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대는 먹어야 싸울수 있습니다. 백만대군도 이틀을 굶으면 다 흩어집니다.
2. 조정의 보급이 없었기에 이순신은 둔전을 일궜으나 땅이 넓지 않아 곡식이 부족했습니다. 이순신은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고,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고, 바다에서는 청어를 잡았습니다. 소금과 옹기, 청어를 팔아 군량미를 댔습니다.
3. 우리 바다는 따뜻해서 청어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빙기가 시작되며 조선 시대 들어 청어가 잡히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소빙기의 뜻밖의 횡재) 청어는 평시에는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줬고, 전시에는 군사들의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4.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이순신은 작전 뿐만 아니라 군수 분야에서 참 뛰어난 군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어 덕분에 한산 통제영에는 군량미와 쇠붙이가 끊김없이 보급되었습니다. 삼도수군의 활약은 청어의 힘 덕분이라고 하면 과장일런지요?
난중일기 속 청어 이야기
21일 맑다. 북풍이 하루 내내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을 내보내 견내량에 적선이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밤에 이종호가 곡식과 바꾸려고 청어 1만 3천 2백 40두름을 받아 갔다.
초4일 맑다. 군졸을 점고하러 순천 2호선과 낙안 1호선을 내보냈는데 바람이 거칠어서 출발하지 못하였다. 분, 해가 본영에 갔다. 황득중, 오수 등이 청어 7천여 두름을 싣고 왔기에 곡식을 사러 가는 김희방金希邦의 배에 숫자를 세어서 주었다.
초4일 맑다. 새벽 2시경에 첫 나팔을 불고 날이 새자 배를 띄웠다. 사량 만호 이여념이 찾아왔기에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여전하다고 하였다. 오후 4시쯤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거망포에 이르니 경상 수사 권준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후가 먼저 배 위로 왔으나 술에 몹시 취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곧장 자기 배로 돌아갔다. 송한련, 송한宋漢 등이 말하기를 “청어 1천여 두름을 잡아 널었는데 통제사께서 행차하신 뒤에 잡은 것이 모두 1천 8백여 두름이나 됩니다.” 하였다. 비가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몹시 퍼부었다. 여러 장수들이 날이 저물어서 떠났는데 길이 질퍽하여 넘어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기효근과 김축이 휴가를 받아 돌아갔다.
초9일 흐리고 날이 몹시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았다. 오수가 잡은 청어 3백 60두름을 하천수가 실어 갔다. 여러 곳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눠 보냈다. 날이 저물었을 때 경상 수사가 와서 방어 대책을 의논하였다. 서풍이 하루 내내 불어서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하였다.
소빙기의 盛饌: 근세 동아시아의 청어어업, 김문기, 부경대학교
청어라는 물고기가 근세 동아시아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청어어업이 먼저 시작되었던 곳은 한국이었다. 한국에서 청어어업은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반해 중국과 일본은 17세기를 전후하여 청어어업이 발전했다. 오늘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청어가 근세 동아시아에서는 광범위하게 났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청어어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빙기라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해수온도가 내려가면서 한류성어종인 청어가 동아시아의 바다로 대거 몰려들었던 것이다. 청어어업은 동아시아 3국의 국가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7세기이후 잦은 재해에 시달리던 조선은 청어를 비롯한 해양어류를 국가의 재원으로 적극적으로 편입했다. 18세기중반에 실시된 균역법에서 海稅는 중요한 稅源이었는데, 그 중에서 청어는 가장 중요한 물고기였다. 풍부하게 생산되는 청어는 조선의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도 크게 기였다.
중국의 산동과 요동에서도 청어가 대거 출현하면서, ‘靑魚粥’으로 소빙기의 기근을 모면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청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대거 섬으로 몰려들면서 海島開發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北海道에서 청어어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던 것은 ‘魚肥’로 적극 이용되면서였다. 에도말기에는 청어어비가 정어리어비를 대체하면서 일본 제일의 비료공급원이 되었다. 청어어비는 北海道에서 大阪으로 이어지는 北前船의 교역망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면서, 일본 상품경제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청어어업의 발전은 소빙기가 초래한 ‘뜻밖의 횡재’였다. 한래화 현상이 초래한 ‘위기’ 속에서, 청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 청어라는 ‘뜻밖의 횡재’는 잦은 재해와 기근에 시달리던 동아시아 3국 백성들의 배를 풍성하게 채워주었던 ‘소빙기의 盛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