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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23. 2021

지극히 개인적인 4월 휴가 후기- #1

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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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후 나의 행복의 기준선은 상당히 낮아졌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행복의 범위가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간의 삶들에서 품어 왔던 행복의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는 환경 속, 세속의 기준 그대로 군대 안을 바라보기란 스트레스로 가득차기 마련이었기에 그저 조그만 괜찮음일지라도 그냥 만족하려고 마음을 쓴 듯하다. 아무리 소소한 모멘트와 포인트에서도 꽤나 감동하며 위안받는 성격이었대도, 군 부대란 그 소소함들조차 아주 가끔 존재하는 삭막한 공간이었다.


 도무지 바깥에서와 같은 시선으로는 버티기 버거웠고, 결국 내가 가볍게 느끼는  기분을 '행복의 대안'으로 받아들인 채 생활하고자 했다. "그만하면 됐지","이 정도로도 다행이지","그래 이게 어디냐" 등의 문구가 입에 배였다. 어찌보면 ‘달관했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몸소 이해해버린 셈이다. 위 같은 과정으로 반복되는 생활 루틴은 어느덧 12개월차에 들어섰으며, 그 한 해 사이 예전에 지내온 행복의 장면들은 지금의 나에겐 멀찍이 느껴지는 사치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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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동안 나는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번 휴가에서는 저번 신병휴가 때에는 감지하지 못한 부분들을 많이 마주했기에 더 뜻깊었다. 지난 4월의 휴가는 '감옥에서 막 석방되어 나온' 기분이었다면 이번 9월의 휴가는 '삶에 쩌든 직장인이 연차쓰고 휴양 온' 기분이었다. 뭐든지 허겁지겁 정신없이 사회를 맛 보던 저번과는 다르게 훨씬 여유있고 더 무게있게 사람을 만났고 세상을 맞이했다. 부대에 있으면서 쓰디쓴 경험을 상당히 맞닥뜨려 왔던 시기였기에, 그저 군 생활이 두렵기만 하던 풋내기 시절 휴가를 나왔을 때에는 몰랐던 짜릿한 해방감이 깊게 감돌기도 했다. 그랬기에 사실 조급함이 크게 줄어들었고 일정이든 행동이든 여유가 풍성해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지난 1년 사이 많이 잊고 있었던 행복의 상태가 나름 길게 자리잡았다.


 오랜 인연들을 만나 시시콜콜하게 일상 토크를 나누는 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진중하게 딥톡을 떠드는 일. 먹어보고 싶던 음식과 술을 맘편히 음미하는 일. 도시 골목 사이 거닐며 세상 구경을 하는일. 신기한 건축구조와 시원한 자연에 감탄하며 사진으로 찍어대는일. 빛과 바람을 맞으며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마음대로 날씨와 코디에 맞게 옷을 걸치는 일. 하다못해 버스 창가에 보이는 도로 위 풍경과 포근하고 잉여롭게 눕거나 기대는 자세마저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복작거리면서도 느릿느릿한, 매혹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이 상황과 마음. 행복의 색을 다시 찾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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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유롭고 다채로운 분위기가 은은하면서 너무 강렬했다. 저번 휴가때는 차마 깊게 품어내지 못하던 감촉들이 온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결국 다시 복귀해 답답하게 격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말고 지켜내야겠다. 2주 동안 얻었던 이 행복의 가치가 갖기 어려운 고고한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남은 다섯달의 시간들을 더 잘 견뎌냄으로써 이 행복을 다시금 소유할 수 있음을. 절대로 비관하지 말고 현실이 뭣같아도 쉽게 포기하진 말아야지. 이 잿빛 세상마저도 여름의 계절이 지나면 마침내 그 흐린 빛을 덜어내게 될테니. 쉽게 달관하지도 마냥 낙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소소하고 확실하게 행복을 추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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