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우뭇가사리묵을 샀다. 배송비가 아까워서 양을 조금 넉넉하게 주문했다. 막상 도착한 것을 보니 먹을 사람이 남편과 나뿐이라 빨리 다 먹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 통은 냉장고에, 세 통은 냉동실에 넣었다. 한 통을 저녁 밥상에 올렸다. 인터넷으로 처음 구매한 묵이라 맛이 어떨지 몰라 망설였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밤에 간식으로 한 통을 또 먹었다. 우리는 하루 만에 우뭇가사리묵 두 통을 먹어버렸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묵을 다 꺼냈다. 해동되자마자 뚜껑을 열어 보았다. 세상에! 얼음만 녹은 게 아니었다. 묵도 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묵이 녹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어릴 때 냉장고는 냉동실이 아주 작았다. 그 작은 냉동실에서 얼음을 많이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국대접에 물을 담아 냉동실에서 얼렸다. 그릇 모양의 큰 얼음이 녹는 모양은 마치 한쪽 살은 먹고 뼈가 덩그러니 보이는 생선 같았고 먹다 만 수박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우뭇가사리묵이 뼈만 남은 생선 같고 먹다 만 수박처럼 비실비실한 모습이다.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내려앉을 것처럼 탱글탱글함은 다 사라진 껍데기만 있다. 놀란 나는 나머지 통도 다 열어 보았다. 통마다 묵은 얼음처럼 녹아있었다. ‘묵사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묵을 담은 사발이 아닌 누군가에게 맞아서 엉망이 된 묵사발. 묵사발 난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는 여름만 되면 천초로 묵을 만들어주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해초인 우뭇가사리를 천초라고 불렀다. 그 묵을 곱게 썰어 콩국수처럼 콩물에 넣어 먹거나 오이냉국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는 콩물이나 냉국보다는 묵을 그냥 회처럼 큼직하게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먹으면 묵은 금방 사라진다. 언니들도 나처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는 한 번 만들 때 정말, 아주 많이 만들었다.
더운 여름날 시골집 부엌에서 땀 흘리며 부지런히 천초를 삶고 또 삶았을 어머니. 천초묵을 먹지 못한 여름을 여러 해를 보내고 나니,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그리운 음식이 되고 나니, 더운 여름 뜨거운 불 앞에서 흘렸을 어머니의 땀이 생각난다. 맛있는 묵 앞에 밀려나 버린 어머니. 그땐 왜 고맙다는 말을 못 했을까, 너무 당연하게 여긴 어머니의 마음. 내가 여름날 자식들을 위해 사골을 고아보니 알게 되었다.
유난히 더운 올해, 매일 에어컨을 켜고 살다 보니 어머니가 해준 천초묵이 생각났다. 그것을 먹고 나면 더워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만드는 법을 배워놓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 직접 만들 자신은 없고 먹고는 싶고……. 나를 위해 천초묵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늙으면 자주 서러워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인터넷으로 우뭇가사리묵을 다시 주문한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사랑도 다시 주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것이 천초묵인지 어머니의 사랑인지. 주문도 하지 않은 서러움이 마음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