2017년, 그리고 2011년, 마지막으로 2004년 와인으로 순서대로 빈티지로 테이스팅을 했다. 근 2년 넘게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을 마시지 않다가 첫 혀에 닿는 순간, 아, 이렇게 생떼밀리옹은 강렬했었지.

와인의 눈물이 고이던 생떼밀리옹 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리던 느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며, 프랑스의 첫 교환학생으로 2015년에 왔던 시절부터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샤또 라벨에 인쇄된 바로 그 나무.

2017년은 아무래도 아직 너무 어린 느낌이었고, 2011년은 내가 첫 대학에 입학한 해였는데 벌써 그게 10년 전이라니 하는 생각을 하며, 마시는데 훨씬 밸런스가 있었다. 확실히 많이 차분해진 느낌. 마지막으로 2004년 와인은 와인 밑바닥 부분을 마셔 그런지, 영 별로였다.


특히 보르도 그랑크뤼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오래된 와인일수록 밑에 침전물이 많이 쌓여있다. 다른 내추럴 와인들에서는 보기 힘든데, 문득 아 보르도 와인은 이랬었지 또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딱 2011년 와인 2병만 샀다.

2병에 거의 100유로 ㅠ.ㅜ

그렇게 테이스팅을 마치고 6시쯤 되니, 통금 7시 때문에 이미 Pomerol 지역은 닫혀있었고,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근처 Libourne에 숙소를 잡았다. 요즘은 관광객이 없어서 그런지, 에이 비엔비를 운영하던 Sonia가 정말 좋은 가격에 숙소를 제공해주었다.

발리에서 입양된  Sonia. 인생 첫 쌈장.

 미안해서 가지고 다니던 쌈장에 고기를 구워서 한국씩 쌈도 소개해주고 넉넉히 밥을 먹어두고 나니, 저녁 8시. 서머타임이 끝난 프랑스는 해가 늦게 진다.

노을이 지던 생떼밀리옹

저녁을 먹고 다시 해가 질 때에 맞춰서 서서히 도착한 생떼밀리옹. 2019년 절친과 함께 저녁을 먹고 취해 걷던 생떼밀리옹의 거리도 생각나고, 혼자 걷는데 정말 도시에 사람 한 명 없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영향이긴 하겠지만, 그 덕에 정말 앞으로는 또 이렇게 조용하길 힘들 생떼밀리옹 거리 구석구석 와인 밭, 성당을 하나하나 걷기 시작했다.

생떼밀리옹 골목골목

중세 도시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 곳 생 떼밀리옹은 Saint-emilion인데 이름에서 보다시피 Saint 성인 Emilion의 도시라는 뜻이다. 성인이라니? 그 기원은 8세기 브르타뉴 출신의 떠돌이 수도사 에밀리 옹이 마을에서 은둔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었는데, 이를 기적으로 여겨 많은 수도사들이 모이며 도시가 발전하게 되었고, 11세기 산티아고 라 캄파넬라 길목에 위치하며 순례자를 위한 장소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생떼밀리옹의 종탑과 유네스코 선정 1999년

보르도 바다와 가깝고 지롱드 강을 따라 나있는 평야이기에 자연스럽게 비옥할 수밖에 없었고, 로마인들이 이 곳에 포도 재배를 하기 시작했는데, 중세 이후에는 해상 교역으로 플랑드르 지방에 수출이 되며 명성을 트게 되고, 19 세기에는 철도 개통이 되며 생산과 분배가 폭증하게 되며, 프랑스에서 최초로 와인 협동조합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대낮의 생떼밀리옹

이 외에도 와인 생산지뿐만 아니라, 당일 방문한 샤또 Franc Mayne에서 보듯 석회암의 대량 생산 기지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종교, 그리고 농업, 이어서는 상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이 생떼밀리옹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프랑스 와인 역사의 큰 바탕이 된 곳이기에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으리으리한 생떼밀리옹의 상점들

사실 지금은 정말 보르도 와인을 사 먹지 않는다. 내추럴 와인에서 좋은 수준의 와인과 보르도 와인에서의 비슷한 수준의 와인을 먹으려면 최소한 가격이 3-4배는 나야 그나마 비슷한 퀄리티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르도 와인이 맛없어서가 아니고, 해당 지역의 포도 생산 방식과 맛이 열리는 특성상 최소한 5-10년은 숙성이 돼야 그나마 지금 내가 기대하는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알면서도 부담이 돼서 못 사 먹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상세르, 알자스, 남부, 샴페인, 마지막으로는 루아르 지역까지 이렇게 일상적으로 마시게 되는 와인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는데..

가장 많은 생각을 들게 하던 이 장소.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은 현실적인 조건들에 맞는 선택을 하고 내가 보던 세상이 넓어지며, 이유도 모른 채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절처럼 추억으로 남게 되는 선택지들이 있다. 그럼에도 와인이라고는 1도 몰랐지만 와인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내 프랑스 와인의 첫사랑이기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떼밀리옹 한 켠의 우물가.

노란 조명 아래 아무도 없는 생떼밀리옹 한편의 우물가에서 밟게 빛나는 달을 보며 드뷔시의 노래를 한 곡 들으며, 내가 사랑하는 영화 <보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에서의 그 장면이 무작정 달려오게 만들었던 이 순간을 기억해본다.


Tu aime du vin? Oui. Bah. Alors. Tu suivis du vin.

와인 좋아하지? 응. 그럼 와인 따라가야지.


** 영화에서는 의역으로 자막이 와인 만들어야지였지만, 사실 불어 동사라로는 따라가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결국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고 가면, 우연이 노력을 더해 운명이 된다.

편하고 흥미롭지만, 지속 가능한 와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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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베르사유에 사는 프랑스의 이야기들은 아래 인스타그램 제 계인 계정에서 확인하세요 ^^

https://www.instagram.com/jangmin.versail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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