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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죽음 4
너무 늦게 멈춘 나

그의 관점에서 2

by 디케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길도, 라디오도, 나 자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오전 10시, 원래는 본사 전략 회의가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회의 대신 MRI와 위내시경이 기다리고 있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병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단순한 위염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성 장염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자주 발생하는 통증과 몸 상태가 그 희망 속에서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제 그만하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난 너무 오래 그 신호를 무시해 왔다.

병원 복도 끝, 진료실 앞에서 대기표를 들고 앉아 있었다. 입술이 마르고, 손은 차가웠다. 별것 아닌 결과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의사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숨이 막혔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 간 수치가 심각하고, 위 점막도 많이 손상됐어요. 무조건 입원이 필요합니다. 정밀 진단을 해 봐야겠지만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도 많이 좋지 않습니다. 일은 당장 중단하시고 바로 입원하시기 바랍니다"

암. 입원. 그 두 단어가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병원을 나서는 길에 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술자리 이후 처음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고마웠다. 너랑 있으니까, 오랜만에 그냥… 웃을 수 있어서.” 후배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안 어울리시게 아침부터 그런 말을.. 근데…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긴 하더만요.” 나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나 입원하게 됐다. 며칠… 아니, 몇 주는 쉴 것 같아.

사실 그동안 몸에서 계속 신호가 왔는데, 그냥 버텼거든.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

후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는 꼭 나처럼 되지 마라. 성과나 실적에 자신을 너무 오래 맡기지 마." '내가 그걸 배운 건, 이 지경이 되고 나서였다.'는 얘기는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일에 관한 알림을 모두 꺼두었다. 서류 뭉치들도 정리를 하고 노트북도 닫았다. 불안했다. 세상이 내 손을 떠나 흘러가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안도했다. 나 없이도 모든 걸 걸어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거라는 걸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었고,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달렸을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버텼을까. 그리고 예전의 치열한 직장생활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영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업체 하나라도 더 만나려 밤늦게까지 약속을 잡았고,
말 한마디에도 반응을 분석하며 자료를 밤새 수정했다. 고객의 호의가 계약으로 연결되고, 실적이 올라가고, 본사에서 내 이름이 회의에 오르내릴 때, 나는 세상을 가진 줄 알았다. 외제차를 몰고 고객사에 들어설 때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고, 후배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땐 ‘나도 이제 뭔가를 이뤘구나’ 싶은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피로한 몸을 안고 천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건 그 모든 것들이 이 몸 하나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계약 건 수, 수주 금액, 팀 실적, 상패, 명함 속 직함. 어느 것도 지금 내 위장 속 통증 하나 이기지 못했다. 통증이 더 심해지는 이 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누가 나를 인정해 주는 말’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다.


이렇게 나의 지금까지의 일상은 멈췄다. 내일부터 일을 못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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