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벌새 Oct 21. 2020

초록과 빨강은 노란색

영화 우리집 후기,스포 주의

  영화관에서 처음 영화 '우리집'을 봤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놀라운 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것. 그 사람들과의 공통점은 '우리집'의 관객, 그뿐이었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펑펑 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괜찮다는 말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분들과 함께 컴컴한 극장 속에 남아, 엔딩 크레디트가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눈물로 감정의 응어리들을 쏟아냈었다.


  영화 '우리집'은 노란색이다. 초록의 회복 효과와 빨강의 자극 효과가 혼합된 노란색. 주인공 하나가 가족에게, 그리고 유미와 유진에게 만들어준 다양한 계란 요리, 유미가 하나에게 건넨 노란 종이 상자, 엄마가 여행을 드디어 허락하게 된 날 노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던 하나, 유미와 유진이 그리고 하나가 함께 만든 노란 지붕 '우리집'까지.

 회복의 초록과 자극의 빨강이 섞인 노랑은 위태롭다. 종이로 만든 노란 우리집이 쉽게 부서졌던 것처럼. 유미의 상처와 하나의 상처는 서로를 보듬어 위로하기도 했지만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여행 중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짜증과 화로 표현했던 하나의 모습은, '언니'이기 때문에 오는 책임감에서인지 상의하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하나의 모습은, 하나의 부모님과 닮았다.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네가 왜 집안일을 해'라며 화를 내는 엄마의 표현방식과 닮았고,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불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싸우며 끝내 이혼을 결정해버리는 엄마 아빠와 닮았다. 그리고 여행 중 유미는 하나와 닮았다. 하나의 마음을 풀어보려 눈치 보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족여행을 가자고 가족들을 설득하고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하나의 모습과 닮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하나는 또 유미, 유진이의 부모님과도 닮았다. 참고 참다 화가 난 유미는 결국 하나의 상처를 건드린다. "언니 가족 여행 취소됐지? 그래서 전화도 안 받는 거잖아." 먼 길을 무겁게 들고 왔던 노란 우리집은 부서졌다. 서로의 탓을 하며 싸우는 하나의 부모님처럼 유미와 하나도 서로를 탓하며 싸웠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우리집을 밟아 부쉈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났다. 오래전 가족여행을 갔을 때 하나와 오빠를 잃어버려 부모님은 화해했고, 여행 끝에 유미는 하나에게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고 물었다. 가족들이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요리를 먹으며 영화는 끝났다.  


   우리 집은 하나의 집을 닮았다. 영화 우리집을 보기 전까지, 나의 우리 집은 완전하고 항상 화목했다고 믿어왔다. 아니, 그렇게 나를 속여왔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감정들과, 끊이지 않던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안다. 상처 받았던 그 순간에 멈춰있던 어린 나와 마주하는 첫 순간이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은 생각보다 우리가 유진, 유미, 하나였을 때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이 영화가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자꾸만 잊히고, 미화되는 그 순간을 우리가 그 시절 느꼈을 감정 그대로 이야기해줄 영화가.


*영화 제목 '우리집'에 맞게 우리 집을 '우리집'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미카엘은 엄마의 손을 끝까지 뿌리치지 못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