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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은 Apr 15. 2024

삶의 이유와

그 의미,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살아가다가 문득, 모든 것은 어쩌면 다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사람의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게 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유를 가진 채 살아가게 된다. 시험을 망치는 것도,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말이다.


나는 배우라는 꿈을 꿨던 사람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성격으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했었다. 연기학원을 등록했고, 연기를 배웠고, 입시를 준비했으며, 서울로 올라가 다시 학원을 다녔다. 그리곤 포기했다. 생각보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는 배우로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이길 만큼의 열정이 내겐 존재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 후 나는 수능을 준비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붙잡고 담쌓은 지 오래된 공부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취업이 보장된 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처음 배우라는 꿈을 꾸었을 땐 희망찬 미래만을 꿈꾸며 바라보았다. 언젠간 나도 TV 속에 나오는 저 배우처럼,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21살,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올라가 성공할 미래만을 꿈꾸며 살아가던 어느 날의 나는 문득 불안감을 마주하게 됐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난 대학도 안 다니고, 자격증도 없고,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아르바이트하면서 벌어둔 돈은 줄어드는데 1년 뒤엔? 5년 뒤엔? 지금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 난 이 모든 걸 이길 만큼 연기를 좋아하나?'


"아니."


이 답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꿈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깨닫고 보니 연기보단, TV 속 성공한 배우의 삶만을 살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 내가 '난 연기만 할 수 있으면 행복해'라고 나 자신조차 속인 채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서울로 올라갈 자격이 없었다. 난 연기가 아닌 배우가 목적이 되면 안 됐으니까, 난 배우라는 직업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을 테니까.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서울 생활의 유일한 핑계였으니까.' 그래서 속였다. 나도, 부모님도.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결국엔 말했다.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의 백 배 보다 어려운 마음으로,


"나 연기 포기하려고.."


그렇게 18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던 배우 지망생이라는 길은 21살이 되고 나서 끝나게 되었다. 그 이후 내게 남은 건 '현실'이었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내 상황을 아시는 매니저님께서 그런 얘기를 해주셨다. "포기하면, 그때부터 그게 현실이 되는 거야." 처음엔 무슨 얘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꿈을 포기하고 나니까 단번에 깨달아졌다. '아, 꿈을 포기한 내 현실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구나. 이게 나의 현실이구나.'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뭘 해야 되는지 막막했다.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배우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누군가 내 길을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사촌 언니의 조언으로 대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어떻게든 이 막막하고 불안정한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정적인 삶이 그 누구보다 필요했고, 정말 간절했다. 그래서 친구의 말은 내 귀에 박힐 수밖에 없었다. "물리치료과에 가는 건 어때? 취업은 보장되고,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


그 이후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는 오로지 물리치료과였고, 그것만 바라보며 놓은 지 오래된 펜을 붙잡았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면서 내 하루하루는 잿빛이었다. 이때까지 내가 원하던 목표는 한 번도 이뤄본 적이 없는 상태였던 나는 이번 수능마저 실패로 끝날까 봐 두려웠다. 그러면서 부모님과의 마찰은 잦아졌고, 난 극심한 부담감과 죄책감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렇기에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매일 기도했다. 제발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되게 해달라고. 꽤 벅찼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내가 감당하기엔, 당장의 죽음을 기도할 만큼 버거웠다. 그럼에도 버텨야 했다. 그것까지가 내 책임이었으니까.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수능날이 다가왔다. 다행히도 예상했던 성적대로 나와 내가 원하던 과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가게 되었으나 내 걱정과는 다르게 모든 것들이 괜찮았다. 공부가 생각보다 잘 맞았고, 대학 생활은 재밌었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포기한 건, 이 길을 가기 위함이었던 걸까."


하루하루 막막했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그 누구보다 간절히도 원했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배우를 포기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학교 생활을 하던 중 좋은 기회로 6주 동안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홈스테이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저 걷기만 해도 아름다운 자연에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밤, 혼자 홈스테이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쳐다본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그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라고, 그토록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던 내가, 1년 뒤엔 뉴질랜드의 밤하늘을 보며 걷게 된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 난 수많은 별을 향해, 과거의 나를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던 것 같다.


"내가 이 순간을 볼 수 있도록, 어떻게든 버텨줘서 고맙다"라고.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 뒤, 우습게도 난 삶에 미련이 없어졌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학년이 시작됐다. 평일엔 학교 생활, 금토일엔 알바를 병행하게 됐다. 여름방학이 되었을 땐 주 6일 알바를 시작했고 나중엔 일손이 부족하게 되어 주 7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2학년 2학기가 시작됐다. 평일엔 다시 학교 생활, 주말엔 알바가 반복 됐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을 땐 병원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김없이 평일엔 병원 출근, 주말엔 알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알바를 하고 있던 때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의 이유는 뭘까.

정말 지쳤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고, 하루하루 버티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만 가지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살고,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하고, 돈을 벌기 위해 책임지며 살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그것이 참 부질없어 보였다, 의미 없어 보였다. 미래를 생각하면 지쳤고, 난 결국 또 어디선가 돈을 벌기 위해 하루를 살아나가겠구나, 그곳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그만 살고 싶었다.


사실 나한텐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날 상처 주는 습관이 있다.

워낙 들쭉날쭉한 인생이다 보니, 내 감정 또한 들쭉날쭉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요동치던 감정이 잔잔해졌다.

감정이란 게 깎이기 마련이구나 싶었다. 부딪히고, 부딪히면 어느 순간 부딪혀도 아프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때 나를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이 내 몸이 단단해져서 만들어진 무뎌짐인지 혹은,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깎아내려 만든 억지로 끼워 맞춘 무뎌짐인지.


나는 후자였다. 살아오면서 워낙 불안정한 선택을 많이 했던 터라 조언이었든 아니었든 타인으로부터 그로 인한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남들이 내게 상처주기 전에, 내가 나 스스로를 상처 주는 것이다. 난 실패했다고, 난 외적으로 못났다고, 난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난 불행할 거라고, 난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그렇게 날 깎아내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남들에게 상처받는 일이 없었다. 남들이 날 상처 줘봤자, 나만큼 날 상처주진 못했다. 그게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연기를 하면서 받았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상처들도, 누군가 나에게 쏟아낸 푸념에 대한 상처들도,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털어낸 솔직함에 대한 상처들도 더 이상 나에게 아픔이 되지 못했다.

멘탈이 강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건 깨닫고 보니 이 습관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날 깎아내리다 보니 어느 순간 무언가를 시작할 의욕이 점차 사라졌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생각들이 내 일상에 늘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쉼 없는 한 해를 맞이하게 됐고, 온전한 하루를 며칠씩 쉴 수 없다는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결국 사는 것에 지쳐버린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물음이 끊이질 않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니, 내 삶을 사랑할 수 없었고, 내 존재에 대한 의미도, 삶에 대한 의미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삶에 대한 의욕도 생길 리가 없었다.


나 자신을 깎아내렸기에 날 사랑할 수 없었고, 내 삶을 끌어안을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깨닫고 보니 간단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도, 내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도, 나의 하루를 무기력으로 채워 나갔던 것도, 내가 나를 존중해 주지 않아서, 내가 나를 무시해서,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스스로 내 삶을 버리려 했던 것이었다.


이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깨달은 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어느 날 내가 겪어 온 삶에 대해 문장들로 쭉 나열해 보았다. 그렇게 나열하고 보니

나 그럴싸한 글이 되어 있었다.


"꿈을 향해 달리던 순간엔 그 누구보다 희망찬 미래를 꿈꿨던 내가, 머지않아 매일 죽음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 그럼에도 걷다 보니, 행복하다 말하기도 입 아픈 순간들이 매일 찾아왔다.


어느 날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기도 했다. 나를 내가 가장 싫어했고, 내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곤 했다. 그럼에도 걷다 보니, 한 번 잊어보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곧 내가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경험은 다 필요하다. 어떤 안 좋은 일이었든, 어떤 행복한 일이었든 그 일은 결국 당신에게 어떠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 것이고, 그 생각이 바로 그 일을 겪은 이유일 것이다. 그 생각들이 부정적인 것일지라도 당신의 인생엔 결국 필요한 생각일 것이다.


왜냐면 우린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엔 쓸모없는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든, 무기력함만이 피어있든, 가시 밭길이 펼쳐져 있든 모두 그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길을 건널 때마다 그 길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무기력했던 길의 이유는 깨닫지 못했으나 가시 밭길을 걷게 되었던 이유는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 괜찮다. 그 또한 이미 정해진 당신의 길일테니까.


모두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모두가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다르기에,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난 그저 펼쳐져 있는 나만의 길을 향해 어김없이 걸으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나의 '오늘'을 만들고, 나의 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배우기 위해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나 동시에 강인하다. 각자의 길 위에 펼쳐진 모든 이유들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존경한다. 이 길 끝엔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태어났다는 이유 자체만으로,

모든 것들을 누릴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생각한다.


우린 언젠가 죽기에

숨을 쉬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잔뜩 누리고 가자고,


애초에 정답 따위 없는 인생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정답이니까, 


지나간 걸음을 후회하지 말고, 지나갈 걸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나고 있는 이 걸음을 힘껏 믿어보자고.


그러니 부디, 모두가 숨 쉬는 법을 잊지 말길.

충분히 가치 있는 여정 중에 있으니.



"오늘은 날 사랑하지 못했을지언정, 머지않은 미래엔 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때까지 날 사랑하지 못했던 길을 걸었던 이유이기 때문에."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겹치는 내용들이 많아 보시는 데 불편함이 있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까지가 제가 이전에 써두었던 글이라, 이후부턴 최대한 겹치지 않는 방향의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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