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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새 Nov 12. 2020

성광여고 후배님들께 보내는 편지

보고싶은 민지에게   

  "누가 대학 오면 다 해결된다고 했냐? 대학이 시작이구만!" 요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부쩍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각자의 고충들과 고민들을 털어놓다 보면 괜히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냥 언젠가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거운 압박감을 마주했던 그때의 저와 친구들에게,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후배님들께 괜찮다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거든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어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 어렵네요. 또, 괜히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어 더 망설이게 되네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려대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아쉽지도 않게 고려대학교는 예비번호도 없는 광탈이었습니다. 처음 광탈하고 학교에 갔을 때는, 괜히 죄송한 마음에 도와주신 선생님들을 피해 다녔어요. 고려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제가 원망스럽기도 했죠. 다른 친구들이 '쟤 고려대 가고 싶다더니 결국 떨어졌네 ㅋㅋㅋ'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답니다.  근데 뭐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 인생에 관심이 많지 않더라고요. 행여나 그렇게 놀리더라도 할 말은 없어요. 사실이니깐요. 그래도 노래 부르고 다닌 걸 후회하지 않아요. 고려대학교라는 목표는 고등학생이던 제게는 좋은 원동력이었고, 덕분에 제 한계에 부딪혀도 보고, 또다시 일어 서보기도 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깐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대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자. 일단 고려대학교만 생각하자.'라며 묻어두고 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공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시야를 좁혔던 것 같아요. 교육의 의미가 입시로 바뀌어버린 그 공간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유일한 어른들도, 주위의 친구들도 모두 대학에만 몰두하고 있죠. 가끔가다가 '대학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계시기도 하지만, 지나듯 하는 그 말은 학교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크게 와 닿지 않죠. 지금 제 글도 여러분들께는 마찬가지일 수 있겠네요.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학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는 지금은, 때때로 대학은 한 물 간 성공 공식이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께 '대학은 아무 소용없어! 그러니 공부 다 때려치워!'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어떤 분야에서는 여전히 대학이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지만 많은 분야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공간은 좁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럴 거예요. 대학이 차지하는 공간이 좁아지는 만큼 몸집을 부풀리는 영역이 있다면 그건 바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그런 능력 말이죠.


 19년 인생 동안 부모님의 말씀대로, 선생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해 대학교에 들어갔더니 이게 웬걸! 제가 생각했던 대학생활은 어디 가고 새내기 생활은 우울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했었어요. 공부하느라 모든 걸 미뤄버렸더니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가 없더라고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기분이 나쁘고 좋은지도 몰랐어요. 난생처음 아무런 압박감 없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대학 낭만이라고 상상해왔던 축제, 미팅, 엠티도 막상 해보니, 불안함 위에 위태롭게 발을 딛고 있는, 텅 빈 즐거움이었죠. 우울했던 그 시기를 지나 저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조금 가지고, 이제 나를 알겠다 싶었더니 벌써 3학년이네요. 휴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졸업준비를 하고 있겠죠. 대학교 3학년은 고등학교 3학년 때랑은 또 다른 압박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나 뭐해 먹고살지?"


  이 질문을 파고들면 들수록,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도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있고요. 그냥 저는 고등학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지우면서까지 스트레스받으며 공부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힘들면 가끔은 쉬어가도 되고, 학교 공부가 재미없으면 사실은 안 해도 돼요.  내가 목표한 대학에 못 갈까 봐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요, 또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자괴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관심이 많답니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만이 내가 가진 타이틀로 나를 정의할 뿐이죠.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 공부하는 게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사회공부의 연장선으로 기자를 꿈꾸고 있어요. 뭐랄까, 아직 기자와 관련한 실무적인 경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사회공부와 기자라는 직업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내년에는 학교 신문사에 지원해 실무적인 경험도 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꿈꿀 수도 있겠지만, 그때에도 제가 하는 일들이 사회공부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는 사회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우고 있어요. '신촌사회과학연구회'라는 연합 학회에서 활동도 하고, 사회과학 고전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또, 영화도 책도 틈틈이 보고 있답니다. 또, 영어가 제 커리어에서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여름방학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이제 겨우 가벼운 회화를 하는 수준이라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중국어도 공부하고 싶은데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만으로도 너무 많아서 중국어는 뒤로 미루고 있어요.


 위에 글만 봤을 때는 부지런해 보이지 않나요? 사실 그렇지 않답니다. 저는 매일을 게으름, 그리고 나태함과 싸우며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아.. 유튜브.. 그만 봐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죠. 최근에는 휴학하고 이 현상이 너무 심해져 자괴감이 장난 아니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폰에서 유튜브를 없앴어요. 없앴더니 인스타 피드를 그렇게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저께 인스타도 폰에서 없앴답니다. 물론 여전히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 중이긴 합니다.. 나는 나로 24시간을 살 수밖에 없어서 온갖 감정을 다 느끼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우리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꽤 많은 걸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또 다른 사람의 삶도 가까이서 바라보면 우리의 삶과 비슷할지도 모르죠. 그러니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너무 스트레스받으시지 않길 바라요.


제 인생의 '사랑하지만 가끔은 미운 사회공부'처럼,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마음을 담아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나가시길 바랄게요. 저도 어쩌면 찾아나가는 중일지도 몰라요. 지금은 사회 공부가 정말 좋지만 또 몇 년 후에는 다른 분야에 사랑과 미움을 담아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상, 고등학생이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다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 이야기만 기억해주세요. 힘들 때는 쉬었다 가요 우리. 나를 위해 공부해요 우리.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후배님들을 항상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18년도 졸업생 김이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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