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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Oct 09. 2024

소리길

엄마작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는 시간이다. 한 사람이 달팽이 집이 그려진 작은 종이를 펼친다. 그림 맨 안쪽에 펜 잡은 손을 올려놓고 눈감으면 안내자가 길을 알려준다. 말에 따라 손을 움직여 달팽이 집의 안쪽에서 빙글빙글 돌아 밖으로 나오면 된다. 이때 안내자는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말로만 설명을 해야 한다. 장애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펜이 움직일 때 달팽이 선을 밟거나 건너뛰어도 안 된다.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먼저 볼펜을 잡는다. 시작이라는 소리에 맞춰 눈을 감는다. 휙 하고 소리가 귀를 스친다. 앞이 캄캄해지니 소리가 잘 들려 난감하다. 내 안내자의 말만 들려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소리도 크게 들린다. 여러 팀이 같이 시작하니 소리가 섞여 말이 뭉개진다. 아찔하다. 손도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폭포수처럼 귀를 때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귀가 살려고 발버둥 치듯 잔뜩 힘을 준다. 흩어진 소리를 잡기 위해 토끼 귀처럼 쫑긋해진다.

  

 이제야 안내자의 말이 들린다. 그의 소리가 어둠을 걷어내는 아침 해처럼 내 마음에 들어온다. 앞이 환해진다. 아이를 낳을 때는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캄캄하더니 지금은 그 반대이다. 손이 움직인다. ‘오른쪽 앞으로 왼쪽 앞으로 옆으로’ 안내자의 부드러운 소리에 박자를 맞추듯 손이 가볍게 걸어간다.

  

 그것도 잠시, 다급한 안내자의 말이 내 손을 멈추게 한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느낌이다. 보지 못하는 나는 오르지 소리에만 의지할 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큰 걸음으로도 걸을 수 없고 오른쪽 왼쪽으로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조금만 움직이면 안내자가 멈추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아니요, 왼쪽이라 하고 왼쪽으로 가면 아니요, 오른쪽으로 가라 한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잘못 간다고 하니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쿵쾅거린다. 손과 마음이 다시 뻣뻣해진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눈을 감고 소리에만 의지하니 평상시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표정을 보듯 마음을 읽게 된다. 안내자는 답답해서 짜증이 난다는 듯이 한숨을 섞어 말한다. 무거운 그의 말소리가 내 귀에서 끈적거린다. 내 마음도 덩달아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손의 움직임은 더 엉망이다. 내 안내자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을 보니 다른 팀은 모두 끝난 모양이다. 겨우 도착이라는 말에 눈을 뜬다. 숨을 쉬듯 펜 잡은 손을 편다. 볼펜에 묻은 땀이 끈적거리는 달팽이의 점액 같다.

  

 역할을 바꿔 내가 안내자가 된다. 상냥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설명해 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하기로 마음먹는다. 내 다짐은 물거품처럼 맥없이 사라진다. 그는 시작이라는 소리와 함께 빛의 속도로 손을 움직여 달팽이 집에서 나온다. 나는 눈만 한 번 깜빡였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다른 팀이 하는 것을 지켜본다.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적당히 말을 듣다가 내가 알아서 빨리 끝냈으면 상대방이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가 할 때,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렸을까. 미안한 마음에 그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부모한테 꾸중 듣는 아이처럼 풀이 죽는다.

  

 그런 모습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보인다. 아이의 수학 공부를 봐줄 때마다 우리는 싸운다. 수학을 국어로 받아들이는 아이가 답답해 나는 목소리에 짜증을 잘 묻힌다. 문제 중에 거스름돈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라는 것이 나오면 아이는 계산은 하지 않고 자기는 거스름돈이 남을 일이 없다면서 사고 싶은 것을 줄줄이 말한다. 똑같이 나눠 먹는 문제가 나오면 아들은 나눠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수학은 문제에 맞게 계산하는 공부라고 하면 아들은 꼭 그렇게 계산해야 하느냐고 따진다. 문제에 집중 못 하고 딴소리하는 아들에게 화를 내면 오히려 아이가 나 때문에 놀랐다고 더 큰소리를 친다. 그때부터 말싸움이 시작되어 아이가 울어야만 끝이 난다. 한바탕 난리 끝에 나는 좋은 엄마도 좋은 선생도 아니라는 자책감에 빠진다. 

  

 여덟 살 아들은 세상을 볼 줄 모른다. 눈뜬장님과 같다. 장애인 체험을 통해서 아이의 마음을 안 것이다. 못난 엄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귀까지 벌게진다.

  

 모든 것을 내게 맡긴 채 나아가는 아이에게 내 목소리는 길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길에 따라 아이는 잘 걸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짜증 내는 목소리에 아이의 거친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싸우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자갈밭에서 달리기를 시킨 꼴이다. 다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길에 있는 뾰족한 말부터 치워야겠다. 마음을 알아주는 소리로 길을 만든다면 아이가 좋아할 것이다. 그 길에서 신나게 놀 때 아이는 햇살 안은 가로수처럼 푸르게 자랄 것이다. 나는 지금 길을 만든다. 마음이 자라는 따스한 소리길로.   

   

※ 딸아이가 천사 같은 아이를 낳았다. 손주를 보니 예전에 썼던 이 글이 생각났다. 이제부터 소리길을 만들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 #아들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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