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만나서 반가워! 춘천 미래산부인과 자연분만 후기
2023.11.27 월요일
입원 1일 차(출산당일)
지난 37주 검진때 했던 충격적이었던 첫 내진. 지난 열 달 동안 나를 담당해 주신 김ㅎㄱ원장님은 내진의 충격에 빠진 나를 보며 손사래 치시더니 “오늘은 진짜 살살한 거예요.”라고 하시며 웃으시고는... 자궁문이 1-2cm 열려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다음진료 때 진행이 더 되어있으면 바로 분만을 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셨었다.
38주 2일인 오늘, 월요일. 오늘 출산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어제 아웃백에서 만찬을 즐기고, 기필코 오늘 낳겠다는 생각으로 어제저녁에 유튜브에서 <막달 운동>, <막달 스쿼트>를 열심히 검색해 운동도 했다. 38주면 정상분만주수이기도 했고, 임당산모인 탓에 아기가 더 커지면 분만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3kg 정도로 분만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컸다. 파워 J인 내게, 오늘 출산을 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매우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오전 9시, 혹시, 혹시, 혹시 오늘 분만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출산가방을 야무지게 챙겨 집을 나섰다. 병원에 가기 전에 교회에 잠시 들려 기도하고 가기로 했다. 이럴 때만 더 간절한 것 같아 하나님께 죄송한 기분이다. 교회에서 병원까지 걸어서 1-2분. 긴장되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서 병원에 도착했다. 원장님이 거의 첫 예약으로 잡아주신 덕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 보러 들어갔다. 웃으시며 “한번 볼까요?”라고 말하시는 원장님.... 지난주 내진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서 오늘 하도 겁을 먹고 가서일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아 물론.. 원장님한테 제발 살살해달라고 빌었다. 원장님이 피식 웃으셨지만. 내진결과 자궁문이 3-4cm 열려있다고 하시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진통 없었어요? 있었을 것 같은데..?” 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없었는데 진통... 어젯밤에 열심히 와이드스쿼트를 한 결과인가? 이럴 리가 없다며 신기해하시는 원장님은 3-4cm 정도 진행된 거면 오늘 분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살짝 고민하시는듯하더니 자연진통을 기다려보는 방법도 있다고 하시며 다른 원장님께 의견을 묻고 오시겠다고 하셨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왔는데, 어떤 것이 나와 아기에게 더 현명한 선택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원장님은 다른 원장님께 다녀오시더니 옅은 미소와 함께 “다른 원장님도 오늘 분만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시네요.”라고 하셨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으니 알겠다고 했다. 출산가방도 싸왔다고 하니 웃으셨다. 결국 파워 J인 나는, 언제 진통이 올지 모른 채 두려움에 떠는 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에.. 촉진제 써서 분만하는 방법을 택했다. 원장님은 나를 안심시키시며 “진행이 하나도 안된 상태에서 하는 유도분만이었다면 너무 힘드니까 권유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3-4cm 열려있는 상태에서 하는 유도분만은 촉진제가 트리거역할을 해줄 거다.”라며 “한번 해봅시다!”를 외치셨고 그렇게 분만을 하기로 했다. 분만이 결정되고, 검사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 찔려보는 코로나검사는 역시 적응이 쉽지 않았다. 눈물 찔끔 흘리며 나와 오빠 둘 다 검사하고, 잠시 기다려 음성판정을 받고 가족분만실로 올라갔다.
오전 10시, 가족분만실에 입성했다. 말로만 듣던 변신되는 분만침대와 소파, 태동검사기계, 화장실. 왠지 모르게 삭막한 느낌이 드는 분만실이었다. 속옷을 모두 탈의하고 환복 했더니 이제 뭔가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오빠와 아주 해맑게 웃으며 마지막일지 모르는 D라인 사진도 남겼다.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고, 또다시 내진을 했다. 간호사선생님께서 이제 계속 내진하며 상태체크할 거니까 내진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하시며, 걷기 운동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10시부터 쉬지 않고 분만실을 뱅글뱅글 걷기 시작했다. 촉진제를 맞자마자 진통이 오는 건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역시 초산은 아무것도 모른다.
오전 11시, 간호사선생님이 오셔서 진통이 있는지 물으시더니, “표정과 목소리를 보니 아직인 것 같네요?”하며 웃으셨다. 밑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살짝 있기는 했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내진을 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열린 것 같으니 계속해서 걸으라고 하셨다. 또다시 쉬지 않고 분만실을 뱅글뱅글 걸었다.
낮 12시, 원장님이 오셔서 내진했다. 원장님은 4-5cm 정도 열린 것 같다고 하시며 간호사선생님과 무언가 사인을 주고받으시더니 눈 깜짝할 새에 양수를 터트리셨다. 양수가 터지는 그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는데, 뭐랄까 30일 치 오줌을 한꺼번에 싸는 기분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줄줄 흐르는 수준을 넘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원장님은 양수를 터트렸으니, 이제 진통이 올 거라고 하셨다. 살짝 긴장이 됐다. 원장님은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익숙하다는 표정과 함께 “잘할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시고는 다시 진료 보러 내려가셨고, 이후 간호사선생님이 오셔서 관장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관장은 분만 시 경험하는 3대 굴욕 중 하나라던데, 수치심을 느낄 새도 없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일단 이 모든 과정이 여기 계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일인 것이 느껴져서 별로 굴욕적이지 않았다. 3대굴욕 중 하나인 제모는 미리 임산부 왁싱으로 받고왔다! 관장 후 간호사 선생님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화장실을 가라고 하셨는데, 참을 수 있을 때 까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서 열심히 참아 10분을 버티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행히(?) 병원오기 전에 시원하게 대변을 보고 온 상태라 그런지, 관장을 하고도 생각보다 시원하게 쏟아내지 못한 것 같아 뭔가 찝찝했다. 그리고 드디어 진통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처음 경험하기 시작했다. 양수를 터트리고 나면 진통이 시작된다고 하신 그 말 그대로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걸어야 한다고 하셔서 분만실을 걷고, 또 걸었다. 아, 오빠는 내내 옆에서 내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선생님들이 오셔서 내진할 때, 처치할 때는 잠시 밖에 나가서 기다리게 하셨다.
오후 1시, 태동검사를 했다. 진통을 느끼기 시작하며 아기 심장소리를 확인하고, 아기도 잘 버티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태동검사 후 또 내진했다. 잘 진행되고 있다며 걷는 것이 너무 힘들면 짐볼에서 움직여도 된다고 하셨다. 짐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일단 짐볼에 앉았는데, 유튜브로 다른 사람들이 짐볼 타는 것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내 자세에 웃음이 나왔다. 짐볼에 앉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진통을 견뎌내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 이 시간이 병원 점심시간인 걸로 아는데, 원장님이 오셨다. 진통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내 표정을 보시더니 “이제 아프죠? 잘하고 있어요. 한번 볼까요?”라며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키셨다. 내진을 했다. 이제는 오히려 내진을 하면 통증이 더 사라지는 느낌일 정도로 내진에 대한 공포심 따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수축이 와서 몸에 힘이 들어갈 때 위를 보지 말고, 배꼽 쪽을 보라는데 전기구이 통닭이 된 마냥 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통증이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온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출산영상을 보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랄까. 이쯤 돼서 물었다. “무통주사 같은 건 왜 안 맞죠...?” 다른 사람들은 자궁문이 4cm 정도 열리면 무통주사 맞고 무통천국을 경험한다는데, 원장님은 무통주사 얘기가 없어서 대놓고 물어봤다. 원장님은 “3-4cm 열릴 때까지도 진통을 못 느꼈고, 수축도 없었기 때문에 무통주사 안 맞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라며 “아주 잘 진행되고 있으니 조금만 힘내보자.”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내려가셨다.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듯하다. 무통천국을 경험한다는 사람들의 말만 믿고 조금은 안심했는데, 무통주사 없는 자연분만이라니. 그런 건 유튜브에 별로 있지도 않았다. 무통을 맞았는데도 무통이 안 들었던 사람은 있었지만, 무통주사 없는 사람은 없던데?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난 열 달간 나를 진료한 원장님을 믿는 거였다. 원장님의 판단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견뎌보기로 했다. 하, 무통주사 없는 자연분만은 내 계획에 없었다.
오후 2시, 제대로 시작된 진통에 탈진할 정도로 정신 잃는 기분이었다. 점점 짧아지는 것 같은 진통간격은 두 걸음 걷고 멈추고, 세 걸음 걷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내 호흡을 방해했다. 아기에게 산소를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유튜브를 보며 호흡법을 그렇게 연습했는데, 막상 진통이 올 때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신기하게도 진통이 사라지면 아무렇지 않게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오빠는 내가 거의 탈진하고, 기절할까 봐 걱정되었다고 했다. 불러도 대답이 없거나, 잠들려고 하는 것 같을 때 계속 말 걸며 나를 깨웠다고 한다. 나도 기억나는 것이, 잠이온 다는 생각과 함께 시루떡 먹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어이없다. 이 와중에 시루떡 먹는 꿈이라니. 진통이 올 때마다 오빠를 붙들고 바들바들 떨며 진통을 견뎌내거나, 침대를 붙잡고 진통을 견뎌냈다. 오빠에게 안겨서 진통을 견뎌낼 땐 오빠도 나와 함께 진통을 견디는 느낌이 들어 든든했는데, 진통이 점점 심해지니 이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빨리 수축텀이 지나가길 바라고 또 바라는 모습만 남았다.
오후 2시 30분, 이 시간부터는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시작되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고, 뭐 내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유튜브에서 열심히 찾아본 진통의 느낌은 내가 느끼기에 결국 똥 싸는 느낌이었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열 달 동안 화장실을 못 가다가, 38주 2일 만에 드디어 화장실을 가게 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떤 유튜브에서 서서 힘주기를 하면 중력에 의해 아기가 더 잘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서서 똥 싸는 느낌으로 진통을 견뎌냈다. 바들바들 떨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소리가 밖으로 계속 들리니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진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산모님, 이제 힘주면 아기 머리가 조금씩 보여요. 이제 저희랑 같이 힘줘야 해요. “라고 하시며 힘주기 연습을 시켜주셨다. 아까 원장님이 가르쳐주고 가신 것처럼 배가 아파질 때 안전바를 몸 쪽으로 당기며 배꼽을 보고, 끄응 힘을 주라고 하셨다. 나도 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게 돼야 말이지... 그럼에도 계속해서 잘하고 있다고 해주시니 ‘아, 내가 잘하고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차라리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힘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제일 안심되었던 말이, ”소변이 나와도 괜찮고, 대변이 나와도 괜찮으니 가르쳐준 힘주기 방법만 잘 기억하고 힘주세요.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요. “ 였다. 나는 이때부터 ‘그래.. 뭐라도 나와라.’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힘주기를 시작했다. 아니, 사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축이 오면 자동으로 힘이 들어갔다.
오후 2시 55분, 간호사선생님은 ”산모님, 이제 분만준비 할게요. “라고 말하시며 매우 다급하게 선생님들을 콜 하셨다. ”선생님, 분만이요. “라며 콜 하신 후 분만실 침대를 척척 분만을 위한 침대로 변신시키셨다. 얼마 되지 않아 원장님이 오셨고, 바로 내상태를 체크하셨다. 지난 열 달을 함께해 온 원장님이 오시니까 매우 분주한 이 분만실에서도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안심되는 마음이 들었다. 이때부턴 아무 기억도 없다. 분만과정 내내 함께해 준 간호사선생님이 침대 위로 올라오셨고, 오전 진료를 함께 들어가 준 선생님이 내 왼쪽에 서계셨다. 내 수축주기에 맞춰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하나 둘 셋을 외칠 때 난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힘을 주는 산모가 되었고, 그렇게 3번 정도 온 힘을 다해 힘을 주었나 싶을 때 ”산모님 이제 힘 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미끄덩하고 아기가 태어났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심하던 진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후 3시 4분, 어딘가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아기가 태어났다. 밖에서 내내 소리를 들으며 이 시간을 함께한 오빠가 들어와 아기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내 가슴 위에 아기가 올라왔다. 너무 작고, 따뜻했다. ”아가야 반가워. “ 인사하고,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처치하기 위해 데려가셨다.
분만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후처치 시간이다. 오로를 빼내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이 배를 누르며 무언가를 계속 빼내는 순간은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태반 뺄 때도 힘들다고 하던데, 오히려 태반 빼는 느낌은 물컹하는 느낌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니면 오로를 빼낸다고 느낀 그것이 태반을 빼내는 과정인가? 또 한 번 느낀다. 초산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시간들을 견딘다는 것을. 아기를 낳자마자 진통이 사라지는 이 순간이 너무 신기했다. 원장님은 매우 꼼꼼하게 후처치를 하시며 ”너무 잘했다. “, ”최고다. “라고 아빠가 아이 달래듯이, 유치원선생님이 어린이 달래듯이 칭찬하셨다. 회음부 열상방지 주사고 뭐고, 회음부 봉합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었고 그저 이 순간이 끝났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과, 감사함, 해냈다는 뿌듯함 등등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다. 모든 후처치가 끝나고 원장님은 내 옆으로 오셔서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주시며 웃으셨다. 원장님이 웃으시니 안심되는 마음이 들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뭔가 큰일을 해낸 기분이었다. 쉴 새 없이 엄지를 척하고 드시고는 “초산인데 진짜 잘했다. 축하해요.” 라며 진심을 다해 함께 기뻐해주셨다. 아, 원장님께 “근데 딸 맞죠?”라고 물었는데 원장님이 흠칫 놀라시는 척하시더니 “딸 맞아요.”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혹시나 성별반전 있을까 봐 임신기간 내내 걱정한 내 걱정도 사라졌다. 오빠는 후처치하는 내내 밖에서 기다리며 양가 부모님께 출산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모두들 정말 기뻐하셨겠지. 잠시 후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왔다. 원장님은 “초음파로 볼 때도 아빠 판박이였는데, 아기가 그냥 아빠 작은 버전이에요.”라며 웃으시고는 다시 한번 축하인사를 건네고 내려가셨다.
신생아실 선생님과 함께 아기를 살펴봤다. 눈, 코, 입, 귀, 손가락, 발가락, 모두 확인했는데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나오며 힘들었는지 얼굴에 멍이 살짝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태지가 역대급으로 많은 아기였다고 했다. 사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내 앞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한 순간이었다. 빠르게 아기 확인하고, 아기는 체온유지를 위해 다시 신생아실로 갔다. 분만 이후 오들오들 몸이 떨려오며 추웠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너무 추울 정도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오빠가 손잡아주며 옆에서 계속 말 걸어줬고, 점차 안정되며 잠시 분만실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한참을 휴식하고, 입원실을 배정받아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자연분만의 최대 장점은 출산 후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요거트 먹은 게 전부여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 입원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식사가 나왔다. 미역국이었다. 감격스러웠다. 출산을 하고 미역국을 먹는 이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니. 저녁을 맛있게 먹고 휴식을 취했다. 이제 정말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