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작가
장마가 끝나자마자 매일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앞 베란다에 물방울을 달아놓았다. 작은 물방울에 내려앉은 햇살은 불이 켜진 전구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빛나는 날이라고 인사하듯 내 앞에서 반짝거린다. 순간 내 기억의 창고에도 불이 켜졌다.
어느 여름방학 때였다. 한낮의 열기가 달아오면 초등학생인 우리는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바다로 갔다. 수영할 시간이라는 걸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먼바다에는 아침부터 낚시하러 간 동네 오빠들이 갯바위에서 검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먼바다까지 가지 못하는 어린 우리는 여름 열기로 데워져 물놀이하기 딱 좋은 바닷물에서 개구리헤엄, 개헤엄을 치면서 깔깔댔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은 어른이 수영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존 헤엄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무리에서 잘하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 했다. 배우면서 놀고 놀면서 배우는 식으로 우리는 바다에서 엄마 개구리를 따라가는 어린 개구리가 되었다가 강아지가 되곤 했다.
그때 소나기가 내리면 우리는 잽싸게 바다에서 나왔다. 따듯한 자갈돌 위에 누워 소나기를 맞았다. 뜨거운 여름 햇살로 달궈진 자갈돌은 소나기 몇 방울로 쉽게 사라질 열기가 아니었다. 따듯한 자갈돌 위에 누워 시원한 소나기를 맞는 건 여름 바닷가에서만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였다. 우리는 마사지를 받는 손님처럼 편안하게 비를 맞았다. 소나기를 맞는 이유는 또 있다. 바닷물의 소금기를 빗물로 씻어내기 위해서 바다에서 놀다 소나기가 내리면 샤워하는 기분으로 비를 맞았다.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 날은 우물가에 가서 몸을 헹궜다. 지하수인 우물은 비명이 날 정도로 차가웠다. 그러니 소나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우리는 웃으면서 따듯한 자갈돌 위에서 소금기를 헹궜다.
소나기가 그치면 우리는 몸을 말리기 위해서 모래밭에서 놀았다. 모래로 집을 짓고 소꿉놀이를 했다. 모래를 쌓아 텔레비전에서 본 침대를 만들고 식탁과 의자를 만들었다. 집을 다 만들고 나면 서로 초대하여 차를 마셨다. 마치 드라마 속 도시인처럼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사람처럼 우리는 모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식탁에서 옥수수와 삶은 감자를 먹었다. 어쩌면 내 상상력은 그렇게 모래밭에서 따듯한 해풍을 맞으며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참 순한 아이들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끼고 절약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따라 했다. 비가 오면 큰 통에 물을 받아놓고 쓰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소나기에 몸을 씻을 정도로 순한 시골 아이들이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자란 나는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다 좋아한다. 물소리는 내게 시원하면서도 따듯함을 주는 메타포이다. 소나기가 불러온 여름날의 푸른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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