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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29. 2021

말아톤

21.07.12.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갈망하며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그들의 삶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모양이다.


  나한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5살 연하 사촌동생이 있다. 광주 고모집에 살고 있는 애라서 어렸을 땐 명절 뿐만 아니라 꼬박꼬박 분기마다 만나곤 했다. 초중딩 때까지만 해도 그저 어리광이 심한 친구라고만 여기며 큰 불평 없이 놀아주곤 했었는데, 오히려 머리가 굵어지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걔를 대할 때 불편이 거세지고 같이 있는 걸 귀찮아하며 자꾸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언제까지 동생을 챙겨주고 돌봐줘야만 하나 싶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런 나의 마음가짐은 사춘기 때의 성숙지 못한 면모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된 뒤에야 장애인권 개념에 대해 알아차리게 되었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내가 보지 못했던 동생의 강점을 온전히 볼 수 있었고 동생의 현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대화를 나누고 생활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말 안듣고 못말리는 철부지 구석이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건 영리하고 파고들고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아는 힘찬 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군대에 오고 나서 친척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니 동생의 소식을 접하진 못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말이 안들리는걸 보면 잘하고 있으리라 확신이 든다.


 작품에서는 자폐증과 그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모습을 정말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계 문제나 구성원 간 갈등, 일상의 어려움, 애증의 감정 등등. 영화가 나온지 17년이나 지난 지금에 있어, 자폐증에 대한 이야기는 언뜻 보면 익숙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폐증을 그리고 장애인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여전히 자폐•발달장애는 상관없는 남의 사연이라 치부되고 저멀리 타자화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 역시도 지내오면서 부족함이 참 많았고 아마 끝까지도 그들과 24시간 함께 보내는 이들의 심정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동정의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주인공들 바로 옆에서 직시하고 주시할 뿐이다. 주저하고 좌절하지만 동시에 살갑고 정겹기도 한, 초원이와 곁의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그대로 비춰질 뿐이다. 버겁지만 완주하고자 하는 초원이의 욕심과 진심을 알게됨으로써 응원의 눈길을 보내긴 하나, '불쌍하다' '안쓰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평범하게 보잘 것 없고, 대단하게 끈질기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판단이나 규정도 결국에는 무효한 것이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완주하러 가는 지점, 초원이의 상상 속 코스에서는 대형마트 , 수영장 , 지하철역이 등장하고 이윽고 넓은 초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얼룩말과 함께 달린다. 때로는 무섭고 무겁기만 했을 일상의 장소들이지만, 그 장면 속에서 초원이는 진심으로 사람들의 환희와 응원을 받으며 웃음을 짓고 있다. 행복과 희열이라는 감정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지만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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